[자유성] 이변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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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0   |  발행일 2018-06-20 제31면   |  수정 2018-06-20

‘이변(異變)은 많이 생길수록 좋다.’ ‘이변이 자주 일어나야 재미가 더 커진다.’ 웬 이변 옹호론인가 하겠지만, 지난주부터 흥미를 더하고 있는 러시아 월드컵 축구 얘기다. 일상사에서는 이변이 없어야 평온한 삶이 지속된다. 하지만 운동 경기에서는 다르다. 축구공 하나로 전 세계인이 인종·종교·빈부를 뛰어넘어 열광하는 이 지구촌 축제는 초반부터 이변이 속출하고, 각종 화제가 만발하고 있다. 100년에 한명 나올까말까 한 축구 신동 메시가 페널티킥을 아이슬란드 골키퍼에 잡히도록 잘못 찬 것과, 인구 35만명에 불과한 아이슬란드가 우승후보국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와 1대 1로 비긴 건 이변이다. 역시 우승후보국 반열에 드는 독일이 1차전에서 중미의 복병 멕시코에 일격을 당해 0대 1로 패한 것도 이변 중 하나로 꼽힌다. 축구공은 둥글기에 국가나 개인을 가리지 않는다. 스타 선수라도 누구나 실축할 수 있고, FIFA 랭킹이 현격히 낮은 국가도 상위 랭커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변은 역대 월드컵 때마다 일어났다. 이처럼 관객에게 짜릿한 감흥과 좌절을 주는 이변이 월드컵의 매력이다.

절대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현실화되는 이변은 그래서 축구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전문가의 예상대로, 국가 랭킹 높낮이대로 평이하게 진행되는 경기라면 누가 일말의 기대감을 갖겠는가. 반란이 일어나고 뒤집어져서 위아래가 바뀌는 현상은 자연계에서도 권장된다. 음지가 양지되고, 오래 양지였던 지역이 음지로 변해야 공평하다. 고인 물이 썩는다고 했듯이, 정해진 행로를 벗어나 가끔씩 뒤집어지고 뒤틀려야 썩지 않는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된다.

화제도 연일 터져 나온다. 아르헨티나와 1대 1로 비긴 아이슬란드는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완전 초짜 국가다. 등록된 프로축구 선수는 120명에 불과하다. 메시의 페널티킥을 막아낸 골키퍼 할도르손의 원래 직업은 영화감독이라나. 비록 3대 3으로 비겨서 색이 바래긴 했지만, 포르투갈이 자랑하는 공격수 호날두는 스페인과의 1차전에서 세 골을 넣어 월드컵 사상 최고령 해트트릭 기록자가 됐다. 이집트의 거미손 골키퍼 모하메드 엘셰나위는 1차전 선방으로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됐지만 이슬람교도로서 주류회사가 주는 상은 받을 수 없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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