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민주당도 드디어 비판받을 존재가 됐다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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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0   |  발행일 2018-06-20 제31면   |  수정 2018-06-20
[박재일 칼럼] 민주당도 드디어 비판받을 존재가 됐다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대통령 후보 쪽 새정치국민회의를 담당하던 나에게 누가 말했다. “박 기자는 DJ(김대중)에게 좀 우호적으로 보인다. 좀 까는 기사를 써야지.” 사실 정치부 기자는 자신이 출입하는 정당이나 후보 쪽의 편을 들기가 쉽다. 자주 대하다 보니 호감을 갖게 되는 인지상정 때문이기도 하다. 또 신문사 전체로 보면 그게 모여 균형이 된다. 그때 나는 내 나름대로 좀 고급스러운 이유를 달아 변명했다. “여기서는 한자릿수도 안 나오는 지지도인데 아직은 비판당할 자격이 없는 거 같다.”

정치적으로 TK(대구경북)는 그 훨씬 이전부터 줄곧 한쪽으로 경도돼 온 것은 사실이다. 근년 들어 28대 0이란 국회의원 분포도 자랑했다. 지방의회 권력도 마찬가지였다. 대구시의회는 장식용 비례대표 한 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지금의 자유한국당 계열 쪽 의원이 몽땅 들어앉았다. 일당독점이 지역을 위해 바람직하지는 않다며 정치적 다원주의(political pluralism)를 지역 언론에서 거의 처음으로 제기했던 근저의 이유이기도 하다.

오래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의회에 취재차 방문했다. 이 도시 지방의회가 딱히 탁월해서는 아니고 미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세계 3대 미항·금문교의 도시라 선택했다. 가자마자 하나 놀란 점은 10여명인가 한 시의원 전원이 민주당이다. ‘아니, 여기도 일당독점이잖아’ 하고 중얼거린 기억이 난다. 물론 우리처럼 당이 지방자치를 통제하지는 않는다.

지역주의 그러니까 특정 지역·도시가 몰빵 투표 성향을 갖는 정치현상은 비단 한국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건 한편 좋을 수도 있고 한편 나쁠 수도 있다. 좋다는 측면은 확실한 지역의 의사를 표현해서 그렇고, 나쁘다는 것은 상대를 쳐다보지도 않고 거부하기 때문이다.

TK가 이번 6·13지방선거에서 이정표를 그었다. 지방의회 권력이 변화 조짐을 보였다.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한 지 27년 만에 민주당 계열 시의원이 지역구에서 탄생했다. 그것도 4명이나. 경북에서는 실로 오랜만에 민주당 시장(구미)이 나왔다. 기초의회 그러니까 대구지역 구의회나 경북의 시·군 의회로 내려가면 더 큰 변화가 목도된다. 수성구를 비롯해 상당수 구의회가 정당 간 대결이 허용될 정도로 균형을 맞췄다.

이런 변화가 더 대비되는 것은 TK를 벗어난 다른 지역의 지방선거 결과다. 서울의 구청장은 25명인데, 1명을 제외하고 민주당 후보 24명이 몽땅 당선됐다. 경기도의회는 한술 더 떴다. 도의원 선거에서 128대 1이다. 민주당 대 한국당 스코어다. 거의 100% 일당독점이라 해도 무방하다. 정치적 색깔이 확고한 다른 여타 지역은 더 이상 예를 들지 않겠다.

TV로 중계된 전국 시·도지사 선거의 지도를 놓고 대구경북만 빨간 색깔로 표기되자 불만을 표출한 이들이 등장했다. 소설가 이외수는 대구경북을 놓고 “북한도 변했는데 여기는 아직도 안 변했네요”라고 빈정거렸다. 소설 수준이다. 또 다른 이들은 “대구가 섬이 됐다”고 마치 자신이 무슨 지식인이 된 양 한탄한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똑같지 않다는 데 대해 불편해하는 전근대적 일원적 사고를 하는 부류가 있다. 그게 잘못 진화하면 모래알 전체주의가 된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TK가 여전히 특정 색깔이란 점은 행여 정치적 매너리즘일까 우려하면서도 한편 ‘아! 저 지도 모두가 몽땅 파란색이었으면 대한민국이 좀 재미없었을 걸’하고 느꼈다. 역설적으로 드디어 민주당도 이제 대구에서 비판받을 자격을 갖춘 시대가 도래했다고 여긴다.

지방자치는 지역 고유의 개성을 먹고 자란다. 지역이 똑같다면 우리는 지방자치를 할 필요도 없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역으로 국민을 가르는 지역주의와 색깔론의 분열주의 정치가 이번 선거를 통해 끝났다”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대해서도 마뜩지 않다. 자치는 어쩌면 ‘색깔과 분열’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평등해질 때는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였다. ‘분열적 자치’는 그래서 건강한 민주주의의 원동력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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