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이게 종교냐”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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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18   |  발행일 2018-06-18 제31면   |  수정 2018-06-18
[월요칼럼] “이게 종교냐”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고가의 신발을 신은 스님 사진 두 장이 도마에 올랐다. 첫째 사진은 사미로 보이는 스님이 검정 백팩을 메고 버스에 오르는 순간을 포착한 것으로 이 스님의 신발은 국내에서 70만원대에 판매중인 제품이라고 한다. 네티즌들은 스님이 메고 있는 가방도 30만~40만원은 족히 줘야 살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조계사 인근 횡단보도에서 신호대기 하다 찍힌 스님의 신발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로 판매가격이 무려 200만원이 넘는단다. 물론 스님이라고 비싼 신발 신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요사채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흰고무신과 털신이 눈에 익은 터라 왠지 ‘무소유의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무엇보다 돈과 물질주의에 물든 종교계의 속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수행자와 성직자의 도덕성은 일반인보다 엄격해야 하고 모범이 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요즘 불거지는 종교계 비리와 의혹을 들여다보면 속인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 1일과 29일 두 차례 방영된 MBC 시사고발프로그램 ‘PD수첩’의 ‘큰스님께 묻습니다’를 통해 폭로된 조계종 일부 스님들의 일그러진 모습에는 말문이 막힌다. 제기된 의혹도 은처자(숨겨둔 처자식)·성폭행·유흥주점 출입·도박·학력위조 등 입에 담기조차 민망하다. 등장한 스님들도 하나같이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사찰의 주지이거나 조계종 종단에서 고위직을 맡은 소위 종교 권력자들이다.

만에 하나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들 중 일부는 불교에서 말하는 승단추방죄를 범하는 것이다. 승단추방죄는 머리가 잘릴 만큼 큰 죄라는 의미에서 ‘단두죄(斷頭罪)’라고도 한다. 음행(淫行)·도둑질·살인·신통위력 과시 등이 이에 해당하며 승단에서 추방돼야 할 중죄다. 조계종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라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고, 거명된 일부 스님도 검찰에 고발한 만큼 진실은 수사로 밝혀지겠지만 사실여부를 떠나 의혹 제기만으로도 불교계의 자성과 참회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작금의 종교계 타락과 적폐는 불교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에서도 교회 세습, 서열화, 불투명한 재정운영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특히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성추문은 심각하다. 오죽하면 ‘성(性)직자’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겠나. 지난달에도 서울에 있는 신도 13만명의 대형교회 목사가 지위와 권위를 이용해 5년간 7명의 신도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5년간 전문직 종사자에 의해 발생한 성폭행·강제추행 범죄 3천50건 가운데 성직자가 저지른 것이 442건으로 가장 많다.

성직자의 타락을 부추기는 것은 역시 돈이다. 물질주의와 배금주의가 사찰과 교회를 지배하면서 성직자들은 탐욕에 물들어 가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중생구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 교회나 사찰 모두 양적 성장에만 매달려 소중한 시주금과 헌금으로 큰 건물 짓고 신자 늘리기에만 혈안이다.‘PD수첩’에서 증언한 한 스님은 취재진에게 한때 자신의 월 소득이 5천만원이었다고 털어놨다. 대형 사찰에 돈이 넘쳐나지만 감시의 눈은 어둡고 재정운영도 불투명하다보니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慾樂)에 젖어 호화생활을 즐기고 온갖 비리가 쏟아지는 것이다. 당연히 “이게 종교냐”는 질타가 나올 수밖에 없고 적폐를 청산할 종교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중국 당나라 때 재가 수행자로 깨달음을 얻은 방(龐)거사는 발심한 이후 수만 수레에 상당하는 가재(家財)를 배에 싣고 동정(洞庭)에 있는 상강(湘江)에 저어가서 전부 가라앉혀 버렸다. 그 후로는 죽세공을 만들어 팔아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가 재물을 물속에 가라 앉히려 했을 때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에게 주든지 불사에 사용하라며 말렸다. 그러나 그는 “내가 이미 원수라 생각하고 버리면서 어찌 다른 사람에게 주겠는가. 재물은 몸과 마음을 근심하게 하는 원수”라며 듣지 않았다. 부처님도 ‘대승계경’에서 “차라리 큰 불구덩이에 들어갈지언정 재물을 탐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도(道)와 돈을 혼동하는 무늬만 성직자와 물신교(物神敎)를 맹신하는 신도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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