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조식 선생 농담도 잘하시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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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16   |  발행일 2018-06-16 제16면   |  수정 2018-06-16
사람에 다가가는 솔직한 수단 편지
정도전·이순신·기대승 등 조선시대
지식인 32명의 시대적 고민과 연민
절제되고 함축된 시어는 “고전의 맛”
옛사람의 편지
“이황·조식 선생 농담도 잘하시네”

역사를 담는 그릇은 많다. 그중 편지는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가는 가장 솔직한 자기표현이다. 쓰는 이와 받는 이의 관계까지 숨김없이 보여주는 사람 사이의 역사이기도 하다. ‘옛사람의 편지’는 조선 지식인들의 친필 편지를 역사의 흐름에 맞춰 풀어내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고민과 연민을 실타래 풀 듯 풀어내며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예로부터 편지는 소통의 도구였다. 편지라는 형태와 전달 방식이 진화했을 뿐 오늘날에도 편지는 여전히 중요한 매개체다. 옛 선조들이 남긴 편지는 특히 개인적인 소통을 넘어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당대 지식인들의 고뇌와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 녹아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황과 기대승이 주고받은 편지일 것이다. 이른바 사단칠정론을 펼친 편지가 100통이 넘게 쌓이고 쌓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되었다. 한국 지성사에 영원히 남을 기록이란 평가까지 받았다.

바로 그런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편지를 역사의 흐름에 맞춰 풀어내고 풍부한 해설을 단 책이다. ‘사람과 시대를 잇는 또 하나의 역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편지로 읽는 역사이자 고전 읽기의 새로운 장을 선사할 인문서가 될 만하다.

“이황·조식 선생 농담도 잘하시네”
손문호/가치창조/416쪽/1만5천원

저자는 조선시대 전반에 걸친 지식인들의 편지를 골라서 역사의 흐름에 맞춰 정치적·사회적 이야기를 풀어낸다. 편지는 모두 32통이다. 정도전, 이황, 기대승, 이순신, 박지원, 정약용, 김정희 등 조선 역사의 중추가 된 인물들의 편지를 선정했다. 세간에 이미 알려진 편지보다 새로운 편지를 발굴해 옛 사람들의 삶과 사상을 풍성하게 재생시키려고 애썼다. 그중 가장 크게 눈에 띄는 편지로 정조의 어찰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민간인이 소장했던 정조의 어찰이 무려 299통이나 공개되어 학계를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이제까지 발견된 역사 속 인물의 편지 중 가장 많은 분량이다. 정조의 어찰 내용을 모두 분석하고 나면 18세기 조선의 정치사를 새로이 써야 할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돋보이는 대목은 저자의 해설이다. 우선 한글로 번역한 편지글을 싣고, 원문에 이어 풍부한 해설을 덧붙였다. 발신자와 수신자의 삶과 사상, 인물들 간의 유명한 일화와 고사성어 풀이는 물론이요, 시대적·정치적 배경까지 상세히 짚어주었다. 옛 편지와 해설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조선의 예송논쟁과 당쟁이 거듭되는 시대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조원기가 조카 조광조의 명성이 지나치게 높은 것을 근심하며 보낸 편지와 해설글이 그러하다. 또한 신분의 벽 때문에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고단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글공부와 우정의 힘으로 살아갔던 옛 선비들의 고고한 삶이 소개되어 있다. 박지원의 편지 편에 등장하는 ‘맹자’를 팔아 밥을 먹고, ‘좌씨춘추전’을 팔아 술을 마셨다는 이덕무와 유득공의 일화가 그러하다. 그 외 이황과 조식의 격조 높은 농이 섞인 편지, 이순신의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 난중 편지, 김정희의 ‘세한도’ 편지 등이 저자의 해설에 힘입어 시대를 초월해 독자들에게 큰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옛날 중국의 송나라 유학자 정호는 ‘편지를 쓰는 것은 선비의 일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했다. 편지가 선비의 붓글씨 솜씨와 문장력 향상에 이바지했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서예라는 예술과 서간체라는 문학 형식을 말하기도 한다. 선비들의 시대적 고뇌와 일상이 절제된 언어, 함축적 시어로 표현되어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옛 선비들의 은은한 풍류가 가득한 고전의 맛도 느끼게 해준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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