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4년마다 돌아오는 이해영 감독 신작 ‘독전’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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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15   |  발행일 2018-06-15 제43면   |  수정 2018-06-15
재기발랄 이야기꾼, 이번엔 대중과 소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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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전’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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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마돈나’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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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포스터

스스로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이해영 감독은 2006년부터 4년마다 신작을 선보여왔다. 그 작품들은 균질하진 않았지만 하나같이 한국영화에는 없었던 상상력을 갖춘 반짝이는 영화들이었다. 여자가 되고 싶은 고등학생이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씨름판에 뛰어든다는 데뷔작 ‘천하장사 마돈나’는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영화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이토록 훌륭한 퀴어 영화가 한국영화계에 존재했다니, 그토록 따뜻하고 놀라운 데뷔작 이후 선보인 일련의 작품들은 이해영 감독이 명민하고 재기발랄한 이야기꾼임을 충분히 증명해왔다.

이해영 감독은 1973년 태어나 1992년 서울예술대 광고창작과에 입학했지만 광고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막연하게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군대 시절 시나리오 습작을 했다. 따로 시나리오 작법을 공부하지 않았고 개인적 취향을 드러낸 습작에 불과했지만 우연히 이 감독의 글을 본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가 그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영화계로 추천했다고.

한국영화에 없는 상상력으로 주목
‘천하장사 마돈나’각본·연출로 데뷔
12년전 나온 따뜻한 퀴어영화 감탄
과장되지 않은 생생한 캐릭터 호평

일상 속 성에 관한 이야기 ‘페스티발’
소녀 감수성과 미스터리 ‘경성학교’
유령 마약조직 독한자의 전쟁 ‘독전’
다양한 캐릭터 플레이 돋보이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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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해영 감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서울예대 동기 이해준 감독과 군대 시절부터 편지를 주고받으며 함께 시나리오를 썼고, 이 두 사람은 제대 후에도 함께 시나리오 공모전을 준비하거나 영화제작사를 찾아다니며 시나리오 작가가 되려 노력했다. 이들이 함께 쓴 첫 시나리오는 ‘안녕! 유에프오’로, 집필 당시에는 짧은 아이디어 수준의 글이었지만 7년 후 실제로 김진민 감독의 연출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김지운 감독의 중편 ‘커밍 아웃’(2000)의 각본을 집필한 것을 시작으로 김상진 감독의 ‘신라의 달밤’(2001)의 원안, ‘품행 제로’(2002)와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의 각본 등 이해영 감독은 이해준 감독과 7편의 각본을 공동 집필했고, 이 두 사람은 2000년대 초 충무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이후 이 두 사람은 함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천하장사 마돈나’(2006)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두 사람 모두 연출부로 일하거나 감독 경험이 없었기에 장편영화 연출은 모험에 가까운 시도였다. 그러나 서로를 향한 오랜 신뢰를 기반으로, 연출하는 장면 자체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연기 지도를 하면 다른 사람이 카메라 동선을 체크하는 등 현장에서의 역할을 배분하는 형태의 공동 작업이었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여자가 되고 싶은 열여섯 살 소년이 성전환수술 비용을 마련하고자 장학금이 걸린 씨름대회에 나간다는 내용이다. 겉보기엔 뚱보 소년이지만 마음만은 마돈나인 주인공 ‘동구’의 진짜 장래희망은 여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승자 장학금을 타기 위해서는 남학생들과 맨살을 부대끼며 연습해야 하고, 전직 권투선수로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자신의 여성성을 들켜 갈등이 벌어지는 등 동구는 잦은 시련을 겪는다. 다소 엉뚱한 이야기이지만 발랄하고 경쾌한 리듬으로 완성되었다.

이 영화의 미덕은 그동안 한국 코미디영화에서 반복되던 수다스러움이 없고, 상대를 비하하거나 폭력을 가해 억지웃음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과장되지 않는 동구 주변 인물들의 생생한 캐릭터도 영화의 장점 중 하나다. 또 가족 간의 갈등을 억지 화해나 서툰 봉합으로 마무리 짓지도 않는다. 국내 평단의 호평이 이어지며 이해영 감독은 대한민국영화대상 신인감독상과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데뷔작에서 소녀가 되고 싶은 소년의 성 정체성을 다루었다면 이해영 감독의 두 번째 영화 ‘페스티발’(2010)은 이웃들의 일상 속의 성에 관한 이야기다. 경찰관, 영어강사, 가게 주인, 여고생처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한 번쯤 꿈꾸는 섹시 판타지를 소박하게 그렸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자신만의 성적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기존 코미디 영화의 억지를 반복하지 않아 차별성을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해영은 성을 소재로 한 섹시 코미디 ‘페스티발’을 에로틱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감독 특유의 유쾌하고 소소한 웃음들이 포진한 귀엽고 밝은 섹시 코미디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전작에 비해 비평과 흥행 면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앞선 두 작품과는 결이 다른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4)은 1930년대 말, 산속에 자리한 요양학교로 전학을 간 ‘주란’이 기숙학교에서 소녀들이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다. 감독은 이 영화가 ‘1930년대’ ‘여자 기숙학교’ 그리고 ‘미스터리’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하면서 “시대와 공간이 담보하는 불안감과 소녀적인 감수성을 미스터리 플롯 안에서 조화롭게 풀어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 바 있다. ‘캐리’나 ‘서스페리아’ 같은 1970년대 고전 호러영화들,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신카이 마코토 유(類)의 장르물이나 ‘소녀병기’를 소재로 삼은 일본 SF 같은 레퍼런스 안에서 운동장을 달리는 소녀의 이미지나 다국적 언어의 혼재같이 이해영 감독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도 갖추고 있어 흥미로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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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기봉 감독이 2013년에 연출한 ‘마약전쟁’을 원작으로, 박찬욱 감독과 주로 작업해온 정서경 작가와 협업해 쓴 ‘독전’(2018)은 아시아를 지배하는 유령 마약 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독한 자들의 전쟁을 그린 범죄극이다. 하나의 타깃을 쫓는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안에서 ‘원호’(조진웅)를 중심으로 하나둘씩 점차 정체를 드러내는 인물들의 다채로운 캐릭터 플레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 가운데 이미 여러 평단과 관객들이 극찬한 배우 진서연이나 고(故) 김주혁의 연기는 놀라운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이해영 감독의 오랜 팬이었다. 이번 ‘독전’의 흥행으로 그가 대중과 접점을 찾은 것처럼 보여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잃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 밝힌 것처럼 상업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으로 상업성을 스스로 증명해야 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그가 전작들이 보여준 눈부신 성과를 늘 잊지 않기를 빈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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