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미인도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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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14   |  발행일 2018-06-14 제31면   |  수정 2018-06-14

혜원 신윤복은 김홍도·김득신과 함께 조선의 3대 풍속화가로 꼽힌다. 본관이 고령이고 본명은 신가권(申可權)이다. 당시만 해도 그는 저잣거리를 전전하던 무명화가에 불과했다. 혜원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성호 이익의 손자 이구환이 엮은 ‘청구화사’에 따르면 “혜원은 동가숙 서가식 떠돌았으며, 방외인(국외자)으로 살았고, 여항인(중인·서얼·서리·평민층)과 가까웠다”고 전한다. 혜원이 유명해진 것은 1902년 이후 한국에서 미술연구를 하던 일본인 세키노 다다시가 그를 높게 평가하면서부터다.

이전의 그림과 달리 신윤복의 작품에는 기녀 등 여인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그의 작품을 모아 놓은 ‘혜원전신첩’(국보 제135호)을 보면 30점 작품 모두에 여인이 나오고 그 중 18개 작품의 주인공이 기녀다. 그동안 그림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여성을 과감히 화폭에 불러들여 조선시대 유교사회의 금기를 깬 것이다.

혜원의 그림 중에서도 보물 1973호로 지정된 ‘미인도’는 보기 드문 걸작이다. 조선시대 여성을 가장 아름답게 묘사해 조선판 모나리자로도 불린다. 기녀로 보이는 주인공의 나이는 대략 15~18세, 키는 150㎝ 전후로 추정된다. 동그랗고 자그마한 앳된 얼굴에 다소곳한 콧날, 맑고 고운 눈, 가느다란 눈썹, 붉은 입술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미인상을 잘 보여준다. 머리에는 가체를 얹었고, 쪽물을 들인 회청색 치마에 길이가 짧고 소매통이 좁은 삼회장 저고리, 옆구리의 자줏빛 고름, 삼작노리개로 한껏 멋을 부렸다. 짧은 저고리는 젖가슴이 보일 듯하고, 치마 끝으로 한쪽만 살짝 드러난 외씨버선은 뭇 남성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꿈꾸는 듯한 눈매와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표정은 이 그림의 백미다. 혜원은 이 그림의 왼쪽에 한편의 시도 남겼다. “조그만 가슴속에 서려 있는 여인의 봄볕 같은 정, 붓끝으로 그 마음까지 고스란히 옮겨 놓았네. (盤 胸中萬花春 筆端能與物傳神)”라고 읊어 이 여인에 대한 연정을 숨기지 않았다.

좀처럼 실물을 접하기 어려웠던 혜원의 ‘미인도’가 대구 나들이를 한다는 소식이다. 대구시와 간송미술재단은 간송미술관 개관 80주년을 맞아 오는 16일부터 3개월 동안 대구미술관에서 조선회화 명품전을 갖는다고 밝혔다.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등 100여점을 선보인다. 보물로 지정된 것이 9점이나 되고 보물 지정 예고된 작품도 4점 포함됐다. 대구시민을 위해 모처럼 찾아온 명품 감상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한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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