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이혼하든 망하든 떠나지 않는 지자체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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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11   |  발행일 2018-06-11 제30면   |  수정 2018-06-11
정태옥 의원, 인천·부천 비하
지자체장 역량서 본질 봐야
열악한 환경·여건 속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후보 뽑으면
‘원래 그런 도시’는 없어질것
[송국건정치칼럼] 이혼하든 망하든 떠나지 않는 지자체

‘이부망천’. 각 지방의 살림꾼을 뽑는 6·13 지방선거 막바지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신종 사자성어(?)다. ‘이혼하면 부천으로 가고, 망하면 인천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란다. 대구 북구갑의 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이 불을 질렀다. 지난 7일 각당 대변인이 참석한 YTN의 ‘6·13 지방선거, 수도권 판세분석’ 방송에서다. 두 대목이 문제가 됐다. 첫째, “지방에서 생활이 어려워서 (수도권으로) 올 때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은 서울로 온다. 지방을 떠나야 되지만 그런 일자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인천으로 온다. 그래서 인천이 실업률, 가계부채, 자살률 이런 것들이 꼴찌다”라고 했다. 둘째, “서울에서 살던 사람들이 서울 양천구 목동 같은데 잘 살다가 이혼하거나 실직하면 부천 정도로 간다. 부천에 갔다가 살기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나 이런 쪽으로 간다”고도 했다. 이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정 의원은 대변인직을 사퇴했다.

물론 뜬금없이 한 말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원내대변인이 현직 인천시장인 한국당 유정복 후보를 겨냥해 ‘인천의 실업률·가계부채·자살률이 전국 1위’라고 지적하자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유정복 후보가 시정을 잘 못 이끌어 낙후된 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대꾸하면서 비유를 매우 부적절하게 했다. 당장 인천과 부천 시민들은 “우리가 ‘루저(Loser·실패한 사람) 시민’이란 말이냐”고 분개한다. 정통 관료 출신인 정 의원은 지방행정통이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부자동네인 서울 서초구청에서 기획실장을 지냈다. 자신이 이번에 열악한 곳이라고 밝힌 인천시청에서도 2010년 7월부터 3년 가까이 기획관리실장으로 일했다. 2016년 국회에 입성하기 직전까지는 대구시 행정부시장이었다. 안전행정부 본청에 근무할 때도 지역발전정책관·지방행정정책관 같은 업무를 주로 봤다.

필자가 정 의원의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건 인천과 부천 시민들의 자존심을 긁은 거친 비유 때문만은 아니다. 크게 잘못된 발언이지만 오랜 지방행정가 시절에 업무적으로 파악했던 근본 원인들을 정무적 감각없이 불쑥 내뱉은 측면도 있다. 다만 정 의원이 유정복 후보를 옹호하며 한 말이 지방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이어서인지 귓전을 맴돈다. “유정복 시장이 들어와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도 그랬고 10년 전에도 그랬다. 인천이라는 도시 자체가 그렇다.” 이를 대구에 대입하면 “대구의 1인당 GRDP(지역내 총생산)가 전국 꼴찌인 건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그랬다. 대구가 원래 그렇다”가 된다. 경북에 대입하면 “경북의 SOC가 열악한 수준으로 낙후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북이 원래 그렇다”가 되지 않을까.

과거 중앙정부에서 임명했던 지방단체장들이야 “그곳이 원래 그렇다”가 통했다. 재임 동안 큰 과오없이 현상유지만 잘하면 됐다. 원래 그런 걸 애써 바꾸기 위해 이것저것 건드리다 오히려 탈이 날 수 있으므로 아예 시도를 하지 않는 게 보신의 길이었다. 하지만 시·군·구 기초단위든 시·도 광역단위든 주민들이 뽑는 자치단체장은 달라야 한다. “원래 그렇다”가 통하면 안 된다. 주변 여건 때문에 손을 놓았던 분야까지 토양부터 확 바꿔놓기 위해 임기 4년 동안 헌신해야 한다. 성공하면 4년을 더 하고, 실패하면 교훈을 남긴 채 물러난다는 각오로 일해야 한다. 이를 감시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할 지방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이혼하든 망하든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고, 설령 그들이 와도 넉넉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지자체를 만들 후보는 누굴까.
송국건기자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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