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밤쉘·엔테베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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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08   |  발행일 2018-06-08 제42면   |  수정 2018-06-08
하나 그리고 둘

밤쉘
미녀이기 때문에 슬픈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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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학자였던 아서 마윅이 쓴 ‘미모의 역사’에는 그리스 시대부터 역사가 아름답다고 기록해온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놀라운 점은 19세기 중반까지 언급되는 당대의 미녀들 중 상당수가 고급 매춘부 혹은 왕이나 귀족의 정부였다는 점이다. 뒤바리 부인, 에마 해밀턴, 롤라 몽테와 같은 인물들이 그 예다. 추측건대 아름다운 여성들이 대개 그런 길을 걸었다기보다는 시대적 정황상 이름이 알려지려면 그 여성들이 만났던 남성이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인물이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들은 당대에 꽤 큰 권력을 갖거나 다양한 예술작품의 모델이 되기도 했지만, 빼어난 미모 때문에 다른 재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거나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시대를 막론하고 아름다움은 선망의 대상이었던 한편 그에 대해 상반되는 감정도 뒤따랐다. 미모를 가진 이들은 행복과 성공 대신 그것이 아니었다면 따르지 않았을 비극을 맞기도 했다.


와이파이 탄생에 영향 ‘주파수 도약’ 기술 개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헤디 라머’조명한 다큐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활약했던 배우 ‘헤디 라머’(1913~2000)에게도 아름다움은 약보다 독으로 작용했다. 그녀에게 미모는 신의 선물 혹은 유전자의 선물 중 일부였을 뿐이지만, 대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그것을 그녀의 모든 것으로 치부해버렸다. 그녀가 유럽에서 찍은 ‘엑스타제’(1933)에서의 관능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렬한 탓이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제작자들이 그녀에게 편견을 갖게 된 것 또한 헤디 라머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밤쉘’(감독 알렉산드라 딘)은 뛰어난 배우임과 동시에 아이디어 넘치는 과학자이자 야심찬 영화제작자이기도 했던 헤디 라머의 일생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로 한 인물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보여준다. 다섯 살 때부터 오르골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취미를 가졌을 만큼 과학적 재능이 있었던 헤디 라머는 작곡가 ‘조지 앤타일’과 함께 보안을 강화시킨 일명 ‘주파수 도약’이라는 기술을 개발한다. 이 기술은 훗날 해군과 육군에서 활용되었고 오늘날 와이파이·블루투스 등과 같은 무선 통신을 탄생시키는데 영향을 끼쳤다. ‘구글’에서 헤디 라머 탄생 101주년에 헌정 영상을 발표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당시에 과학자로서 인정받지 못했음은 물론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도 지불받지 못한 채 은둔하며 말년을 보낸다. 만약 그녀가 다른 예술 분야에 뛰어났다면 그 재능이 이만큼 푸대접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과학이 유독 남성중심적인 분야라는 점, 특히 미모의 여배우와는 어울리지 않는 분야라는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했다. 중년 이후 잦은 성형으로 헤디 라머의 얼굴이 점차 망가져갔다는 사실은 어릴 때부터 그녀에게 쏟아진 ‘아름답다’라는 찬사의 부작용을 잘 보여준다. 과학자로서의 삶을 꽃피울 수 있었다면 노화에 대한 강박에 그만큼 시달렸을까라는 심증 때문에 그녀의 노년이 더 불행하고 안쓰럽게 느껴진다. 주인공이 헤디 라머이기에 미모라는 화두로 시작했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평생 쉽게 넘어서지는 못하는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이나 고정관념에 대한 메시지로도 확장될 수 있다. ‘넌 그런 사람이야’ ‘아니 넌 그 정도의 사람이야’라는 정의와 평가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 우리의 본모습을 제한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극장용 다큐멘터리로서 ‘밤쉘’에는 아쉬운 점도 보인다. 헤디 라머의 녹음된 육성, 생전의 모습들, 그녀의 가족과 동료들의 인터뷰가 교차되며 진행되는 구성은 그녀의 비범한 삶을 보여주기에 사실 너무 평범하다. 유대인이자 이민자로서 받았던 차별도 더 많은 분량으로 다뤄졌더라면 보다 풍성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잔 서랜든’이 제작하고, ‘다이앤 크루거’가 인터뷰이로 출연하며, 방송 프로듀서이자 연출가인 ‘알렉산드라 딘’이 감독하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의 관점으로 재조명한 삶이 담겨 있다는 데 의의가 크다. 아마도 여배우들에 대한 시선이 헤디 라머의 시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공감대가 이 영화를 탄생시킨 동력이었을 것이다. 주파수 도약 기술의 물리학적 수식처럼 단순하지 않은 헤디 라머 그대로의 그녀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장르: 다큐멘터리,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89분)


엔테베 작전
‘인질구조’ 숨막히는 7일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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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6월,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출발해 파리로 향하던 한 비행기가 4명의 테러범에 의해 납치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들은 비행기를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착륙시키고 239명의 승객을 인질로 삼아 500만달러와 테러리스트 석방을 요구한다.

이스라엘 총리는 테러범과의 협상과 우간다 침공이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한다. ‘엔테베 작전’(감독 호세 파딜라)은 그 숨 막혔던 7일간의 기록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테러범 4명, 비행기 승객 239명 우간다로 납치
테러리스트의 관점에서 사건 시작 눈여겨볼 만



독특한 점은 사건이 테러리스트의 관점으로 시작되고, 그들이 납치극을 벌이게 된 과정을 관철시킨다는 점이다. 비행기를 엔테베까지 끌고 오는 데 성공했지만 막상 우간다에서 협상권도 없이 인질 감시만 맡게 된 이들은 원치 않는 인명 피해가 발생할까 불안해한다. 반면 수백명의 인질극에 당면해 있으면서도 협상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던 이스라엘 정부는 특공대원을 파견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결과는 성공이었지만 여전히 복잡하고 위험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국을 고려할 때 단순하게 결론지을 수 있는 사건은 아닐 것이다.

호세 파딜라 감독은 이미 영화와 드라마로 여러 번 만들어졌던 ‘선더볼트’ 구조작전을 다시 한 번 다루면서 현장에 있었던 인물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는 데 주력했다. 테러리스트, 독재자, 정치인, 특공대원 등 다양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사건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도록 만든 것에서 감춰져 있던 인물들의 관계와 정치적 선택의 명암 등을 드러내고자 한 그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군사작전과 교차되는 강렬한 무용 공연 장면 또한 예술적 감수성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장르: 범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7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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