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사표는 없다 Ⅱ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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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08   |  발행일 2018-06-08 제23면   |  수정 2018-06-08
[조정래 칼럼] 사표는 없다 Ⅱ

깜깜이 선거가 아니다. 유권자의 무관심은 지방선거 때마다 언론이 으레 읊어대는 호들갑일 뿐, 오는 6·13은 흥미진진할 것임을 선거전 초반부터 맛보기로 선보이고 있다. 북미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등 국가·국제적 이슈가 지방선거판을 강타한 것도 나쁘지 않다. 북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이에 맞서는 보수 결집이란 대접전 구도가 형성된 것도 참여는 물론 관전의 즐거움을 더한다. 피 터지는 좌우 격돌은 언젠가는 한 번 치러야 할 우리 사회의 성장통일 터. 선거 결과 이념의 풍향계가 좌로 돌아갈지 아니면 우향을 더할지 그 결과 역시 지대한 관심사지만, 선거 후엔 소모적인 이데올로기 다툼도 포용과 관용의 이름으로 숙졌으면 한다.

지난 대선 전 썼던 칼럼을 재탕하려니 두 번째라는 표식이 필요하고, 차별화도 긴요하지만 엎치락뒤치락 박진감 있게 전개되는 선거전이 글 쓰는 이의 부담을 덜어준다. 지방선거는 대선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낮다. 유권자들의 지방선거 무시와 지방 홀대는 자기 하대(下待)이자 자기부정인 만큼 오는 6·13을 계기로 시대착오적인 잔재로 치부되고 청산됐으면 한다. 마침 선거판이 일찍 찾아온 무더위처럼 후끈 달아오르며 투표율도 덩달아 높아질 조짐을 보인다. 투표의향조사 결과 유권자 10명 중 7명 이상이 꼭 투표를 하겠다고 응답을 했다.

전국 최저 수준이나 꼴찌를 기록해 온 대구경북지역 투표율 또한 획기적 상승이 기대된다. 한국당 ‘공천=당선’이란 공식이 무색할 정도로 TK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고, 그 기세가 태풍이 될지 찻잔 속의 미풍으로 그칠지 분분한 해석을 낳는다. 비록 오차 범위 내지만 민주당 후보가 한국당 후보를 앞지르는 여론조사 결과에는 불신을 넘어 조작·음모론까지 제기하는 즈음 TK가 일약 격전지로 부상한 건 틀림없다. 공략과 수성을 둘러싼 여야의 TK 공방전은 새로운 투표동기를 확대재생산하며 유권자들의 투표장행(行)을 재촉할 태세다.

TK가 바야흐로 ‘투표율 꼴찌’란 오명을 벗어날 호기를 맞았다. 여야 혹은 무소속 간에 전례없이 조성된 접전국면은 전국적인 이목을 쏠리게 하는 관전 포인트다. 유권자들의 한표 한표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이른바 사표(死票)심리에 의한 기권의 빌미마저 허용되지 않는다. 되풀이 강조하지만 사표란 있을 수 없다. TK의 선거판세가 요동을 치고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한국당의 공천 전횡에 대한 심판을 하든지, 민주당발 북풍을 저지하든지 꼭 투표를 해야 할 이유는 선명하고, TK 유권자들은 모처럼 존재감을 만끽해도 좋게 됐다.

‘나 하나쯤’으로 자기비하하는 기권은 오랜 기간에 걸쳐 기득권자인 기성 정치인들이 시나브로 쌓아온 승자 독식구도와 정치혐오 탓이지 정치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 아니다. 수준 미달의 정치인들은 낮은 투표율을 먹고 목숨을 이어간다. 선거에 무관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렇게 자명하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우리만큼 높은 나라도 드물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촛불시위를 보라. 정당정치와 선거에 염증을 느껴 투표장엔 안 가는 사람들도 우르르 광장으로 나간다.

투표는 물론이고 정치 특권층이 높여 놓은 진입장벽을 걷어내는, 아래로부터의 정치운동도 게을리할 수 없다. 사표를 조장하는 법과 제도만도 수두룩하다. 소선거구제는 지역주의에 기댄 민주·한국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과 나눠먹기의 결과물이고, 승자독식제인 다수투표제는 사표를 양산해 내며 소수 정당의 제도권 진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악법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비례대표제가 도입됐지만 제기능을 하기엔 역부족이다. 지역 정당의 설립을 못 하도록 규제하고 있는 정당법은 정치적 다양성을 차단한다. 정치권이 이들을 자발적으로 손볼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우니 촛불이라도 들어야 할 일 아닌가.

‘60대 이상 어르신들은 투표하지 말고 집에서 편히 쉬시라’는 한 정치인의 말실수는 정치인들의 검은 속내를 여실히 드러낸다. 언론사 등이 스테레오 타입으로 전파하는 선거 무관심이 투표율 증가를 바라는 선의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적중되지 않았으면 하는 노파심으로 읽히기도 하는, 사뭇 기대되는 6·13 TK 선거판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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