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대구는 ‘샤이 보수’가 됐는가?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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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06   |  발행일 2018-06-06 제23면   |  수정 2018-06-06
[박재일 칼럼] 대구는 ‘샤이 보수’가 됐는가?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표되는 여론조사는 가히 산사태에 가깝다. 어디까지나 샘플 조사에 불과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휩쓸고 있다. 심지어 함께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12군데 중 민주당이 11곳, 무소속 1곳이 우세하다는 조사도 보도됐다. 과거에도 특정 정당의 전국적 우위가 드러난 조사가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수치상 회복불능식으로 일방적인 경우는 없었다. 전례 없던 일이다.

TK로 불리는 대구 경북의 변화는 더 드라마틱하다. 영남일보가 잇따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구시장·경북도지사는 여전히 자유한국당이 우위에 있지만, 대구의 상당수 구청장과 경북의 핵심 시장·군수 선거에서는 초접전을 예측했다. 1998년 자치단체장 직선제 도입 이후 지금의 민주당 계열 후보가 여론조사에서조차 1위로 나온 적은 대구 경북에서 기억에 없다. 선거 결과도 그랬다.

민주당이든 자유한국당이든 불문하고 충격으로 받아들인다. 한국당 관계자들은 여론조사가 잘못된 부분을 찾고 있다. 설마 하고 의심하고 있다는 뜻이다. 민주당도 입가에 미소는 띠는데 역시 ‘진짜 우리가 앞서고 있는가’란 자문 속에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불안을 언뜻언뜻 내비친다.

한국당 지지자들의 의구심에는 자신들의 텃밭으로 40년 이상 다져온 정치적 아성이 이렇게 무너질 수 없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6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TK 유권자는 무려 80%가 투표에 참여해 80%의 경이적 지지를 박근혜 전 대통령 후보에게 보냈다. 그 많던 보수쪽 TK표들이 6년 만에 다 사라졌는지에 대한 반문이다.

여론조사에 대한 의심에는 여러 이유가 제기된다. 먼저 응답률이다. 자동응답이냐 면접조사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지만, 전화에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의 정치 성향이 누락되고 있다는 항변이다. 실제로 자동응답의 경우 1천개 샘플을 얻으려면 근 1만통 이상의 전화를 걸어야 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금의 여론조사는 전부 민주당 지지자들만 답하는 경우라 절대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논리다.

또 하나는 여론조사 기관이나 언론사의 성향 자체를 의심한다. 이건 좀 복잡한 문제인데, 과학적 여론조사도 특성상 사람이 하는 것이라 깊게 들어가면 그런 나쁜 의도나 선입관을 100% 걸러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조사기관이나 언론사의 오랜, 축적된 발표를 관찰해 봐야 한다. 권위있는 여론조사기관이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주장은 ‘샤이(shy) 보수’다. 말 그대로 ‘부끄럽고 쑥스러워’ 현시점에서는 정치적 성향을 숨기는 부류다. 전국의 보수층은 몰라도 최소한 보수의 마지노선이라 불리는 TK에서는 샤이 보수가 존재하고, 결국 투표장으로 이들이 결집할 것이란 희망이다. 스포츠적 승부의 요소를 정치에 가미한 선거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미국 대선에서 완벽한 열세로 보였던 트럼프의 대이변이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5월 대선에서 일부 감지됐다. 대구 경북만 놓고 보면 주요 언론사의 사전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는 평균 26% 선이었고, 홍준표 후보는 32% 선이었다. 반면 실제 득표율은 21.8% 대 47%로 훨씬 벌어졌다.

샤이가 된 이유는 쉽게 추정할 수 있다. 박근혜 탄핵사태와 그에 대한 보수세력의 어설픈 대처, 자성 없는 당의 분열, 문재인정부의 남북 해빙정책에 대한 습관화된 해석(그냥 평화쇼라고 했다), 자신들이 배출한 전직 두 대통령의 수감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지 못하는 침묵, 지도부의 부재 내지 분열이 그런 이유다. 그렇다면 샤이해진 보수층을 얼마나 회귀시키느냐가 한국당의 남은 과제로 보이지만, 역산하면 쉬운 작업은 아닌 듯 보인다.

선거전의 한 과정이 된 여론조사는 흔히 그 시점의 식빵을 잘라낸 슬라이스라고도 한다. 빵 속에 뭔가 들어있는 것을 추정할 뿐 빵의 온전한 실체를 묘사한 것은 아니다. 식빵 전체는 결국 현장 투표가 결정할 것이다. 샤이의 실체가 무척 궁금하다.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박재일기자 park1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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