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국회의 나잇값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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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04   |  발행일 2018-06-04 제31면   |  수정 2018-06-04
[월요칼럼] 국회의 나잇값
허석윤 논설위원

올해는 대한민국 국회가 개원한 지 70년이 되는 해다. 사람 나이로는 보통 고희(古稀)라고 한다. 인생 칠십 넘기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뜻이다. 옛날엔 물론 그랬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읊조렸던 당나라 시인 두보 역시 환갑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사정이 다르다. 평균 수명이 이미 80세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70세를 고희라고 하는 건 어폐가 있다. 그보다는 ‘종심(從心)’이란 표현이 적절할 듯싶다. 공자가 ‘일흔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한 데서 유래된 말로 교훈적이기도 하다.

공자의 경지까지야 범접하기 힘들겠지만 평범한 사람도 그 정도 나이면 참된 도리를 알고 행하려는 게 정상일 것이다. 하물며 나라 안에서 가장 잘난 사람들이 모였다는 국회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칠십 성상(星霜)이란 세월이 무색하게도 국회는 여전히 나잇값을 못한다. 국민에 대한 도리를 지키기보다 제 밥그릇 지키는 일에만 열심이다. ‘민생국회’가 아닌 ‘민폐국회’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적폐청산과 개혁은 시대적 화두다. 민주주의를 농단했던 거악(巨惡)에 맞서 촛불혁명을 일으켰던 국민의 엄중한 명령이다. 이에 문재인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개혁의 칼을 빼들었지만, 아직 성과는 미흡하다. 검찰을 필두로 한 권력기관들의 저항이 만만찮다. 사실 기득권을 쉽게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국민에게 눈치는 보였는지 대부분의 권력기관이 개혁 시늉은 내고 있다. 하지만 국회는 그마저도 안 한다. 개혁의 낌새조차 찾아볼 수 없다. 아마 국회 스스로 필요성도 못 느낄 것이다. 정치인의 낯이 두껍다고는 하지만 해도 너무한다. 민의를 대변하기는커녕 민폐만 끼치는 ‘적폐의 전당’을 언제까지 두고만 봐야 하는지 답답하다.

국회가 개혁 대상 1순위가 돼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웬만한 박사학위 논문 분량은 족히 될 것이다. 무엇보다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 비싼 몸값에 비해 성능은 형편없다. 불량품에 가깝다. 사실 한국만큼 국회의원이 과분한 대우를 받는 나라는 거의 없다. 1억4천만원가량인 연봉만 해도 국민소득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다 무슨 보직이라도 한자리 꿰차면 거액의 ‘용돈’(특수활동비)까지 챙길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통·통신비 등 모든 게 공짜인 것에서부터 불체포·면책에 이르기까지 누리는 특권이 200가지가 넘는다. 만약 일반인이 남의 배려로 이런 호사를 누린다면 미안해서라도 맡은 바 소임을 다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어떤가.

20대 국회가 반환점을 돌았다. 2년 전 출범할 때만 해도 뭔가 달라질 것이란 일말의 기대가 있었지만 ‘역시나’였다. 20년 만에 양당 독식이 아닌 다당 체제가 됐지만 변한 것은 없다. 협치는 말뿐이고 정쟁과 태업의 연속이다. 당리당략을 앞세운 여야의 극한 대치가 일상화되다 보니 이게 국회 본연의 모습인 것처럼 착각이 들 지경이다. 국회가 직무유기를 한 사안이 한둘이 아니지만 개헌을 뭉개고 있는 것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특히 야당 일부가 지역민의 염원인 지방분권 개헌에 딴지를 거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민생법안도 처리할 생각이 있기나 한지 의문이다.

국회의 무능력을 빗대 ‘식물국회’라고들 한다. 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식물에 대한 모독이다. 식물은 한 치 어김없이 제 할 일을 다한다. 꽃을 피우지 않거나 열매를 맺지 않는 식물을 본 적이 있는가. 식물이 아닌 ‘광물국회’에 가깝다. 국회는 나이에 걸맞게 염치부터 알아야 한다. 제 특권 지키기에 쏟는 노력의 일부만이라도 국가와 국민에게 기울인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국회가 무소불위의 힘만 믿고 끝내 개혁을 외면한다면 다른 방법이 없다. 최고 권력자인 국민이 직접 나서 국회를 정신 차리게 해야 한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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