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미국 공공도서관의 낯선 풍경, 그리고 문해율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8-06-02   |  발행일 2018-06-02 제23면   |  수정 2018-06-02
[토요단상] 미국 공공도서관의 낯선 풍경, 그리고 문해율

내가 사는 미국의 작은 동네엔 아주 잘 지어진 공공도서관(public library)이 있다. 깨끗한 시설에 친절한 직원들이 여럿 있고, 많은 종류의 책이 갖춰져 있음은 물론이며, 영화를 위시한 시청각 자료가 풍성하고 마이크로 자료 또한 개방돼 있다. 좌석이 넉넉한 열람실 외에 세미나실, 강연장, 카페테리아에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공간도 따로 있어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하루 종일 북적거리는 편이다.

미국 도서관의 특징이라 할 게 두 가지 있다. 무엇보다 첫째로 꼽을 것은 조용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문의를 받고 상담을 해 주는 직원들의 자리가 열람실 한가운데 있는데, 칸막이 같은 것이 전혀 없어서 그들의 목소리를 언제나 듣게 된다. 일반 사용자들 또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대체로 목소리는 낮추지만 ‘도서관이니까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식의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도서관 하면 절대 정숙을 떠올리게 마련인 우리에게는 정말 낯선 풍경이지만, 옛날의 글 읽기란 거의 소리 내어 읽기여서 전근대의 도서관들이 시장통처럼 시끌벅적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그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자연스럽기도 하고 유익하기도 하다.

또 하나의 특징은 도서관에 마련된 책과 잡지, 비디오 자료 등의 구성에서 찾아진다. 말 그대로 다양하다. 어린이 서가에 여러 종류의 책들과 더불어 놀이기구까지 있는 것은 논외로 치자. 비디오 코너는 온갖 상업영화까지 두루 망라하고 있으며, 신문과 잡지 서가는 주요 신문과 시사잡지 외에 각종 생활정보 잡지들에 패션잡지까지 갖추고 있다. 책의 면면도 그렇다. 도서관들이 으레 갖추기 마련인 다양한 도서들에 더해서 요리 관련 서적이나 정원 가꾸기, 집안 장식하기 서적 등이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방 소도시 공공도서관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중국 현대문학 연구 등 전문 연구서와 더불어 베스트셀러는 물론이요 숱한 판타지나 SF·추리소설들에 각종 상업잡지까지 두루 망라하고 있는 것이 내게는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일전에 들른 딸아이 고등학교의 도서관 또한 거의 똑같은 도서 구성을 보여서 깜짝 놀랐다. 학교가 알아서 ‘양서’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접하게 마련인 각종 도서·잡지까지 망라해 말 그대로 풍요로운 읽을거리를 갖춰 준 까닭이다. 미국 전역의 공공도서관들이 다 이런지는 알 수 없지만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대부분의 도서관이 독서실처럼 되어 버린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미국의 도서관이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읽을거리와 볼거리들을 접할 수 있는 ‘생활 속의 도서관’에 한층 가까워 보인다.

미국 공공도서관의 이러한 면모는 우리나라 국민의 문자언어 생활 현황을 생각할 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인의 문맹률은 제로에 가깝지만 새로운 정보를 담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수준의 문해율은 25%가 채 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은 독서 문화가 저조한 사실이다. 국민 1인당 독서량이 일본에 비해 1/3 정도밖에 안 되고, 참고서 분야를 빼면 출판시장이 심히 위축되어 있으며, 베스트셀러 대부분이 자기계발서 등으로만 채워지는 것이 우리 독서 문화의 문제적인 현실이다.

일반인의 독서 문화를 증진하기 위한 방법으로 도서관의 변화 또한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도서관 수를 늘리고 책을 많이 구비하는 일 못지않게 도서관 장서의 구성 기준을 편협하지 않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소수의 양서를 억지로 주입하려는 듯 대부분의 사람이 쳐다보지도 않는 책만 갖추는 대신에 누구나 흥미를 가지기 쉽고 친숙하게 읽을 수 있는 책까지 다양하게 갖춤으로써 독서의 확산을 통해 국민 일반의 문해율을 높이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