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세제혜택 받고 씽씽 달리는 친환경? 전기차의 딜레마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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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02 07:45  |  수정 2018-06-02 08:48  |  발행일 2018-06-02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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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는 대표적인 친환경차다. 하지만 탄소배출과 미세먼지 발생량, 브레이크패드·타이어 마모 등 전체 과정을 보면 전기차도 상당한 오염물질을 내뿜는다. 친환경차를 내세우는 전기차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영남일보 DB>

화석연료의 고갈과 미세먼지 대책의 일환으로 친환경차가 주목을 받고 있다. 친환경차의 대세는 전기차다. 소비자나 생산자가 내연기관차를 쉽게 포기하지 못할 거란 전망이 강했으나 ‘디젤 스캔들’이 터진 이후 그런 믿음은 통째로 흔들렸다. 지난 100년간 수송차량 시장을 지배한 가솔린·디젤 등 화석연료 내연기관 차량의 시대는 저물고 ‘전기차 빅뱅’이 예고되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자동차가 전기로 달리게 된다면 문제가 해결될까? 기승을 부리던 미세먼지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자원 고갈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될까? 이미 세계 자동차 산업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은 전기차의 우려점에 대해 살펴봤다.

충전용 전기발전 단계
상당한 미세먼지 방출
타이어·브레이크 마모
비산먼지도 대량 발생

전기자동차 미세먼지
휘발유차 92% 주장도

美 트랜식연구소 평가
대형 전기차 탄소 배출
소형 내연기관차 추월

아파트엔 고정충전기 설치 곤란
전력수급·긴 충전시간도 난제


◆전기차는 친환경차?…미세먼지와 탄소 배출

전기차 보급정책은 미세먼지 발생의 주범으로 꼽히는 경유차의 퇴출과 맞물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미세먼지 저감 대책과 관련해 2030년까지 경유 승용차의 운행 중단을 해법의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정부 조사 결과를 보면 경유차는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 분명하다. 경유차 퇴출 공약은 수도권 미세먼지의 29%가 경유차에서 나오고 있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발표 기관이나 지역에 따라 경유차의 미세먼지 원인 기여도는 적잖은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경유차가 미세먼지 발생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2015년 발표한 ‘대구오염물질 배출량 보고서’를 보면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이 가장 많은 곳은 공장 등 사업장(41%)이다. 건설·기계(17%)와 발전소(14%)가 각각 2, 3위로 꼽혔다. 경유차(11%)는 그다음이었다. 반면 공장이나 발전소가 많지 않은 수도권으로 범위를 좁히면 경유차가 1위를 차지한다. 수도권 미세먼지의 원인을 꼽는 분석이 경유차를 겨냥해 만들어진 셈이다.

전기차의 미세먼지 배출량이 휘발유차의 92.7%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브레이크나 타이어 마모 때 나오는 먼지와 충전용 전력 생산 과정에서 생기는 온실가스 배출 등도 같이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올 초 ‘자동차의 전력화 확산에 대비한 수송용 에너지 가격 및 세제 개편 방향 연구(책임자 석유정책연구실 김재경 연구위원)에서 1㎞ 주행할 때 전기차가 온실가스(CO●-eq)는 휘발유차의 53%, 미세먼지(PM10)는 92.7%를 배출한다고 밝혔다.

특히 미세먼지의 경우 내연기관차와 같이 브레이크 패드나 타이어 마모를 통해 비산먼지를 양산하며 전기차 충전용 전기 발전 단계에서도 상당한 미세먼지를 배출한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연구 과정에서 전기차의 경우 차량 배기구를 통한 직접 배출만 고려하고, 전기차 충전용 전기(수송용 전기) 생산 과정 등에서 나온 간접 배출은 간과해 잘못된 측정치가 나왔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전기차의 탄소 배출이 소형차보다 많다는 주장도 나왔다. 탄소 배출이 전혀 없다고 알려진 전기차 테슬라S가 생애주기로 따져보면 소형차인 미쓰비시 미라지보다 탄소 배출이 더 많다는 실험 결과를 전했다.

구체적으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트랜식연구소가 실험한 결과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미국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S(P100D 살롱)’가 미국 중서부 도로 주행 조건에서 ㎞당 226g의 탄소를 배출했다. 반면 같은 주행에서 가솔린 엔진차인 일본 미쓰비시 미라지는 192g이었다. 트랜식연구소는 에너지 성능 평가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곳이다.

MIT 트랜식연구소의 결과대로라면 생산에서 폐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따지면 대형 전기차가 소형 가솔린·디젤차보다 오염물질을 더 내뿜는 셈이다. 총주행거리 27만㎞를 기준으로 탄소 배출량은 테슬라S가 6만1천115㎏, 미라지는 5만1천891㎏으로 내연기관차가 더 친환경적이었다. 물론 내연기관인 대형 승용차 BMW7이 10만3천851㎏을 배출한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이다.

대형 전기차가 소형 내연기관차보다 환경에 더 나쁘다는 실험 결과는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이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오염물질을 더 내뿜는 전기차가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받으면서 도로를 마음껏 내달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대중화 앞선 과제 ‘짧은 주행거리, 긴 충전 시간, 전력 수요’

문재인정부는 미세먼지 대책의 일환으로 전기차 보급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2020년까지 자동차 150만대를 친환경차로 대체하고 전기차 충전기 3천100기를 확충하기로 했다. 계획대로라면 신차 판매의 30%(연간 48만대)는 친환경차로 바뀐다.

이에 따라 전기차는 우리 생활 곳곳으로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 올해 들어 전기차 구매 예약은 2만2천대를 넘어섰고, 2014년 이래 5년 만에 처음 연간 판매량 3만대에 육박하고 있다.

국내에서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건 2014년(판매량 1천75대). 2015년 2천907대, 2016년 5천914대가 팔린데 이어 지난해에는 1만3천826대가 도로로 쏟아져 들어왔다. 해마다 전년 대비 2배 넘게 팔릴 만큼 빠른 성장세다.

전기차 선도도시를 외치는 대구의 전기차 보급률은 3년 만에 5천대를 바라보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지역에 보급된 전기차는 총 2천441대다. 등록대수는 2천5대로 2016년 344대에 비해 5.8배나 늘었다. 지역별로는 제주 9천206대, 서울 4천797대, 경기 2천29대 다음으로 많다. 대구시는 내년에는 전기차를 1만2천대로 늘리고 2020년에는 3만대, 2030년엔 대구시 등록 차량의 50%인 50만대를 전기차로 바꿀 계획이다.

하지만 전기차가 늘어나면 그만큼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문제가 발생한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아닌 전기차들이 도로 위를 다니려면 그것들을 충전해 줄 전력도 그만큼 늘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수요에 공급을 맞추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름철에는 냉방기기 가동에 따른 전력의 수요도 급증하기 때문에 전력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국에서 전기차 비중이 가장 높은 제주시의 예상치를 통해 알 수 있다. 전력거래소 제주지사는 2030년까지 제주지역의 모든 자동차(지난해 12월31일 기준 자동차등록대수 50만대)가 전기차로 대체될 경우 전기차가 연간 총전력 소비량의 34%가량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구의 자동차등록대수만 해도 제주지역의 2배 이상인 115만대에 달하는 탓에 대구시가 계획대로 전기차를 늘릴 경우 전력 소비량을 감당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된다.

긴 충전시간도 전기차 시대에서 문제점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전기차 충전기는 30분 안에 충전이 가능한 급속 충전기, 3~5시간 걸리는 고정형 완속 충전기, 5~10시간이 필요한 휴대용 완속 충전기 등 3가지가 있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배터리를 급속 충전할 경우 수명이 줄어드는 단점 때문에 완속 충전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완속 충전의 경우 충전시간이 걸림돌이다. 대도시 인구의 약 70%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국형 주거 환경의 특징을 감안하면 자택에 고정형 충전기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 특히 오래된 아파트는 지하 주차장도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전기차를 위해 별도 공간을 정해 놓고 충전기를 설치하는 게 만만치 않다.

이러한 단점들은 차세대 이동 수단으로 알려진 전기차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고민이다. 특히 짧은 주행거리, 긴 충전 시간, 전력 수요 등은 전기차 시대를 맞아 기술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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