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애의 문화 담론] 한국의 뷰티 문화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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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01   |  발행일 2018-06-01 제39면   |  수정 2018-06-15
비너스의 끝없는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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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 관련 부정적 이미지를 표현한 사진.<출처= 구글 https://www.google.com>

비너스는 사랑과 풍요를 상징하는 고대 그리스의 여신이다. 그래선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에겐 언제나 비너스가 동경의 대상이 되어왔다. 여성 특유의 외모지상주의 때문인가. 남보다 더 아름다워지고 싶고 더 사랑받고 싶어하는 원초적 본능 탓인지도 모른다.

의성(醫聖) 히포크라테스는 인체의 생리나 병리를 체액론(體液論)에 근거한 자연치유설로 환자 치료의 원칙을 삼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의 후예들은 의술이 점차 발전하고 외상환자가 늘어나면서 의학적 인술(仁術)의 덕목으로 외과수술을 선택했다. 그 결과 외과수술은 성형시술의 원천이 되었고 아름다운 비너스상(像)을 추구하는 뷰티문화의 대명제가 되었다.

팔자주름·처진볼살·입가주름 리프팅
남녀 구별 없는 ‘뷰티시술 전성시대’
中 유커들도 성형·미용 관광 몰려와
취업·사회 진출, 외모중시 문화 한몫
5060세대 젊은이 못지 않게 문전성시
의료사고 후유증도 사회문제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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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조각상 가운데 하나인 ‘밀로의 비너스’.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과 미를 관장하는 여신인 아프로디테를 묘사한 대리석상으로, 고대 그리스인이 인식한 가장 아름다운 인체의 비율이라는 ‘황금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국의 히포크라테스 후예들도 성형시술을 독창적으로 개발해 뷰티문화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면서 이제 “한국에서 비너스가 재현되고 있다”는 세계적 평판까지 듣게 되었다. 때문에 한국의 성형시술이 국내보다 해외에서 문화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뷰티시술을 위해 관광 러시를 이룬다고 한다. 이른바 뷰티 한류다.

특히 전통 경극(京劇)의 영향으로 성형과 미용술에 유별난 애착을 지닌 중국인들에겐 한국의 뷰티문화가 뜨거운 매력 포인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드 기지 갈등으로 한동안 끊겼던 유커들의 발길이 다시 이어지고 서울시내 유명 성형외과나 피부과 앞엔 관광스케줄의 틈새를 비집고 뷰티시술을 받으려는 유커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마치 면세점을 찾듯 비교적 저렴한 시술비로 한두 시간 안에 간단한 뷰티시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커들 사이엔 특별한 수술이 필요없는 리프팅과 보톡스가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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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1908년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근교의 구석기  시대  지층에서 발견된 11.1㎝ 크기의 여자 조각상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이상적으로 표현한 여성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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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팔자주름이나 심술보, 입가주름, 처진 볼살 등은 간단한 리프팅으로 “10년은 더 젊게 보인다”는 입소문을 타고 덩달아 뷰티문화에 편승하고 있다. 게다가 요즘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뷰티시술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한다. 남녀 구별없이 바야흐로 뷰티시술 전성시대가 온 것이다.

성형·미용 등 뷰티시술이 일반에 널리 유행한 것은 취업이나 사회 진출에 따른 스펙의 하나로 외모를 중시하는 문화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경쟁적으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얼굴이나 노출된 신체의 부분적인 성형 또는 미용에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주근깨나 깨알점 등은 어쩌면 매력 포인트로 보일 수도 있으나, 사주팔자로 인해 입담에 오르내리면 마음에 걸려 뷰티시술로 빼는 이들이 많다. 이런 상황에 대해 혹자들은 빗나간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의견도 제시한다.

은퇴 후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5060세대들도 젊은이 못지않게 뷰티시술에 신경을 쓴다고 한다. 고령화시대에 노화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고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주변에서 나를 어떻게 봐줄까하는 생각, 즉 남을 의식하는데 이는 보다 젊게 보이고 젊게 살고 싶은 욕망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뷰티시술로 인한 부작용과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요즘 유행을 타는 보톡스의 경우 일시적으로 근육을 마비시켜 얼굴의 주름을 없애주긴 하지만 과도한 주름펴기가 무표정한 모습으로 바뀌고 평소 자유자재로 표현하던 감정능력까지 떨어트린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무분별한 뷰티시술은 자칫하다간 본인의 얼굴이 아닌 남의 얼굴처럼 바뀌기 일쑤다. 그동안 성형의료계에서 알게 모르게 덮어뒀던 의료사고의 후유증이 뒤늦게 드러나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얼마 전 서울 강남의 한 피부과에서 뷰티시술을 받은 환자 20여 명이 저혈압과 구토·발열 등 집단패혈증상을 일으켜 대학병원 응급실로 후송되는 긴급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보건당국의 역학조사 결과 환자들에게 투여한 수면 마취제 프로포폴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또 앞서 한 유명연예인이 피부에 생긴 지방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다가 집도의사의 실수로 의료사고가 발생한 사실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일도 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여론이 악화되지 않는 한 뷰티시술을 하다가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좀체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피해보상 문제가 발생하는 데다 이미지 추락에 따른 영업손실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정으로 끌고가 최종판결이 나기까지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2014~2016년에 발생한 의료소송 2천854건 중 법적으로 가해자의 실수를 인정한 것은 33건(1.2%)에 불과했다. 게다가 피해사실이 분명한 의료사고마저 의료진이 부분적으로 실수를 인정해 일부 피해보상을 한 경우는 831건(29.1%)뿐이다(대법원 사법연감).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공자의 효경(孝經)에 나오는 말이다.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함부로 손상하거나 훼손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꽃은 피었다가 10일을 못 견디고 시들게 마련이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요 순리다. 주름살을 없애고 흰 머리를 까맣게 염색한다고 결코 젊어지는 게 아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 타고난 얼굴이 비록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비너스의 환상에서 깨어나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임이 어떨까?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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