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 달래는 ‘장터표 곰탕’…한점 씹으면 바닥 보여야 젓가락 놓는 ‘육회’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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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01   |  발행일 2018-06-01 제35면   |  수정 2018-06-01
[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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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경영하는 산성식당의 곰탕. 여긴 뼛가루 때문에 사골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기름을 쓴다(왼쪽). 영천을 육회의 고장으로 만든 편대장영화식당의 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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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②③ 영천농업기술센터에서 돔배기 활성화를 위해 개발한 돔배기 김치찜·쌈말이·연잎밥. (천농업기술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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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껍질과 머리고기를 이용해 묵처럼 굳힌 상어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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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동안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삼송꾼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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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배기 써는 모습.

◆영천장 & 돔배기

돔배기와 곰탕을 만나러 ‘영천장’으로 간다. 예부터 ‘잘 가는 말도 영천장, 못 가는 말도 영천장’이라는 말이 있다. 갈 곳은 영천장밖에 없다는 뜻이다. 대구 약령시, 안동장과 함께 ‘영남의 3대 시장’으로 명성을 누린 곳이 바로 영천장이다.

조선 때 영천에는 읍내장, 묵석장, 신녕읍내장, 황지원장, 고현장 등 모두 5개의 큰장이 있었다. 영천장은 1955년 창구동 조양각 앞에 있다가 현재 자리인 완산동으로 이전됐다. 이후 2005년 아케이드 시설이 가설된다. 모두 4구획으로 나눠져 있다.

동해안의 수산물을 비롯해 농작물, 한약재, 축산물 등이 황금분할적으로 세팅될 만한 곳이 그렇게 흔치 않았다. 그런데 영천은 그 조건을 갖추었다. 특히 영천은 충북 제천, 경남 함양과 함께 약초의 고장. 약재상을 위한 각종 한약재 유통이 압도적이다. 대구 약전골목도 영천 약초시장과 실시간으로 호흡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부터 인구가 감소하고 유통구조가 변화하면서 한때 15곳이던 시장이 2000년대 이후에는 3개(영천·신녕·금호시장)로 급감했다. 읍내장에 속해 있던 우시장은 ‘영천축산시장’, 약재시장은 ‘영천한약유통단지’로 변했다.

‘돔배기존’으로 향했다. 명절이 아니라서 한산하다. 제수용·식당용 정도만 거래된다. 한창 때는 30개 업소, 지금은 23개 업소가 있다. 이 바닥에서 가장 나이 많은 상인은 이철희 어르신(85). 그는 ‘철희상회’를 운영하고 있다.

진열 방식도 가게마다 거의 비슷하다. 그날 사용할 10여 덩이 정도의 물량만 내놓고 나머지는 냉장·냉동고에 넣어둔다.

영천장 물량은 부산공동어시장을 통해 영천 총판격인 인성상회와 태원상회로 와서 가게로 공급된다. 총판으로 실려온 통마리 상어는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특수공정이 필요하다. 일단 산적용으로 더 자잘하게 분할하기 전에 염장 돔배기 형태로 모양을 잡아줘야 한다. 이건 영주 중앙시장 문어가게 주인들이 강원도 묵호산 참문어를 뜨거운 물에 넣어 바나나 다발처럼 모양잡는 것과 비슷한 공정이다. 다음에는 안동간고등어 간잽이처럼 능수능란하게 소금질을 한다. 돔배기는 소금에 절인 다음 2℃에서 냉장 숙성시킨다. 여름에는 하루 정도, 겨울은 2~3일 숙성시킨다.

돔배기와 간고등어, 문어와 함께 육지에서 만난 생선, 즉 ‘육어(陸魚)’다. 이 세 육어는 다른 지방에선 무력하다. 유독 영남사대부 집안의 대표적 제수로 사랑받는다. 안동은 돔배기보다 문어를 더 선호한다.

그런데 영천은 돔배기 때문에 안동한테 섭섭한 감정을 갖고 있다. 돔배기 상표권을 영천이 아니라 안동의 한 간고등어 사장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한국 육회 1번지’로 불리는 영천시외버스정류장 바로 옆에 있는 ‘편대장영화식당’. 다른 식당이 먼저 상표등록하는 바람에 패소해서 자기 상호를 사용하지 못한 것과 비슷한 형국이다. 특허의 세계는 그렇게 냉정하다.

25년 구력의 북안어물전 이정숙 사장(63)을 만났다. 그녀는 원래 이 장터에서 식육점을 운영하다가 전업했다. 그녀가 ‘토막질’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보기와 달리 돔배기 장사는 일단 칼질을 잘해야 됩니다. 모두부처럼 각지게 잘 장만하기도 어렵고 적당량의 소금으로 염장해서 숙성시켜야 하는데 그게 교과서에 나오는 것도 아니죠. 시행착오를 통해 눈대중과 손대중을 익혀야 이 바닥에서 살 수 있습니다.”

잘 못해 움푹 패어 흠집이 생기면 하품으로 추락하게 된다. 40㎏급 한 마리가 오면 머리, 목, 배, 꼬리 등 모두 6등분시킨다.

시장에 깔리는 돔배기는 크게 두 종류. 살색이 어둡고 검붉은 ‘귀상어(양제기·양지)’와 색이 밝고 붉은 빛을 띤 ‘청상아리(모노)’가 주로 사용된다. 그중 머리 모양이 T자 모양으로 뭉툭한 상어가 귀상어인데 가장 비싸다. 그다음으로 청상아리와 참상어가 잘 팔리며, ‘악상어’인 준달이 등은 하급이다.

예전 일제강점기엔 흑산도 근역이 ‘상어어장’으로 각광받았다. 1960년대만 해도 10~11월 전국의 상어배가 그 해역으로 몰렸다. 흑산도 민가에는 상어를 보관하는 지하염장저장시설인‘간독’이 필수였다. 그런데 이젠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세계자연보전연맹에서 상어를 멸종위기종으로 정했다.

특히 대구권 주당이 유달리 좋아하는 ‘특수육’이 있다. 바로 ‘피편’과 ‘두치’. 피편은 머리살과 껍질을 갖고 묵처럼 굳혀 썰어낸 것이다. 두치는 일견 눌린 소머리고기를 연상시킨다. 부산권에선 ‘두투’로 불리는 두치는 상어의 부산물을 부위별로 삶아 수육으로 만든 음식이다. 신세대 부부를 위해 산적용 돔배기도 판다. 바로 구워먹을 수 있게 미리 5개를 꼬치로 꽂아놓았는데 가격은 1만원.

현재 대구경북 전역이 돔배기권이고 경남권은 부산과 울산이 돔배기를 많이 소비한다. 대구경북 출신이 타지에서 소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천농업기술센터도 영천을 돔배기 고장으로 알리기 위해 다양한 음용 메뉴를 보급하고 있다. 돔배기로 별별 메뉴를 다 만들어 전시회를 벌였다. 산적과 탕은 물론 김치찜, 연잎밥, 만두, 무침, 튀김 등을 개발했다. 이와 함께 영천전통돔배기연구소는 제사상 돔배기의 저장성 및 품질 향상을 위한 진공포장법 등 5가지에 대해 특허출원을 했다.

괴연동 농가맛집인 ‘숲속안골길’은 곁반찬으로 피편과 돔배기전을 내고 있다.

영남지역 3대 시장 명성 누린 영천장
경북 사대부 제수로 사랑받는 돔배기
반듯한 칼질·염장·숙성에 생사 달려
대구권 주당들이 좋아하는 피편·두치
김치찜·연잎밥·튀김 다양한 음용 메뉴

소머리 통째 넣는 곰탕집 손꼽을 정도
40년차 곰탕파 김순자 사장의 산성식당
옆에 자리한 3대째 가업 포항할매곰탕
이명박·노무현 前 대통령 찾은곳 유명

육회 1번지 불리는 ‘편대장영화식당’
미나리·파·마늘즙 기막힌 혼합 비율
삼송꾼만두·금호할매추어탕 ‘핫플’


◆ 영천곰탕

돔배기존 바로 옆에 ‘곰탕골목’이 있다. 소머리가 통째로 들어가는 곰탕집은 전국에 별로 없다. 고작 의성 중앙시장 내 ‘남선옥’, 경기도 ‘곤지암 소머리국밥촌’ 정도다. 그런데 영천에 오면 돼지국밥은 별로 힘을 쓰지 못한다. 다들 곰탕에 매달린다. 영천곰탕의 선배격은 금호읍 교대리 장터에 있는 ‘하양할매곰탕’이다. 초대 사장 김순남 할매는 2016년 타계했다. 2002년 이전까지는 금호읍 장날에만 영업했다. 시장 가건물에 휘장을 두르고 비바람 맞아가며 곰탕을 끓였다. 할매는 성격이 괄괄했고 일절 취재를 허락하지 않았다. 현재 그 언저리는 철거됐다. 곰탕집은 현대식 건물로 옮겨왔다.

영천장 곰탕거리에는 대통령이 방문해 유명해진 식당이 두 곳 있다. 한 곳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찾았던 ‘산성식당’. 다른 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찾았던 ‘포항할매곰탕’. 두 곳은 모두 식당 세 칸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유진식당’도 대를 이었다. 희망식당, 길손식당, 삼봉식당, 대영식당 등도 장터표 곰탕으로 손님의 허기를 채워준다.

산성식당을 찾았다. 이 집 맛은 영천 이마트 앞 영대병원 바로 옆에 있었던 소도축장에서 비롯된다. 산성식당의 특징 중 하나는 식재료의 진실을 정확하게 공개한다는 것. 군위군 산성면 출신인 김순자 사장은 40년차 곰탕파. 16년 전 그의 딸 신혜숙씨가 전면으로 나섰다. 힘쓸 일이 많아져 9년 전엔 아들 신정일씨가 가세했다. 김 사장의 남편 신기찬씨(70)도 아버지로부터 기술을 이어받은 도축 전문가. 곰탕 전문집답게 본솥과 보조솥이 여럿 놓여 있다. 가마솥은 특유의 쇳물 때문에 늘 중고만 사용한다. 평균 10년마다 한 개 교체하는데 솥은 새것보다 중고가 더 비싸다. 여기는 기본 육수 뺄 때 한우 갈비뼈·소머리·소양, 마지막엔 특이하게 소기름을 넣는다. 환상적 국물맛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갈비뼈는 시원한 맛, 소머리는 구수한 맛, 소기름은 고소한 맛, 소양은 영양분을 책임진다. 그런데 사골은 왜 사용하지 않을까? 장시간 고면 뼛가루가 식감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갈비뼈도 가루 때문에 통째로 집어넣는다. 소머리 고기도 부위별로 추출한다. 앞주둥이, 우설, 가장 두툼한 눈밑살 등으로 나눠진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포항할매곰탕. 1950년 영천에 큰 시장이 생기면서 포항에 살던 임작지·한경화 부부가 영천에서 개업했다. 2대는 며느리 이순덕씨, 3대는 이씨의 자녀 임현진·채근 남매가 대를 잇고 있다. 이씨의 둘째 딸 임수진씨는 울산에서 분점을 하고 있다. 3남매가 가업을 잇고 있는 셈.

◆영천 별미

영천의 별미라면 육회를 빼놓을 수 없다. 1962년 성내동에서 출발한 ‘영화식당’. 처음엔 소금구이 전문점으로 시작했다. 1973년 시외버스터미널이 이전할 때 함께 이전했다. 육회 전문식당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고기를 구워 먹으러 온 단골손님이 원하면 가끔 해주던 육회가 소문나면서 전문집으로 정착했다. 흔히 곁들여 먹는 배를 채썰거나 갈거나 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또한 날계란 노른자를 고명으로 쓰는 것도 볼 수 없다. 오로지 미나리, 파, 간장, 깨, 후추, 참기름, 설탕이 전부다. 한 점 씹으면 바닥을 봐야 젓가락을 놓게 된다. 미나리·파·마늘즙의 기막힌 혼합비율이 절정의 단맛을 만들었다.

현재는 ‘편대장영화식당’으로 상호를 바꿨는데 편대장은 무슨 의미일까. 사장 장옥주씨의 셋째아들 편철주씨는 중대장 출신. 그의 별명이 상호에 편입됐다. 2004년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에 직영점을 차렸다.

육회는 뭉티기와 비슷한 식감을 주는 데 부위는 다르다. 생고기인 뭉티기는 소 허벅지 안쪽 ‘처지개살’, 육회는 엉덩이 부위인 ‘우둔살’을 사용한다.

육회를 먹다보면 영천을 넘어 한국 토종와인의 신지평을 연 금호읍 <주>뱅꼬레(한국와인)가 오디로 만든 레드와인이 생각난다.

영천에는 두 개의 별이 있다. 한국 영화의 별이었고 여생을 위해 영천에 터를 잡은 신성일, 그리고 보현산천문대의 별이다. 농업회사 법인 <주>영천명가는 국내산 쌀과 찰보리로 만든 무방부제 ‘영천별빵’을 판다. 포도잼·오디잼·생크림 등을 곁들여 만든 빵으로 청정도시 영천을 상징한 별모양 형태로 생산된다.

그리고 시민들이 인정한 만두집은 1979년 문을 연 ‘삼송꾼만두’. 여기 꾼만두는 잎새 모양.

일주일에 두 번(수·토요일)만 우리밀빵을 파는 고경면 청정리 ‘밀방앗간 옆 빵집’도 빵지순례객의 주목을 받는다. 사장 유정재씨는 농부 겸 제빵사. 밀은 우리밀 품종인 ‘조경’을 사용한다. 추어탕은 금호읍에 있는 ‘금호할매추어탕’이 핫플레이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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