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달성공원의 추억과 역사적 가치

  • 백승운
  • |
  • 입력 2018-05-31   |  발행일 2018-05-31 제31면   |  수정 2018-05-31
[영남타워] 달성공원의 추억과 역사적 가치

며칠 전 앨범을 정리하다 빛바랜 사진 한장을 발견했다. 새하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와 양복을 다려 입은 아버지의 모습. 그 사이에 어린시절의 필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한참을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시절의 기억과 추억과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사진을 찍은 곳이 낯익었다. 달성공원이었다. 아마 어린이날쯤 되는 어느날, 달성공원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인 듯했다.

달성공원에 대한 추억은 대구에 사는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어린이 헌장비 앞에서 ‘V자’를 그리고 사진을 찍었을 게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난생처음 코끼리를 보고 신기해했을 것이고, 잠자는 사자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가 화들짝 한발 물러서기도 했을 것이다. 카메라를 목에 메고 폼 나게 지나가던 사진사 아저씨도 기억할 것이다. 공원 앞에서 약장수의 화려한 화술에 입을 벌리고 앉아 있기도 했을 것이며, 노점에서 사주팔자나 궁합을 본 적도 있을 것이다.

추억 한편에는 공원의 문지기였던 키다리 아저씨도 있을 것이다. 경기도 여주가 고향인 키다리 아저씨 류기성씨는 키가 무려 220㎝, 몸무게가 110㎏, 발 길이는 380㎜에 달하는 ‘거인’이었다. 공원의 상징 같은 인물이었다.

달성공원은 ‘추억’으로 새겨져있다. 필자 역시 그렇다. 하지만 단순히 추억의 공간일 줄 알았던 달성공원의 역사를 알고부터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달성의 가치가 놀라워서다.

달성은 1천8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삼한시대부터 이 지역의 중심 세력이 거주했던 공간이다. 처음엔 토성으로 축성됐고 이후 석성으로 쌓았다. 성의 축조 시기는 삼국사기 제2권 신라본기 첨해이사금조에 ‘15년(261) 춘 2월에 달벌성을 쌓고 나마 극종을 성주로 삼았다’는 내용이 역사가 전하는 달성의 최초 기록이다. 임진왜란 중이던 선조 29년(1596)에는 달성에 석축이 더해졌고 경상감영이 이곳에 설치됐다. 하지만 정유재란으로 감영은 완전히 불타고 달성은 폐허가 됐다. 이후 경상감영은 달성을 떠나 안동으로 옮겼다가 현재의 중구 포정동에 자리 잡았다.

달성은 신라에서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진 성읍도시 대구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달구화, 달구벌, 대구로 이어지는 우리 지역의 원형이면서 정체성이 집약되어 있다. 대구의 역사적 자부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달성토성이 ‘공원’이 된 것은 근·현대의 일이다. 근대에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 일환으로 ‘공원’이 됐고, 현대에는 우리 스스로가 ‘공원’으로 불렀다. 달성토성이 공원으로 인식되면서 역사적 가치는 잊혀 갔다. 대구의 정체성이 담긴 곳이라는 사실은 망각한 채, 대부분 어린시절 추억의 공간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아쉬운 일이다.

올해 3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달성토성·경상감영·대구읍성’ 유네스코 등재 추진위원회가 설립됐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무엇보다 추진위가 지역의 청년중심이라는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역사와 지역에 관심을 두지 않는 청년들이 직접 발벗고 나선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추진위는 앞으로 달성토성의 가치와 중요성을 시민에게 알리고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준비에 나선다고 한다.

물론 유네스코 등재는 만만치 않다. 체계적인 준비와 자료 확보, 그리고 지자체의 적극적인 관심과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달성토성을 단순히 공원으로 인식하고 있는 시민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대구의 정체성이 담긴 역사적인 공간이라는 사실을 공감할 때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달성토성이 그만한 역사적 가치가 있고, 유네스코 등재 추진위 같은 시민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주춧돌 하나가 놓였다. 시민과 지자체가 주춧돌 위에 차곡차곡 돌을 놓고 성을 쌓을 때다.

백승운 (사회부 특임기자 겸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