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골디락스’를 위하여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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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8   |  발행일 2018-05-28 제31면   |  수정 2018-05-28
[월요칼럼] ‘골디락스’를 위하여

과열되지도 가라앉지도 않은 이상적인 경제 상황을 의미하는 골디락스는 영국의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세 마리의 곰’에서 유래한 용어다. 금발 소녀 골디락스는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오두막을 발견한다. 오두막은 곰 세 마리가 사는 곳이다. 곰들은 외출했고 식탁엔 세 그릇의 수프가 차려져 있었다. 뜨거운 수프, 차거운 수프, 또 하나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먹기에 적당한’ 수프였다. 골디락스는 이 가운데 미지근한 수프를 선택해 허기를 채운다.

골디락스는 인플레이션 뇌관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잠재성장률에 육박하는 성장이 장기간 이어지는 경제 국면을 말한다. 지금 미국 경제가 딱 그렇다. 미국의 4월 실업률은 3.9%로 전월보다 2%포인트 떨어졌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완전고용으로 여기는 실업률 5%를 훨씬 밑도는 수치다. 실업률 하강은 일자리 증가와 동의어다. 미국 내 일자리는 2010년 9월 이후 91개월 연속 증가했다.

우리는 어떤가.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하며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부착했지만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취업자 수는 2008년 금융위기 후 처음으로 3개월 연속 10만명대에 머물렀고, 최저임금과 연관성이 큰 도소매·음식숙박업 취업자 수는 5개월 연속 감소했다. 체감실업률도 최근 5개월이 가장 나빴다. 아무래도 골디락스 경제와는 괴리가 크다.

일자리 창출을 제1 목표로 세웠으면 일자리 늘리는데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뒤죽박죽이다. 고용증가를 고양(高揚)하면서도 한편으론 일자리를 위축시키는 정책을 마다하지 않는다. 프랑스 석학 기 소르망이 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실업자에겐 독”이라고 말했을까. 마침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시장과 사업주의 어려움·수용성을 분석해 최저임금 1만원 목표연도를 신축적으로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의 복안이 정부정책의 유의미한 변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미 생산성이 높아진 대기업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극히 미미하다.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육성하고 1인 창업을 지원하는 게 최상의 일자리 정책이다. 소득주도 성장이 결실을 거두려면 수요확대 정책에 더해 노동개혁·구조개혁 같은 혁신경제 엑셀러레이터도 밟아야 한다. 수요정책과 공급정책의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가야 성장과 일자리를 견인할 수 있다.

정치도 골디락스 국면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개점휴업을 되풀이하는 국회는 차가운 ‘식물국회’에 가깝다. 온도를 더 높여야 한다. 20대 국회 전반기 법안 처리율은 고작 27%, 국민의 개헌 열망도 외면했다. 명백한 직무유기다. 협치가 작동하고 정치 지도자의 협상력과 정치력이 발휘되며, 양보와 밀당·딜(deal)이 일상화돼야 골디락스 진입이 가능하다. 불체포 특권 따위의 가당찮은 기득권도 내려놓아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도 문제지만 골디락스 정치가 착근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로의 권력 이동은 훨씬 위험하다. 지난 21일의 ‘방탄국회’는 의원들이 더 큰 권력을 누릴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골디락스를 외교에 대입해도 무리가 없겠다. “노벨상은 트럼프가 받고 우리는 평화만 얻으면 된다”고 한 문 대통령의 외교사령(外交辭令·자신의 감정은 감추고 상대방에게 듣기 좋게 하는 사교적인 말)은 골디락스의 정곡을 찔렀다. 남북정상회담 등에서 보여준 문 대통령의 협상력과 유화적 언행은 튀지 않았지만 은은히 빛났다. 일부 언론은 문 대통령의 성이 문(Moon)씨라는 점을 들어 ‘달빛 외교력’이란 수식을 붙였다. 한때 북미정상회담이 불투명해지자 보수 야당은 ‘한반도 운전자론’을 맹폭했지만, 문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의 단초를 끌어낸 건 사실 아닌가.

골디락스를 미지근하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달빛처럼 은은하면서도 최적의 상황을 묘사한다. 골디락스(goldilocks)의 언어적 의미는 ‘금발 미녀’이지만 골디락스란 말엔 대립이 아닌 유화(宥和), 극단이 아닌 중립, 포용과 합리, 실용, 효율, 융합, 중산층 등 다양한 함의가 녹아 있다. 정치도 경제도 정부정책도 골디락스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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