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평화는 그냥 오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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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6   |  발행일 2018-05-26 제23면   |  수정 2018-05-26
[토요단상] 평화는 그냥 오는 게 아니다

1898년 12월10일 미국과 에스파냐(현 스페인)는 파리평화조약을 맺었다. 쿠바 등에서 벌인 4개월간의 양국간 전쟁 결과다. ‘쿠바 독립, 에스파냐가 괌과 필리핀·푸에르토리코를 미국에 할양’이 골자다. 에스파냐가 전쟁에 져 식민지 땅을 미국에 크게 빼앗긴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에 대한 스페인 교과서의 설명이다. “쿠바, 푸에르토리코, 필리핀을 빼앗겼다. 언론과 정치인들은 평화조약이 스페인이 거둔 명백하고 신속하며 손쉬운 승리라고 여론을 기만했다.” 당시 에스파냐의 집권 세력이 국민을 속였고, 언론은 집권자 의도대로 ‘패배’를 ‘승리’로 둔갑시켰다는 것이다. 세계사는 이를 ‘평화조약’으로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일, 한 지상파 방송이 중국 단둥의 북한 근로자를 인터뷰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중국~북한 국경의 풍경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북한 근로자는 “이제 통일이 되는가 싶기도 한데…”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간 판문점선언에도 평화는 등장한다. 제목부터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이다. 첫 문장에 “평화와 번영, 통일을 염원하는 온겨레…”가 등장한다. 이를 보도한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평화와 통일’이란 단어를 빼놓지 않는다.

평화의 사전적 의미는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다. 국가 사이에는 ‘분쟁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언제 그런 상태가 될까. 1898년처럼 전쟁에서 어느 한쪽이 완승하면 평화가 찾아온다. 에스파냐는 북미와 중미, 필리핀 등에서 미국에 더 이상 도발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에스파냐의 국력이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아서다.

그렇다면 북한 근로자가 언급한 ‘통일’, 남북 정상이 합의한 ‘평화와 번영, 통일’은 어떤 결과로서의 평화일까. 남북한은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을 치렀다. 한쪽의 완승으로 끝나지 않았다. 치열하게 싸우다가 휴전했다. ‘싸우다가 그친 상태’의 선이 사실상 국경처럼 65년간 유지되고 있다. 이 기간 전쟁은 없었다.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 30년만 봐도 숱하게 많았다.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을 예방적으로 공격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서해 연평도에선 해전이라 부를 만한 전투도 두 차례나 발생했다. 남북한 모두에서 핵무기를 없애기로 해놓고 한쪽에선 핵개발과 6차례 실험까지 했다. 남쪽 군인 수십명을 어뢰로 폭사시키는가 하면 서해 연평도를 향해 포를 쏘아댄 적도 있다. 휴전체제에서 벌어진 일이다. 모두다 휴전협정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다. 그런데도 남북한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평화협정 체결 얘기도 구체화하고 있다. 실제 평화협정을 맺는다면 그때의 평화는 어떤 평화인가. 전면적인 전쟁만 없으면 되는가, 소규모 도발도 있어서는 안 되는 상태인가. 아니면 미국과 중국이 보증만 하면 끝인가. 협정을 맺어놓고 어느 한쪽이 ‘위반’했을 때 어찌할 것인가. 한반도의 휴전협정 이후 65년을 되돌아보자. 남한은 끊임없이 북한의 중소규모 직간접 공격을 받아왔다. 제대로 된 반격은 해보지도 못했다. 의지 부족인가, 휴전협정 때문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국민들의 안전 때문인가.

이쯤에서 역발상을 해보자.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예다. 북한이 연평도의 대한민국 민간인을 향해 포를 쐈을 때 발사지로 추정되는 황해도 해안포 부대를 초토화시켰다면 어찌 되었을까. 전쟁이 일어났을까, 사고였다며 북한이 스스로 나서 수습하려 했을까. 아니면 다른 쪽으로 진전이 됐을까. 누구도 장담할 순 없다. 필자는 북한에 확실한 경종을 울려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일어나지 않는 효과를 얻었으리라 본다. 이 얘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평화라는 결과는 그냥 오는 게 아니다. 국제정치 무대에선 적이 우리를 얕보지 않을 때만 유지된다. 동서양의, 과거와 오늘의 역사가 함께 증명하고 있다.

남북한의 진정한 평화는 대한민국의 군사력이 북한을 압도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평화를 약속해도 내일 깨질지 모른다. 상대가 북한이면 더욱 그렇다. 최병묵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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