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독전’ 류준열

  • 윤용섭
  • |
  • 입력 2018-05-25   |  발행일 2018-05-25 제43면   |  수정 2018-05-25
“락, 감정 드러나지 않는 인물…‘누구인가’ 끊임없이 질문”
20180525

어느 순간 류준열은 역할의 비중에 상관없이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대중뿐 아니라 예리한 촉수를 지닌 영화 관계자들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편애에 가까운 러브콜을 그에게 보내는 중이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청춘배우의 계보를 아무렇지도 않게 깨버리는 듯한, 새로운 느낌의 배우”라는 ‘글로리데이’(2015) 최정열 감독의 말처럼 류준열은 그 나이대의 배우 중 가장 유연하게, 또 압도적으로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하이에나 같았던 ‘소셜포비아’(2014)의 BJ 양게 역으로 인상깊게 데뷔한 후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부터 영화 ‘더 킹’(2016), ‘침묵’(2017), ‘택시운전사’(2017) 그리고 ‘리틀 포레스트’(2018)까지 작품마다 눈에 띄는 연기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높여왔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루어 놓은 눈부신 결과다. 그가 모든 이의 관심과 기대 속에 영화 ‘독전’의 주인공으로 관객을 찾았다. 아시아 최대 유령 마약조직을 둘러싼 추적과 음모를 그린 이 범죄극에서 류준열은 마약조직원 락을 연기했다. 오랫동안 조직을 추격해온 형사 원호(조진웅)와 공조를 하게 되는 락은 겉으로는 어떤 표현도 하지 않지만, 내면으로는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는 인물이다. “그동안 맡았던 캐릭터 중 가장 대사가 없다”는 류준열은 “그게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류준열은 시종 절제된 표정과 대사로 자신만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모두의 기대치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그래서일까. 베테랑 배우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이 영화에서 그가 유독 빛나 보인다.

20180525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선(善)의 대척점에서 자신의 광기와 폭력을 분출했다면, 락은 표정이나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그만큼 녹록지 않은 역할인데 캐릭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고민했던 건 뭔가.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접근하기 어렵겠다’였다. 락은 그동안 내가 연기해왔던 캐릭터들과 다른 데다 대사는 적고 감정도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다. 고민이 됐다. 그래서 나름 내 깜냥 안에서 할 수 있고, 그동안 잘 해왔던 것들을 철저히 준비해갔다. 그런데 첫 테이크부터 계속 NG가 났다. 감독님은 미리 계산해서 준비한 연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덤덤하게 가자’를 강조했을 만큼 현장에서의 느낌과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기를 바랐다. 문제는 내가 그 의도를 척척 알아들을 수 있는 배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시나리오 속에는 캐릭터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 이를 통해 인물을 창조하고 분석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캐릭터의 전사(前事)가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런데 락은 전사가 밝혀지지 않은 인물이다보니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락이 선과 악 중 어느 쪽에 가깝냐는 질문을 받아도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전사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내가 락의 전사를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나 스스로가 가장 큰 숙제로 남았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독전’은 주연으로서의 부담감 한편으로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도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듯하다.

“역할에 몰입하면 ‘컷’ 소리도 들리지 않고,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게 힘들다는 말을 들어도 전에는 공감을 못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그 느낌을 알았다. 연기하는 내내 답답하고 어렵고 공허하고 외로운 감정들이 계속 가슴 한편을 차지했다. 이러다간 몸이 축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편으론 그런 감정과 순간들을 마주했다는 게 되게 신기하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약조직원 ‘락’ 연기
그동안 맡은 역할 중 대사 가장 적어
녹록지 않은 캐릭터 답답·공허함
한편으론 여러 감정 마주하며 흥분
조진웅 선배와 밸런스 맞추기 집중

결과물 인정받겠다는 욕심
역할 구분보다 많은작품 하고 싶어
매번 새로운 스태프와 만남 즐거워
차기작도 세편…배워야 할 것 많아
오랫동안 연기하는 배우로 남았으면



▶악의 정점인 이 선생을 잡겠다는 공동 목표를 지닌 락과 원호 사이에는 일종의 브로맨스 분위기마저 묘하게 감지된다.

“폭발사고 이후 락은 원호와 같이 있고 싶어한다. 일종의 연민일 수 있는데, 락이 원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 선생을 잡기 위해 공조를 한 건, 그도 나와 비슷한 부류이고 누구보다 자신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원호도 락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전사가 없다. 그 점에서 마치 거울을 보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원호를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뭔가 감정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하면서 자신을 믿게 만들고 싶은 여러 감정들이 생겨난다. 그 점에서 우리 영화는 감독과 배우의 몫이 분명히 나눠진다. 속고 속이는 과정속에서 또 다른 믿음과 거짓이 드러나는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은 감독님이 의도한 대로 그림이 그려졌다면, 캐릭터를 완성하는 건 전적으로 배우들이 채워야 할 몫이었다. 나와 조진웅 선배가 어떻게 호흡해야 우리가 의도한 대로 관객에게 전달되고, 또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배우의 몫이라는 얘기다. 두 지점의 밸런스를 맞춰가는 게 힘들었지만 재미도 쏠쏠했다.”

▶이 작품을 통해 얻고 싶은 게 있었다면.

“전에도 어떤 목표를 세우거나 뭔가를 얻기 위해 출연한 적은 솔직히 없다. 다만 재밌는 시나리오를 만나서 내 몫을 제대로 해내고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인정받는 결과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은 있다. 그래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특별히 도전하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보면 없다고 말한다. 대신 역할 구분없이 많은 작품을 경험해 보고 싶다. 그 안에서 내 몫을 다하는 게 중요한데 그게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나뿐 아니라 감독과 배우, 스태프 등 모든 사람이 1%씩 보태 100%를 채운다고 봤을 때, 두 명이 제 역할 못하면 98%가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된 작품이다.”

▶영화 ‘더 킹’에 함께 출연했던 정우성이 ‘류준열스럽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을 스스로 정의해 본다면.

“나의 짧은 생각으로 ‘너만의 매력이 있다’는 칭찬의 의미일 수 있는데, 그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내 삶을 스스로 부끄럽다고 여기지 않게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물론 그 삶이 ‘딱, 이거야’라고 정의를 내리긴 쉽지 않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선택을 하는 순간들이 있을 텐데, 옳은 선택은 어떤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확률적으로 나오는 건 아니라고 본다. 옳은 선택은 하나다. 바로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다. 아직 젊지만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굴곡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성격 탓도 있다. 나는 어떤 일이든 웬만해선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크게 걱정할 일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실 ‘독전’을 찍으면서 류준열의 정체성이 궁금해지긴 했다. ‘나는 누구일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게 됐는데, 아직 명쾌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락의 표정에서 공허함이 크게 느껴졌다면 아마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누구보다 분주하게 활동을 해왔다. 정해진 차기작도 벌써 세 편이나 된다. 지치진 않나.

“지치기보다는 오히려 즐겁고 짜릿한 순간들이 많아서 영화를 찍는 동안은 행복하다. 그리고 아직 지치기엔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영화를 찍는 게 사실 별 건 없다. 돈과 인기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의기투합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부족한 건 다음에 좀 더 재밌게 찍어보고, 감독님과 배우, 관계자들도 새로운 영화를 찍게 되면 매번 바뀌게 되는데 그런 만남과 과정들이 늘 즐겁고 기대된다.”

▶처음 사범대 진학을 준비했다고 들었다. 연기자로 목표를 바꾼 계기가 있었나.

“어떤 거창한 사명감이 있었던 건 아니고 교육자가 되면 학생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고, 내 적성에도 맞을 것 같았다. 내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집중력이 좋은 편이 아닌 데다 책상에 장시간 앉아서 공부하는 건 자신 없었다. 누가 의사 면허증을 준다고 해도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해보기로 했다. 재수생활을 할 때도 영화는 하루에 두세 편씩 볼 정도로 좋아했으니 배우가 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교육자와 배우가 비슷하다. 해마다 반 학생들이 바뀌듯 영화도 작품마다 스태프들이 바뀐다. 그리고 선생님은 배우가 되면 역할로 접할 기회가 있으니 직업으로는 딱이라고 생각했다.”

▶예술적인 재능과 끼가 많은 것 같다.

“글쎄. 솔직히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연기 못지않게 축구도 좋아하지만 예술이나 스포츠는 선천적인 재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노력 여하에 따라 어느 정도 극복하는 게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재능있는 사람을 따라잡긴 힘들다. 그래서 최대한 폐를 안 끼치려고 노력한다. 다만 내가 의심이 많아서 누가 잘 한다고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편인데 기자님들의 칭찬은 믿고 싶다.”(웃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

“어려운 질문이긴 한데 내가 좋아하는 선배님들은 모두 오랫동안 연기하신 분들이다. 그런 분들을 존경한다. 연기 잘하는 사람은 정말 많고, 화려했던 시절을 보냈던 선배님들도 많지만 연기를 오랫동안 하고 있다는 건 단순히 연기만 잘해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나 인격적으로 많은 것이 갖춰져 있을 때 영화관계자들이 찾고, 대중이 찾는다. 내 목표도 오랫동안 연기하는 배우가 되는 거다.”

글=윤용섭기자 hhhhama21@nate.com
사진제공=NEW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