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들 어쩌죠”…폐쇄 통보받은 대구·경북 사설유기견보호소

  • 최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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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4 07:44  |  수정 2018-05-24 09:11  |  발행일 2018-05-24 제20면
수백마리 유기견 시한부 운명
20180524
대구와 경북의 최대 사설유기견보호소인 대구 한나네보호소와 구미사랑보호소. 두 시설이 보호하는 유기견은 400마리가 넘는다. 그러나 이 시설은 사용중지 명령을 받아 내달 18일까지 이전 여부를 결정지어야 된다.

버리는 사람과 거두는 사람. 유기견은 그 사이에서 자신의 운명이 걸린 선택지에 놓이게 된다. 2016년 대구와 경북에서 발생한 유기동물의 수는 7천71마리. 지자체 위탁 보호소에 맡겨진 상당수는 ‘안락사’라는 잔인함이 깔린 명칭으로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운좋게 개인 비용으로 운영되는 사설유기견보호소로 간 유기견들은 제 명을 이어가며 살고 있다. 그 가운데 난데없이 대구와 경북의 최대 사설유기견보호소들이 행정기관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대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동구 한나네보호소는 지난 3월 행정처분 통보를 받아 내달 18일까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된다. 170마리 정도로 경북권에서 가장 많은 유기견을 보호 중인 구미사랑보호소 역시 내달 18일까지 폐쇄 및 이전 여부 결정을 내려야 된다. 누군가 버린 유기견을 사랑으로 보듬은 사람들. 자신의 삶보다 오갈 데 없는 개들의 생명을 더 소중히 여겨온 이들이 짊어져야 할 대가는 무겁다. 이 두 곳 400마리의 유기견은 또다시 유기되거나 죽음의 문턱에 서는 얄궂은 운명을 마주해야 할까.

행정기관, 가축분뇨 배출 신고 미이행 등 지속된 민원 이유
대구한나네·구미사랑보호소 내달 18일까지 행정조치 이행해야
“내 인생 바쳐 거두고 키운 죄밖에 없는데…”주인들 발만 동동

두 곳에 사는 수백마리 유기견 또 버려지거나 죽음의 문턱 놓여
“옮기는 것도 돈이 있고 땅 있어야…옮긴다 해도 수년은 걸려
행정기관 대책은 없고 개는 계속 버려지는데 어쩌라는 겁니까”


◆“다 헛거라. 인생 갖다바쳤는데”…구미사랑보호소

지난 20일 오후 구미시 선기동에 자리한 구미사랑보호소에서 김옥순씨(여·70)를 만났다. 그는 인사하기가 무섭게 자원봉사자들이 주문한 중화요리로 허겁지겁 허기를 때웠다. “흙바닥 위에 서서 컵라면으로 때울 때도 있고, 아니면 아예 못 먹기도 하고…. 200마리 가까이 되는 애들 돌봐야 되는데 밥 먹을 시간이 어디있어.”

연신 급하게 젓가락질을 해대는 김씨의 손등엔 개에 물리고 발톱에 긁힌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그는 자신의 생애 절반가량을 유기견과 함께 보냈다. 김씨는 친구 따라 강원도로 갔다가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개들을 목격했고 하나 둘씩 거두기 시작했다. 이때가 30대였다. 당시 문 밖에만 나서면 유기견이 발에 치일 정도였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어릴 적부터 동물을 좋아했던 김씨는 따로 빈 집을 구해 유기견들을 마당에 풀어놓고 키웠다. 행여 길을 떠돌다 차에 치일까, 사람에게 못된 짓을 당할까 걱정돼 시작한 일이었다. 집과 유기견을 보호하던 장소는 걸어서 1시간 거리. 차도 없어 잰걸음이 가장 빠른 이동수단이었다.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 집과 보호소를 오갔다. 눈이 발목 깊이로 쌓여도 예외는 없었다. 언 발가락을 이끌며 도착한 곳엔 자신만을 기다리는 반짝이는 눈망울들이 있었다.

40마리 정도였던 유기견은 입소문을 타면서 순식간에 폭증했다. 문 앞에 개를 버리고 가는 사람 등이 늘면서 어느새 100마리 이상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외면할 수는 없었다. 공공근로로 손에 쥔 수십만원과 기초생활수급비 30만~40만원 남짓은 모두 개들에게 쓰였다. 2000년대 초반 100마리의 유기견을 이끌고 구미로 와 터전을 잡았다. 지금이야 주변에 민가와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김씨가 보호소를 차리던 당시만해도 이곳은 눈에 띄지 않는 산 속 깊은 곳이었다.

어느새 몸은 늙었고 쉴 틈 없이 움직였던 손마디는 굵어졌다. 어디 한 곳 성한 데가 없을 정도로 물리고 긁혀 훈장처럼 상처가 많다. 20여 년 전부터 부정맥이 와 심장박동기도 달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자신의 몸보다 개가 우선이다. 겨울이면 개들이 추울까 주변에 연탄을 구걸하다시피 해 온기를 불어넣어준다. 작년에는 추위를 막아보려 500만원의 빚을 내 비닐하우스를 짓기도 했다.

그런데 이 비닐하우스를 짓고 한 달이나 지났을까. 김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지난해 11월 구미시청이 보호소에 대해 사용중지 명령을 내린 것이다. 가축분뇨 배출 신고 미이행이 이유였다. 그러면서 시청은 내달 18일까지 적법한 장소로 이전하라고 했다. 15년여 만에 처음 겪은 일이었다. 구미시청 환경안전과 관계자는 “인근 아파트에서 민원이 들어와서 시설을 고발하게 됐다. 구미사랑보호소는 무허가 건축물에서 가축을 키우고 있다. 가축을 키울 수 있는 지역에서 키우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씨는 막막하다. 유기견 170마리를 데리고 옮길 자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고 그 비용을 마련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법도 개법인기라. 강아지공장도 버젓이 잘 돌아가는데 돈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내 인생 바쳐가면서 애들(유기견) 살도록 해놨는데 자꾸 괴롭히네. 지난 세월 다 헛거다 싶어요. 옮기는 것도 돈이 있고 땅이 있어야 옮기죠. 옮긴다 해도 최소 2~3년은 걸리는데 6개월 안에 어떻게 결정을 내리나.”

◆“거두고 키운 죄밖에 없어요”…대구 한나네보호소

“나는 거두고 키운 죄밖에 없어예. 버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우리 같은 사람도 있어야지예.”

지금의 한나네보호소는 개를 버린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곳 주인 신상희씨(여·53)는 “눈만 뜨면 6마리, 고개만 돌리면 8마리씩 보호소 앞에 버려져 있었다”고 기억했다. 오갈 데 없는 개를 시나브로 거둬들이다 보니 어느새 250마리가 됐다. 지금은 대구·경북권에서 가장 큰 사설유기견보호소다.

매월 소일거리로 번 70만원은 고스란히 개 키우는 데에 들어갔다. 돈도, 사료도 떨어진 날이면 쌀로 끓인 죽을 대신 먹였고 주변에서 사료를 빌리기도 했다. 개를 버린 누군가는 편해졌지만 이를 거둬들인 신씨는 그 무게를 고스란히 져야만 했다. “길을 걸어가면 사람은 안 보이고 개밖에 안 보였어요. 이게 할 짓인가 싶었지.”

그러던 중 2011년 둔산동에 있던 시보호소가 폐쇄되면서 48마리를 한꺼번에 데려왔다. 신씨는 입양조차 가기 어려운 노령견이나 장애견을 식구로 거둬들였다. 한 여성이 한번에 65마리를 한나네보호소 앞에 버리고 간 적도 있다. 그 여성은 개장수에 팔려가는 개들을 본인의 돈으로 샀고 처리할 길이 없어 한나네보호소에 넘긴다고 했다. 또 대구 3대 사설유기견보호소였던 백안보호소가 문을 닫게 되면서 68마리의 유기견을 떠안게 됐다. 그렇게 점차 불어난 유기견이 250마리에 이르렀다. 20년 가까이 일궈온 ‘개와 사람의 공존터’인 셈이다.

그러나 최근 한나네보호소는 구청으로부터 사용중지 명령을 받았다. 가축사육제한지역에서 개사육 시설을 설치하고 가축을 키웠다는 게 이유다. 구청은 내달 18일까지 보호소 운영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동구청 환경자원과 관계자는 “현재의 자리에서 보호소는 6년 정도 운영됐는데 본격적으로 민원이 제기된 건 5년 전부터다. 이에 구청이 지도를 해 왔지만 민원이 끊이질 않고 유기견 규모가 불어나서 행정처분 결정을 내리게 됐다. 적법하게 가축을 키울 수 있는 곳에서 허가를 받고 키우셔야 된다”고 설명했다.

신씨는 구청의 입장을 이해한다면서도 방법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구청이 49.6㎡(15평) 이내의 공간에서 키우라고도 했지만 250마리나 되는 유기견을 좁은 공간에서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 신씨의 생각이다.

“시에서 노는 땅이라도 제시해 주면 이전하죠. 돈도 없고 이전한다고 해서 민원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대책은 없고 키우지는 말라고 하고, 동시에 한쪽에선 계속 개를 버리는데 억지로 죽일 수도 없고…. 나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버리는 사람을 처벌할 생각을 해야지. 만만한 사설보호소만 때려잡는 건 무슨 심보인지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글·사진=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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