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홍준표와 노동신문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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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3   |  발행일 2018-05-23 제31면   |  수정 2018-05-23
[박재일 칼럼] 홍준표와 노동신문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북한의 노동신문에 등장했다. ‘판문점선언을 시비질하며 푼수없이 놀아댄다’고 악평을 했다. 마음에 들지 않은 남한 내 정치세력에 대해 극한 용어를 쓰며 원색적 비난을 서슴지 않은 노동신문의 보도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심기가 틀어지면 대한민국 국가원수도 집중포화의 예외일 수 없다.

구글(Google) 영문판에서 ‘rodong newspaper’를 치면 북한 노동신문이 바로 열람된다. 날짜별로 검색은 물론 PDF파일까지 제공한다. 노동신문을 본다는 것은 한때 금기시됐다. 북한연구자나 정치학자들만이 정기적으로 구독하고 분석했다. 세상이 달라져도 한참 달라졌다.

노동신문은 알다시피 북한의 조선노동당이 발행하는 기관지다. 조선노동당은 1949년 6월 남한에 있던 남조선노동당과 통합해 성립됐다. 노동당 규약은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 완수,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규약으로 명시한다. 노동신문은 이 원칙을 전파하고 실천하는 매체다.

우리로 치면 민주당이나 한국당의 당보(黨報)에 해당하겠지만, 북한의 체제 특성상 그 역할은 완전히 다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언론의 특성을 어느 정도 간직했다고 하나, 김일성 유일체제가 확고히 들어선 뒤 그런 기능은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과거 군대에서 읽던 국방부 발행 신문보다 언론적 기능은 떨어진다.

노동신문의 홍준표 비판은 극렬하다. 20일자 마지막 면인 6면 하단의 절반을 할애했다. ‘홍준표 추악한 자화상-오명 대사전’이란 제목하에 홍 대표의 별칭을 7개로 분류해 소제목을 달고 원색적인 기사를 썼다. ‘홍고집’ ‘버럭준표’ ‘빨갱이 탓하는 홍갱이’ 등이 있는데 모두 그대로 옮겨 싣는다면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자칫 홍 대표 명예훼손이 될 수도 있겠다.

그래도 눈여겨볼 대목은 노동신문이 홍 대표의 어린시절부터 정치 역정까지 그 줄기를 세세하게 탐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난글을 빼면 남한의 어느 정치 기사 못지않게 홍준표를 알고 있다. ‘소학교 시절 줄반장 한번 못했다’‘이명박 BBK 주가 조작사건 방어’ ‘박근혜 관련 발언’ ‘성완종 정치자금 재판건’ ‘홍준표가 기자들에게 한 말’ ‘돼지흥분제 논란’ ‘나를 홍트럼프로 불러달라’ ‘홍 대표의 최근 남북관계 발언’을 일일이 적시했다. 예를 들면 홍 대표가 “내가 요즘 남북을 통틀어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는 발언을 놓고 “세르반테스가 만약 홍준표를 보았더라면 참다못해 땅속에서 일어나 벌컥 성을 낼 것”이라고 조롱했다.

물론 홍 대표에 대한 노동신문의 극렬한 비난은 그만큼 홍 대표가 쉽지 않은 상대라는 뜻도 된다. 남측 보수세력만큼 북한의 속내를 꿰고 있는 쪽도 드물다. 홍 대표도 노동신문 등장에 대해 “이렇게 전례없이 비방특집을 제작했는데 이는 남북회담의 본질을 (내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응수했다.

홍 대표는 남북정상회담과 일련의 해빙 무드를 ‘평화쇼’로 단정했다. 또 속고 있다고 경계한다. 홍 대표의 북한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우리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다. 이에 대한 판단은 뒤로 제쳐두고 ‘노동신문의 특집’을 보노라면 참으로 그들은 언제부터인가 우리를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는….

황장엽이나 태영호 등 망명한 북한 인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지나칠 정도로 논리적이고 확정적이다. 그만큼 신념에 찬 공부를 했다는 뜻도 된다. 북한의 엘리트 집단이 만만치 않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작금의 남북대화, 북미회담에서도 그들 엘리트는 쉽게 일희일비하지 않아 보인다. 일희일비는 우리쪽에서 더 감지된다.

결국 물음의 종착은 우리는 북한을 얼마나 아느냐에 닿게 된다. 평화든 통일이든, 아니면 체제대결의 승리든 혹은 그들을 껴안든, 아니면 굴복시키든 상대를 알아야 쟁취할 수 있다. 이번 남북 해빙이 어떤 결론이 나든 머지않은 미래에 ‘평양의 정치’는 ‘서울의 정치’와 뒤섞일 날도 올 것이다. 나는 우리 후대가 정말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편집국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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