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욕망시대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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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2   |  발행일 2018-05-22 제23면   |  수정 2018-05-22

얼마 전 한 공중파 방송이 불교계 비리를 건드렸다. 조계종을 이끄는 ‘큰스님’들과 관련된 추문 의혹을 고발했다. 충격적이다. 특히 대형 사찰의 일부 스님들이 유흥주점을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들이 탕진한 돈의 정체는 쉽사리 짐작이 간다. 이와 관련해 스님들이 단골손님이었다는 유흥주점 사장의 증언이 흥미롭다. 그는 방송 인터뷰에서 대략 이렇게 말했다. “아내가 그 사찰의 독실한 신도여서 시주금을 많이 내는데, 결국 그 돈을 내가 돌려받는 셈이다.” 돌고 도는 게 돈이라지만 참으로 요지경 종교세상이다.

일부 ‘땡중’의 일탈을 문제 삼아 불교계 전체를 싸잡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기독교·천주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보다는 타락의 원인을 생각해 본다. 아무리 일부라지만 성직자마저 굴복시킬 만큼 강렬한 인간의 욕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마음속에 끓고 있는 욕망을 제어하기란 쉽지 않다. 종교의 외피를 두르고 있어도 그럴진대 속세의 중생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욕망의 노예가 되기 십상이다.

알다시피 대부분의 사람은 은밀한 욕망을 감추기에 이중성을 지닌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이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정도가 심한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낮에는 검사장이었다가 밤이면 바바리맨으로 돌변했던 사례까지 있지 않았던가. 그도 아마 태어날 때부터 변태는 아니었을 게다. 요즘 미투운동 쓰나미에 추풍낙엽 신세가 된 저명인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괴물이 된 것은 권력욕과 색욕에 스스로를 내맡겼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욕망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상당 부분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법과 도덕의 울타리를 뛰쳐나오는 순간 남을 해치는 흉기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주체 못 하는 욕망에 대한 노자의 경구(警句)는 음미해볼 만하다. “과도한 욕망보다 큰 참사는 없다. 불만족보다 큰 죄는 없다. 탐욕보다 큰 재앙은 없다.” 사실 성인(聖人)이 아니더라도 웬만큼 살다 보면 욕망이란 게 인생의 빈잔에 결코 채워질 수 없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사회가 풍요로워지는 것과 비례해 욕망을 부추기는 유혹의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욕망 과잉시대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소박함에서 행복을 느끼는 삶의 지혜가 필요할 듯싶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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