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탈원전 정책,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

  • 김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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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2   |  발행일 2018-05-22 제22면   |  수정 2018-05-22
남북정상 도보다리 대화서
김정은이 발전소문제 언급
남한 탈원전 정책 유지하면
남북경협 차질 빚어질 수도
탈원전 정책은 재고되어야
[화요진단] 탈원전 정책,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

지난달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중 이뤄진 도보다리 무성(無聲)대화. 44분간 이어진 이 대화에서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이 대화 중 전문가들에 의해 포착된 단어 중 하나가 김정은 위원장 입에서 흘러나온 ‘발전소 문제’ 였다. 북한의 비핵화 이후 현재 심각한 전력난을 겪고 있는 북한의 전력 공급 문제가 주요 의제로 올랐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6일 일본 아사히 신문은 북한 당국이 한국이 짓다가 중단된 함경남도 신포 경수로의 건설 재개 가능성과 필요한 물자 목록을 점검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결국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후 남북 경협이 본격화되면 북한의 전력난 해소 문제가 가장 시급한 현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부의 섣부른 탈원전 정책이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신규 원전 6기 건설(울진 신한울 3·4호기, 영덕 천지 1·2호기 등)이 중단된 데다 당초 2022년까지 가동 예정이던 월성 1호기도 올해 중 폐쇄된다. 통상 원전 24기 중 4기 정도가 정비상태였지만 탈원전 정책이 진행 중인 현재는 8기가 정비 상태로 원전 가동률이 뚝 떨어졌다. 여기에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기준이 강화되면서 한달 반 정도 걸리던 정비·점검 기간도 수개월로 늘어났다. 원전 가동률이 하락했다는 것은 발전 단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LNG·석탄발전소의 발전량을 늘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같은 영향으로 한국전력은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 1천2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2분기 연속 적자는 5년 반 만에 처음이다. 원전 운영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영업이익도 급감하고 있다. 올해 적자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전기료 인상이 코앞에 다가온 분위기다. 한파가 극성을 부렸던 지난 겨울 다섯차례의 급전지시(기업을 대상으로 한 전력수요 감축 요청)가 발동됐다. 급전지시는 2014년 도입 이후 2016년까지 세 번만 발동됐지만,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인 현 정부 들어서는 이미 총 7차례나 발동됐다. 탈원전 정책이 계속되면 전력 부족사태가 일상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남북 경협사업이 본격화되더라도 탈원전 정책에 변화가 없는 한 우리의 전기 사정도 녹록지 않을 터여서 북한의 전력 문제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게 된다. 남북 경협 사업의 핵심 중 하나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국내 원전 수출 1호인 아랍에미리트 바카라 원전 1호기가 준공됐다. 준공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바카라 원전이 양국 관계의 ‘바카라(신이 내린 축복)’ 역할을 했다고 했다. 국내 원전을 애물단지로 여기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인식이다. 현 정부는 원전 수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한다. 한전은 현재 영국 원전사업(2025년까지 총 3.8GW 용량 3기, 건설비 약 21조원)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고, 20조원 규모의 사우디 원전 2기 수주 경쟁에도 뛰어든 상태다. 탈원전을 선언한 나라가 다른 나라 원전을 짓고 있고, 더 짓겠다고 수주 경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의 원전 건설과 운영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우연히 만난 한수원 한 직원은 “無에서 有로, 그것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것이 우리나라 원전산업이다. 이제 그 열매를 거둬야 할 시점인데, 탈원전 정책은 그 밑동을 잘라내는 꼴이다. 국내 원전 산업의 생태계가 유지돼야 안정적인 원전 수출도 가능하다. 현 정부는 탈원전 공백을 신재생에너지로 메우려고 하지만 이는 전혀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정부가 내놓은 신재생에너지 진흥책은 실행 계획이 아닌 선언에 불과하다”며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강한 불만을 털어놨다.

어떤 정책이든 잘못됐다 싶으면 지체없이 멈춰야 한다. 현 정부도 남북 관계가 이 정도로 급변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전의 수출 효과를 간과했을 수도 있다. 탈원전을 부르짖던 일본, 대만은 원전을 재가동하고 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도 탈원전 공약을 멈췄다. 우리도 본격화될 남북경협과 통일시대에 대비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산업을 미래먹거리 산업으로 육성하려면 늦기 전에 탈원전 정책에 대한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김기억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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