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천재의 제자(Apprentice to Gen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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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1 07:47  |  수정 2018-05-21 07:47  |  발행일 2018-05-21 제17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천재의 제자(Apprentice to Genius)

지난 15일은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굳이 스승의 날이 아니더라도 선생님의 중요성은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아는 천재도 처음에는 모두 미숙한 영재였지만 그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좋은 선생을 만나 그 영재성을 꽃피웠습니다. 뇌과학 분야에도 훌륭한 스승과 유명한 제자에 얽힌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신경과학과를 창설한 솔로몬 스나이더 교수와 그 스승들의 이야기입니다.

스나이더 교수는 세계 뇌과학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한 연구자로, 1980년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뇌과학 분야 전문학과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27년간 학부장직을 수행하면서 전세계 뇌과학 연구의 기반을 확립했고, 학부장직을 떠나던 2006년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은 그 공로를 기리기 위해 ‘신경과학과’의 이름을 ‘The Solomon H. Snyder Department of Neuroscience’로 개명할 정도였습니다. 디지스트의 ‘뇌과학전공’ 개설 당시 스나이더 교수의 제자로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신경과학과 설립에 기여한 가브리엘 로네트 교수를 초대 학과장으로 모셔 세계 최고 신경과학과의 교육과 연구 프로그램의 역사와 노하우를 전수했습니다.

뇌연구 분야에서 스나이더 교수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은 1970년대 뇌에서 아편성 수용체(opioid receptor)를 발견하여 신경전달물질수용체 연구의 전성시대를 연 것입니다. 1970년대 미국정부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젊은이들이 전쟁에 대한 공포와 참상을 감당하지 못하고 상당수가 마약에 중독된 사실에 놀라 ‘약물과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이때 약물 중독을 해결할 수 있는 아편성 수용체를 찾아낸 스나이더 교수 연구팀의 성과는 약물중독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가장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였으니 그야말로 적기에 사회문제를 해결한 대단한 성과였습니다.

스나이더 교수는 연구자 초기 이렇게 훌륭한 신경전달물질 전문가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한 스승을 만납니다. 1970년 세계 최초로 신경전달물질의 발견과 작용기전을 밝힌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줄리어스 액셀로드 박사입니다.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모든 의과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지 못해 뉴욕대학의 실험실 연구자로 일하던 액셀로드 박사는 학문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야간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가 석사학위를 받고 뉴욕의 한 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합니다. 여기서 액셀로드 박사 역시 자신의 인생을 바꾼 한 스승을 만납니다. 우리 몸에 작용하는 약물 연구의 선구자인 버나드 브로디 교수입니다. 브로디 교수는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호르몬의 기능을 연구하여 항정신질환치료제 개발의 기반을 마련한 연구자입니다. 브로디 교수는 당시 석사급 연구원이던 액셀로드 박사의 연구 열정과 재능을 알아보고 동료 연구자로 인정해 함께 연구를 수행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약리학 연구 노하우를 전수합니다. 브로디 교수와 액셀로드 박사 두 사람은 공동연구를 통해 진통제 부작용의 한 원인을 규명하여 훗날 대표적인 진통제인 ‘타이레놀’의 성분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이후 액셀로드 박사는 브로디 교수와의 연구를 기반으로 학위논문을 완성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이후 독립연구자의 길에 들어섭니다.

단순히 가정이지만 브로디 교수 같은 좋은 선생이 없었다면 액셀로드 박사는 이후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켜 노벨상 연구로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고, 스나이더 교수 역시 액셀로드 박사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 훗날 스나이더 교수의 훌륭한 뇌과학 연구 역시 모두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즉 이 세 분의 약리학자들이 서로 스승과 제자의 고리로 연결되어 신경전달물질에 대한 연구에 평생을 바친 덕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천재라 추앙받는 뇌과학자들 역시 한때는 호기심과 열정만 충만한 한 젊은이였고 좋은 스승을 만나 그들의 영재성이 꽃피워 인류 역사에 기여했다는 이 사실은 요즘 학문을 시작하는 어린 학생과 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조금 시간은 지났지만 영남일보 독자들도 고마운 은사님 생각하는 시간을 잠시나마 가져보면 어떨까요?

DGIST 뇌·인지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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