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트립 투 스페인-청년 마르크스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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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8   |  발행일 2018-05-18 제42면   |  수정 201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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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 투 스페인
스페인 여행, 돈키호테와 산초가 되어 떠나다


세계적 인기 여행영화 세번째 연작 ‘트립’ 시리즈
일·가족과 분리되지 못한 모습 현실적으로 다가와


히어로 무비나 첩보물, SF 영화만 속편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좋은 기획이 있으면 얼마든지 관객이 기다리는 시리즈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트립 투 스페인’은 ‘트립 투 잉글랜드’(2010), ‘트립 투 이탈리아’(2014)에 이은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세 번째 ‘트립’ 시리즈다.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 두 재능 있는 배우와의 작업이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여행 영화 연작을 가능하게 했다.

‘트립 투 스페인’은 이제는 관습(컨벤션)화 된 ‘트립’ 시리즈만의 골격을 바탕으로 스페인의 이국적인 풍경과 문화, 역사를 소개한다. 먼저,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배우의 즉흥연기가 이번 작품에서도 다큐멘터리의 리얼리티와 생동감을 더한다. 그 나라에 관한 엄청난 양의 자료를 미리 학습한 배우들이 느슨한 각본 안에서 그때그때 자유롭게 대화하게 한 후, 후반작업에서 극의 흐름에 맞는 부분을 추려내 편집하는 방식은 얼핏 페이크 다큐처럼 보이는 이 시리즈만의 독보적인 톤 앤 매너를 만들어냈다. 또한 스티브와 롭이 그 지역의 음식을 먹으며 성대모사 대결을 펼치는 장면들도 일종의 인장(印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페인 편에서는 그 대상이 믹 재거, 데이빗 보위 등 음악가들로까지 확장된 점이 눈에 띈다. 장난기 많은 10대처럼 두 사람이 앞다투어 과장된 연기로 익숙한 영화의 일부를 뚝딱 재연해내는 장면들은 그들을 따라가는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유쾌함과 즐거움 그 자체다.

말장난과 성대모사 대결의 다른 편에는 지적인 대화들도 놓여있다. 가령, 어딜 가나 아름다운 성당을 볼 수 있는 스페인에서 스티브와 롭은 종교를 중심으로 그 역사 및 문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서 스티브는 자신이 가톨릭 교도라고 밝히는데, 드라마 안에서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영화는 가벼운 유희들로 가득하지만 일종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 인간과 인생에 대해 상고해볼 만한 주제를 던진다. 두 사람이 여행 중에도 일과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지 못하는 모습 또한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였던 스티브의 자부심이 신진 작가의 등장으로 흔들리는 모습, 그래서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는 꿈을 꾸는 장면 등은 스페인의 맛있는 음식과 눈부신 햇살, 기막힌 풍경에서 느낄 수 없는 인생의 그늘진 면을 담고 있다.

막역하면서도 뚜렷한 개성을 가진 스티브와 롭에 스페인의 저명한 작가 세르반테스가 창조한 대조적인 두 캐릭터,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를 대입시킨 부분도 흥미롭다. 그 어떤 상황극에서보다 잡지 사진 촬영을 위해 돈키호테와 산초로 분했을 때 두 사람의 관계가 잘 드러난다고 느껴지는 것은 까칠하면서도 이상이 높은 스티브와 가벼운 듯해도 충실한 친구, 롭의 캐릭터가 그들과 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 다큐와 로드 무비, 만담과 인문강좌를 합쳐놓은 듯한 풍부한 맛이 일품이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은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까. 트립 시리즈는 계속되어야 한다. (장르: 코미디,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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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젊은날의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들에게 글은 지식·논리이자 곧 선언이기도
펜의 힘이 절대적인 시대…‘세상을 바꾸는 힘’

정말 ‘글’의 영향력이 막대했던 시절이 있었을까. SNS에도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리는 것이 더 일반화된 지금으로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역사가 짧은 것은 물론이요, 인터넷이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불과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려 볼 때, 우리 세대는 분명 그러한 시절을 거쳤다. 집집마다 신문을 보던 시절, 다양한 분야의 잡지가 쏟아져 나오던 때가 있었고, 그러한 매체들은 나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청년 마르크스’(감독 라울 펙, 2017)는 훨씬 이전, 펜의 힘이 절대적이었다고 말할 만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만들어진 이 작품은 1943년부터 1948년까지, 20대의 ‘카를 마르크스’(오거스트 빌)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스테판 코나스케)를 조명한다. 엥겔스는 ‘동주’(감독 이준익)의 송몽규나 ‘박열’(감독 이준익)의 가네코 후미코와 마찬가지로 제목이 말해주지 않는, 그러나 그들보다는 예측 가능한 또 한 명의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함께 다른 이들의 글을 읽고, 반박하는 글을 쓰고, 논문과 책을 출간하며 그들이 어떤 사상과 목표를 갖고 있는지 세상에 알렸다. 영화는 이를 강조하기 위해 신문 기고문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해 저 유명한 ‘공산당 선언’ 낭독으로 끝을 맺고,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글을 읽으며 의인동맹을 설득하는 장면도 삽입시킨다. 그들에게 글은 지식이고 논리일 뿐 아니라 곧 선언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이상 진지한 글을 거의 읽지도 쓰지도 않는 시대, 전문가들의 글의 가치가 바닥까지 떨어진 현대에 두 사람의 이야기는 도전적이다. 글은 여전히 다른 소통 수단이 대신해줄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을 갖고 있음에도 그 기능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공산당 선언 한 달 후, 1848년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동구권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에도 사회 곳곳에서 ‘계급투쟁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마르크스의 책이 지금까지 전 세계에 출간되어 독자를 만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실존했던 인물의 우상화라는 함정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으나 청년 마르크스가 써내려갔던 사상의 정수를 공산당 선언 직전 5년간의 행적 속에 충실히 녹여내려 했다는 점에 의의가 큰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8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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