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뉴 노멀과 등체모용

  • 박규완
  • |
  • 입력 2018-05-15   |  발행일 2018-05-15 제31면   |  수정 2018-05-15

미·중 무역전쟁은 일어날까. 그렇지 않다는 게 대세인 듯하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지난 5일 미국과 중국이 그리 어리석지는 않다며 무역전쟁 가능성을 일축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미·중이 대치 국면을 접고 새로운 무역질서를 세우는 ‘뉴 노멀(new normal)’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 노멀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형성되는 표준을 의미한다. ‘뉴 노멀 중년’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뉴 노멀 중년은 적극적 소비와 자기 계발을 통해 젊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4050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뉴 노멀이 중국어로는 신창타이(新常態)이지만 중국에선 신창타이를 주로 중속(中速)성장이란 뜻으로 받아들인다. 중국은 후진타오 1기(2003~2007년) 시대만 해도 11%대의 고속성장을 일궜지만 지금은 6%대 성장이 고착화됐다. 후진타오 1기는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에 따른 자유주의 경제 사조가 풍미(風靡)하던 시기였다.

중국에서 국가 운영의 뉴 노멀은 ‘등체모용(鄧體毛用)’으로 압축된다. 등소평의 등, 모택동의 모다. 등소평의 개혁개방·시장경제를 포용하되 정치는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를 유지한다는 의미다.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 임기 제한 철폐를 승인함으로써 시진핑의 등체모용 기조는 더 확고해졌다.

비핵화를 표방한 김정은에게도 등체모용이란 화두가 어른거린다. 중국처럼 경제를 개방하고도 정치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김정은의 비핵화 결심의 동인(動因)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정은이 판문점 도보다리 산책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식 개방을 선호한다는 의중(意中)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베트남은 1986년 ‘도이모이 정책’을 선언하며 경제개방의 물꼬를 틔웠다. 도이모이는 베트남어로 새로운 변화라는 뜻이다.

국가 운영도, 경제도, 소비도 뉴 노멀이 대세다. 하지만 유독 뉴 노멀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곳이 있다. 우리나라 정치판이다. 여전히 케케묵은 색깔론이 횡행하고 여야의 극한대립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구태(舊態)가 뉴 노멀을 압도한다. 등체모용은 이질적 사조(思潮) 간의 융합 또는 공존이다. 대한민국 국회만큼 융합과 공존이 절실한 곳은 없을 성싶다. 박규완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