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한반도 빅뱅, 보수의 5가지 반응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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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5   |  발행일 2018-05-15 제30면   |  수정 2018-05-15
정치적 부침은 일시적
가치상실하면 지리멸렬
한반도 빅뱅 상황에서
‘뻥이야’하고 뒷짐지면
‘보수의 봄’ 만들 수 없어
[화요진단] 한반도 빅뱅, 보수의 5가지 반응

한반도 정세가 빅뱅 상황이다. 혼돈 속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호랑이 등에 함께 올라탔다. 질주하는 호랑이 등에서 스스로 내려오기엔 위험하고 이미 때늦었다. 한 사람이 내려오면 다른 한 사람은 자동 추락한다. ‘주호가편(走虎加鞭)’이랄까. 달리는 호랑이를 더욱 다그치며 끝까지 질주할 수밖에 없다. 한때 주적의 장수였지만 이제 한 배를 타고 거센 풍랑에 맞서고 있으니 어김없이 오월동주(吳越同舟) 형국이다.

판문점 선언은 두 사람을 극적으로 한 배에 올라타게 만든 일대 사건이었다. 배가 순항하리란 기대는 섣부르다. 장애물이 적잖다. 첫 관문이 북미회담이다. 판문점 선언의 성공 논란은 북미회담에서 가려진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은 진짜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긍정적이다. “훌륭한 미래를 위한 사변적 만남이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비핵화-체제보장’의 접점을 찾은 듯한 모양새다. 합의 수준이 높다면 남은 것은 세리머니뿐. 세리머니 장소로는 평양이 제격이었지만 싱가포르로 결정됐다. 평양에서 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친 트럼프의 승용차가 판문점을 거쳐 바로 서울로 내달리는 모습은 상상에 그치게 됐다. 강력한 압박으로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 줄 아는 승부사 트럼프, 인내하며 설득하는 ‘위대한 협상가’(美 타임지) 문재인, ‘핵보다 경제’를 선택한 계몽군주형(유시민 評) 실용주의자 김정은, 전혀 다른 3인3색의 남북미 리더십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뤘다. 다시 이런 기회를 만나기 쉽지 않다.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적으로 반전시켜 얻은 소중한 기회다.

북미회담은 지방선거 하루 전 열린다. 날짜를 정하는데 우리 정부가 개입했다고 믿고 싶진 않다. 그러나 우연치고는 매우 고약한 우연이다. 보수야당 입장에선 그렇다. 오히려 회담이 실패하면 선거에는 확실히 유리하다. 이후 정국 주도권을 잡을 절호의 기회를 얻는다. 이념의 기울어진 운동장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회담 실패를 부추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수진영의 딜레마는 판문점 선언 때부터 있었다. 한목소리 내지 못하고 서로 비난하다 자중지란에 빠져 있다. (1)거리의 보수는 4월27일(판문점 회담)을 ‘치욕의 날’이라 한다. 회담 자체를 부정한다. 문 대통령을 이완용에 비유하고, 김일성 사상 존경하는 사람이라 비난한다. (2)홍준표류 보수는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굉장히 위험한 기회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위험한 기회’에 방점이 있다. 거친 용어는 거리의 보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주사파 남북평화쇼’ ‘다음 대통령은 김정은?’ ‘감상적 민족주의 사로잡힌 감성팔이’ ‘김정은이 세상 밖으로 나온 건 보수정권 9년간의 성과’란 주장에서 알 수 있듯 이성과 감정, 당위와 현실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3)유승민식 보수는 이성적이다.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 제대로 해결하면 시대 영웅, 속으면 역사의 죄인이다.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4)하태경식 보수는 결이 조금 다르다. 지켜보자는 데는 비슷하지만 지금은 평화를 위해 힘 합쳐야 할 때라고 한다. 홍준표류 보수를 ‘평화의 적’이라 비판한다. (5)지방선거 출마자들은 국민정서에 보다 가깝다. ‘아쉬움 있지만 환영한다. 한국당 지도부 정신 차리고 국민 언어로 말하라’(유정복), ‘한반도 평화 문제는 여야, 보수진보 따로 없다’(김태호), ‘문재인 대통령님! 수고하셨습니다’(남경필)라고 한다. 개성시와 자매결연 추진(권영진), 환동해 경제권 부상 대비 영일만항 개발(이철우) 등 남북경협으로 일찌감치 눈 돌린 후보도 있다.

정치적 부침은 일시적이다. 그러나 보수의 가치를 상실하면 오랜 시간 지리멸렬한다. 한반도 빅뱅 ‘가치 그래프’가 있다면 보수정당은 어디쯤 좌표를 찍어야 할까. 답은 (3)~(5) 사이에 있다. “제비 한 마리 왔다고 봄 온 듯 환호하는 건 어리석은 판단”(홍준표)이지만은 않다. “여러 번 속았다” “뻥이야”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봄을 맞을 수도 만들 수도 없다. 결과의 불확실성은 있지만, 지금은 소위 ‘불신의 자발적 중지’(S.T. 콜리지)가 필요한 때다.

이재윤 경북본사 총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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