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교사폭행, 학부모는 찾아와 항의…학교 내에선‘쉬쉬’분위기 만연

  • 조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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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5 07:40  |  수정 2018-05-15 09:53  |  발행일 2018-05-15 제8면
폭행·폭언에 무너진 교권
20180515

학교 교실이 교권 침해에 무방비로 놓여 있다. 교사가 수업시간 휴대전화를 압수한 것에 학생이 거칠게 항의하는 것은 예사가 됐다. ‘꿀잠’을 깨웠다고 교사를 때리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별것 아닌 일로 자녀를 나무랐다며 학교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학부모도 부지기수다. 교권 침해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패악질’에 가까울 정도다. 교사 경시 풍조가 만연해지면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거나 아예 교단을 떠나는 교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경북도내 일선 학교의 교권 침해 실태를 살펴봤다.

경북도내 교권침해 98%는 학생
폭언·욕설 427건으로 가장 많아
교원 “신고 사례는 빙산의 일각
일단 참고 넘어가는 경우 상당수”
정신과 찾는 사례도 적지 않아

전문가“현행법 교사보호장치 없어
실효성 있는 법적 근거 마련 돼야


◆교사가 乙인 시대

올해 교사 생활 6년 차인 C씨는 그동안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교직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초 도내 한 고교로 발령받은 뒤 C교사의 교직생활은 꼬이기 시작했다. 한 학부모가 자녀 말만 믿고 “담임이 아이들에게 부당대우를 한다”며 C교사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해당 학부모는 수개월 동안 학교는 물론 교육청·국민신문고 등 교육 관계기관에 지속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했다. 심지어 학교까지 찾아와 학생·동료 교사가 있는 앞에서 폭언·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이 때문에 C교사는 교육활동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학부모의 행동도 문제지만 제자들의 이중적 모습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자신 앞에서 보이는 행동과 부모에게 하는 말·행동이 너무나 달랐던 것. 다행히 그는 경북도교육청 교원치유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지금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C교사는 “성실하게 쌓아온 교직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자괴감까지 들었다”며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온다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머리가 하얗게 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당시 악몽을 떠올렸다.

◆경북지역 교권 침해 현황

13일 경북도교육청에 따르면 최근 5년(2013~2017)간 접수된 교권 침해 사례는 모두 678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한 경우를 집계한 것이다. 위원회가 열리기 전 해결·처리된 사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대상별로는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가 98%(665건)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는 2%(13건)였다.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 사례 가운데 폭언·욕설이 427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수업진행 방해(121건), 기타(76건) 순이었다. 교원을 폭행(28건)하거나 성희롱(13건)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연도별로는 2013년이 204건으로 가장 많았다. 2014년 156건, 2015년 137건, 2016년 99건, 지난해 82건으로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다.

하지만 상당수 교원은 “교권 침해로 신고되는 사안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학교 내부에선 파장을 의식해 ‘쉬쉬’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얘기다. 현직교사 최모씨(47)는 “학생 때문에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긴 교사들이 학교·교육청 몰래 정신과를 찾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교사들이 적극적 대처보다는 주로 전보를 가거나 병가·휴직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교권 보호 법·제도적 장치 보완돼야

전문가들은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교권 침해를 막기 위해선 법·제도적 장치가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교원 보호를 위한 대표적인 법인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을 개정해 실효성 있는 교권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현행법은 교사를 보호할 만한 장치가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북지부 관계자는 “교사들이 교권 침해를 당해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며 “교권 침해가 심각할 경우엔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있도록 법률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교권침해를 당한 교사 법적 지원, 교권침해 가해 학생 학급 교체 및 강제 전학을 처분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등이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교원지위법’ 관련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학생 인권이 강조되면서 교권이 상대적으로 추락했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된다.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학교폭력 예방법에 근거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학생 보호에 초점을 둔 장치들은 강화되는 추세지만, 교사 인권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것. 실제 경북도교육청에 따르면 2012년 882건이던 학폭위원회 심의 건수는 2013년 1천104건, 2014년 1천195건, 2015년 1천331건, 2016년 1천560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지난해 통계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 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학교 현장에선 사소한 것도 학교폭력으로 인식해 정식 절차를 밟아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교사 강모씨(36)는 “교권보호위원회 심의 건수는 학폭위원회 심의 건수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며 “피해 교사들은 ‘학생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무능한 교사’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고통을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구미=조규덕기자 kd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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