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목민지관 불가구야’

  • 배재석
  • |
  • 입력 2018-05-14   |  발행일 2018-05-14 제31면   |  수정 2018-05-14
[월요칼럼] ‘목민지관 불가구야’

목민심서(牧民心書)는 목민관, 즉 백성을 가장 가까이서 다스리는 지방고을의 원이나 수령이 지켜야 할 덕목과 지침을 밝힌 책이다. 공직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강렬하고 울림이 커 오늘날에도 널리 읽힌다. 12부 72조로 구성된 이 책은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이 1818년 봄에 유배지 전남 강진에서 완성했다. 올해가 바로 저술 2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목민관들에게 강조한 정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공렴(公廉)’이다. 공(公)은 공정·공평이고, 염(廉)은 청렴이다. 지방관들이 부정부패 없이 깨끗하고 공정한 행정을 펼쳐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가르침이다. 목민관은 요즘으로 치면 지방자치단체장이다. 범위를 넓히자면 지방의원이나 지방의 고위공무원을 넣을 수도 있겠다.

말은 쉬워보여도 공렴은 부단히 자신을 채찍질하고 다잡지 않으면 예나 지금이나 지키기 어려운 덕목이다. 1995년 시작된 민선 1기부터 지난해 민선 6기까지 선거법 위반과 뇌물수수혐의 등으로 기소된 자치단체장이 모두 364명이나 되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이 기간에 선출된 단체장 1천474명의 24.7%에 해당한다. 민선 4기에서는 단체장 264명의 44.7%인 110명이 기소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민선 1~6기 동안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단체장이 무려 114명(7.7%)이다.

지방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지방의원들도 더하면 더했지 이에 뒤지지 않는다. 2000년 이후 지난해 4월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임기 중 직위를 상실해 재보선을 유발한 지방의원이 821명에 이른다. 대구시의회의 경우 지난해만 5명의 시의원이 뇌물수수·직권남용·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기초의원의 비리와 갑질은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그렇다고 의정활동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2014년 7월 이후 지난 3월까지 대구 8개 구·군 기초의원 118명 중 구정질문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의원이 57명(31.4%)이나 된다. 단독 조례안을 발의한 의원도 고작 15명(12.7%)에 불과하다. 이러니 의정비 아깝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바야흐로 한 달 후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우리 손으로 뽑아야 할 일꾼이 4천여 명이나 될 정도로 중요한 선거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드루킹 특검 공방, 정권심판론 등 대형 이슈에 묻혀 주민들의 관심이 예전만 못하다. 지방분권·지방자치 확대 같은 어젠다가 사라지고 지역 공약도 잘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대구경북은 특정정당 간판이 곧 당선이라는 인식이 강해 긴장감이 떨어지고 ‘묻지마’ 투표가 재현될 공산이 크다. 이럴수록 유권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공렴한 후보가 누구인지, 비전과 능력은 갖췄는지 꼼꼼하게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재원 조달 계획도 없이 장밋빛 무상공약 시리즈를 남발하는 후보는 경계 1순위다. 당장은 달콤할지 몰라도 공짜점심은 없는 법이다. 4년 후면 주민들이 고스란히 빚을 떠안아야 한다. 지역살림과 민생은 내팽개치고 중앙당 눈치를 보며 국회의원 심부름꾼 노릇이나 하는 출세지향형 후보도 이번 선거에서는 반드시 걸러내야 한다. 파렴치범 등 전과자, 학연·지연·혈연에 기대 선거를 치르려는 후보, 지역갈등·이념대결을 부추기는 후보 역시 곤란하다. 특히 돈을 써서 당선되려는 후보는 더더욱 안 된다. 당선되더라도 본전 생각에 공무원 인사 대가로 검은돈을 받거나 관급공사 입찰비리에 얽혀 중도하차하기 십상이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타관가구(他官可求) 목민지관(牧民之官) 불가구야(不可求也)’라 했다. 다른 벼슬은 스스로 희망하여 구해도 좋지만 목민관은 욕심내어 구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만큼 다른 어느 자리보다 책임이 막중하고 청심(淸心)과 능력을 구비해야 그 직을 수행할 수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이제 눈앞에 닥친 6·13지방선거에서 어떤 목민관을 선택할지는 오로지 유권자 손에 달렸다. 최소한 후보자의 언행과 걸어온 발자취만 눈여겨봐도 최악의 선택은 피한다. 투표율도 최소한 60%는 넘겨야 지방자치가 힘을 얻는다. ‘참여하는 사람은 주인이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손님이다’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을 모든 유권자가 되새겼으면 한다.배재석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