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루비 스팍스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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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1   |  발행일 2018-05-11 제42면   |  수정 2018-05-11
하나 그리고 둘

에델과 어니스트
평범하지만 애잔한 이야기…동화 같은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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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의 어느 평범한 월요일, 2층에서 걸레를 털고 있던 한 가정부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우유배달부가 우연히 인사를 한다. 우유배달부는 며칠 후, 가정부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두 사람은 함께 영화를 본다. 그들이 처음 인사했던 날은 더 이상 평범한 월요일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한 ‘에델’(목소리 브렌다 블레신)과 ‘어니스트’(목소리 짐 브로드벤트) 부부를 맺어준 특별한 월요일이 된다.

‘에델과 어니스트’는 감성적 그림 동화 ‘눈사람 아저씨(The Snowman)’의 원작자인 ‘레이먼드 브릭스’가 그 시절 보통의 삶을 살았던 자신의 부모님을 회상하며 만든 작품이다. 1999년 ‘올해의 영국 도서상’에서 ‘최우수 그림책 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책을 레이먼드의 동료이자 애니메이터인 ‘로저 메인우드’가 거의 20년 만에 95분짜리 애니메이션으로 완성시켰다. 원작 그림체의 투박한 선과 수채화의 서정적 느낌을 살리면서도 꼼꼼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재현된 당시의 거리나 집 안팎의 세밀한 묘사까지 인상적인 이 작품은 말 그대로 동화 같은 실화다. 따뜻하고 밝은 톤의 영상 속에 한 가정의 희로애락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2차대전 참상과 부부의 40년간 희로애락 담아
디테일하게 꾸민 소품·뛰어난 성격 묘사 볼만



런던 중심부에서 만난 두 명의 노동자는 윔블던 파크 근처에 40년 동안 살게 될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달콤한 신혼 생활을 거치며 살림이 하나씩 늘어가고,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가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서 또 다른 가정을 이룬다. 부부의 40년을 몇 달 간격으로 보여주면서 ‘에델과 어니스트’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하나는 두 사람이 그 시대의 기술문명과 사회상을 받아들이는 장면을 삽입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니스트는 자전거 대신 전기차로 우유를 배달하게 되고, 부부의 집에 전화기와 텔레비전이 차례로 들어오며, 나이가 들자 어니스트는 자가용까지 사게 된다. 또한 동성애가 합법화된다든가 아들 ‘레이먼드’(목소리 루크 트레더웨이)가 등기소에서 결혼하고, 인간이 달에 착륙하는 모든 낯선 일들이 부부가 함께한 시간 속에 녹아들어 있다.

또 한편에서는 영국의 정치사가 펼쳐진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의 지난한 경험이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1930~40년대의 국제정세는 평화로운 어니스트의 가정과 대조적으로 끊임없이 요동치던 유럽의 상황을 설명한다. 위태위태한 주변국들의 상황은 결국 영국만은 안전할 거라는 믿음을 배신하고 에델 부부와 아들까지 위험으로 몰아간다. ‘덩케르크’(감독 크리스토퍼 놀런), ‘다키스트 아워’(감독 조 라이트)가 보여주었던 처칠의 ‘다이나모 작전’ 시기가 이번에는 한 가족사 안에서 지나간다. 전쟁은 평범한 가정집의 대문을 떼어냈고, 다양한 종류의 방공호를 제작하게 했으며, 욕조에 물을 5인치만 받게 만들었다. 부부는 당대의 여느 가정처럼 정부의 지시와 방침을 묵묵히 따르며 종전을 기다린다. 선착장에서 전쟁의 참상을 본 어니스트가 집에 돌아와 흐느끼는 장면, 공들여 꾸민 예쁜 집이 폭격으로 망가지는 장면 등은 거시사가 개인에게 미치는 정서적·물질적 피해에 대해 잘 묘사한다.

‘에델과 어니스트’는 레이먼드가 부모님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지만, 집 안에 방공호를 만들어가며 혼란과 어둠의 시대를 버텨준 세대 모두를 기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장성한 레이먼드가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하며 아버지가 꿈꾸던 집에 살게 되는 부분은 의미심장하다. 로저 메인우드 감독은 이별과 죽음의 순간도 그저 삶의 일부일 뿐이라는 듯 담담하게 그려냄으로써 더욱 애잔한 감정을 돋운다. 방 안에 걸린 액자, 부엌의 식기와 벽지의 무늬, 협탁에 놓인 귀걸이까지 세심한 디테일이 감탄스럽고, 에델과 어니스트의 성격 묘사도 뛰어나다. 무엇보다 서민들의 이야기도 이토록 아름다운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는 작품이다. (장르: 애니메이션,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5분)


루비 스팍스
꿈속 그리던 완벽한 이상형…로봇 같은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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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말코비치 되기’(감독 스파이크 존스)에는 한 사람의 몸을 숙주 삼아 그 사람의 육체와 영혼을 조종하고, 숙주를 옮겨 다니며 영생을 꿈꾸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스트레인저 댄 픽션’(감독 마크 포스터)은 한 작가가 써내려가는 소설대로 인생이 흘러갈 운명을 맞이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기발한 상상력도 상상력이지만 이러한 작품들에는 한 인격체를 ‘조종’하는 능력, 혹은 그 능력을 가진 인물에 대한 도덕적 문제의식이 잠재해 있다.

상통하는 서사를 가진 ‘루비 스팍스’(감독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에도 완벽한 이상형과의 달달한 로맨스 이면에 꽤 무거운 주제가 담겨 있다.


의도한 대로 움직이는 루비에게 공포 느끼기도
실제 연인 주인공의 완벽 호흡, 달달한 로맨스


10대 때 이미 베스트셀러를 쓴 천재작가 ‘캘빈’(폴 다노)은 오랫동안 슬럼프에 빠져있다. 어느 날, 꿈속에 나타난 완벽한 이상형을 생각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갑자기 현실에 등장한 그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루비’(조 카잔)는 캘빈이 써내려가는 글에 따라 조종 가능한 상상 속의 여성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이는 현실 속의 인물이다. 이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캘빈은 루비를 깊이 사랑하게 되지만, 한 번 권태기에 접어들자 계속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 로봇처럼 자신이 의도한 대로만 움직이는 루비의 모습은 그에게 쾌감이나 만족감보다 공포와 가책을 불러일으킨다. ‘이상형’, 즉 내가 창조해낼 수 있는 애인 혹은 조종 가능한 연애에 대한 환상이 루비와 캘빈의 관계를 통해 무참히 깨진다.

평범할 수 있는 플롯을 산뜻하게 포장한 설정과 재치 있는 대사들이 돋보인다. 영화의 각본을 썼을 뿐 아니라 루비역을 맡은 ‘조 카잔’의 매력이 빛나고, 실제연인이기도 한 ‘폴 다노’와의 호흡도 역시 훌륭하다. 국내에 조금 늦게 찾아온 점이 아쉬울 뿐이다. (장르: 멜로, 판타지,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4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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