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삼성전자 액면분할의 정치적 함의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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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09   |  발행일 2018-05-09 제31면   |  수정 2018-05-09
[박재일 칼럼] 삼성전자 액면분할의 정치적 함의

지금 주식시장에는 삼성전자의 액면분할이 화제다. 250만원대이던 주식이 5만원대에 거래된다. 액면가 5천원 주식을 100원으로 쪼갰다. 이론상 기업가치에는 변화가 없다. 기업은 그대로인데 주식 수만 50배, 6억4천만주로 늘렸기 때문이다. 주가가 엄청 싸진 착시 현상에다, 개인들이 대거 매집에 나서면서 상승이 점쳐졌지만 기대만큼 오르지는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이 자랑하는 애플과 견주는 세계적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액이 무려 239조원이다. 매출액보다 더 주목받는 것은 이익 구조다. 2017년 순이익이 42조원, 약 420억달러를 벌었다. 100원어치를 팔면 20원 이상을 남긴다. 제조업체로서는 경이적이다. 시가총액은 339조원, 코스피 전체의 30% 이상을 점한다.

삼성의 존재는 이런 수치의 위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한국 재벌을 논하면 그것이 적폐든 대한민국 자존심이든 간에 삼성을 빠뜨릴 수 없고, 정치적 격변기에 빠지면 억울하다는 듯 늘 삼성은 등장한다. 아버지 이건희에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박근혜 탄핵의 격랑속에 근 1년간 감옥에 갔다.

삼성 하면 지난 대선과정에서 돌풍을 일으킨 민주당의 이재명 성남시장이 떠오른다. 그가 갑자기 왜 부상했는지 궁금해서 유튜브에서 그의 연설 동영상들을 봤더니 이해가 됐다. 재벌을 ‘주인인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했다. 이재용의 삼성전자 지분은 1%도 안 되는데(실제 액면 분할 이후 기준 0.64%) 이 회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반면 국민연금은 9.44%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당연히 국민의 것이라는 논리다.

물론 이재용은 삼성물산, 삼성생명에다 아버지 이건희 전 회장 지분(3.81%)을 포함해 20.21%의 최대주주단의 핵심 주주다. 그렇지만 이재용은 앞으로 이건희 지분을 상속받는다 해도 거의 절반에 가까운 세금을 내야 한다. 보유주식을 팔아서 세금을 내야하므로 지분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삼성이 경영승계를 놓고 수백명의 변호사와 회계사를 동원해 최적의 경우의 수를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연금은 이미 620조원을 넘는 사실상 현찰을 보유한 세계적 연기금이다. 국민연금 펀드매니저는 기업가치가 올라갈 것으로 예상한다면 지속적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할 것이다. 이건 삼성뿐 아니라 국내 재벌 우량 기업의 대부분에 해당된다. 요즘 국민적 질타를 받고 있는 대한항공만 해도 국민연금이 2대주주다. 국민연금은 향후 1천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이 기업을 소유하는, 어쩌면 ‘연금 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

올해는 공산주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가 탄생한 지 딱 200년 된다. 시진핑은 ‘지구상에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계승자는 중국’이라고 찬양했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하부구조(경제)가 상부구조(정치)를 규정한다는, 그래서 역사발전의 종착점을 공산사회주의로 단정한 마르크스의 이론은 선명하고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그런데 마르크스 스스로 보지 못한, 실수한 대목은 주식을 발행하는 주식회사라고 한다. 주식회사의 눈부신 진화를 그가 예상했다면 그는 공산주의를 접었을 것이다.

남북이 대화하는 해빙시대가 오는 모양이다. 비핵화에 이어 통일시대가 논의된다. 그러고 보니 이런 생각들이 든다. 남과 북의 다른 점, 격차는 뭘까. 어쩌면 남한에는 삼성전자(대기업)가 있고 북한에는 없는 차이는 아닐까. 남한은 사회주의적 요소인 국민연금이 있고, 정작 사회주의를 표방한다는 북한에는 없다. 그렇다면 통일이 돼 행여 남한의 국민연금을 북한 주민과 나누자고 제안한다면 동의할 국민이 몇이나 될까.

이재용 스스로도 주변 지인들에게 재벌경영체제는 끝났다고 토로했다고 해외언론이 전했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무려 52%다. 조단위 이익 배당금의 절반이 매년 국외로 유출된다. 거대 담론을 뒤로하고 액면분할도 됐으니, 삼성전자 주식 몇 주라도 구입하는 것도 괜찮을 성 싶다는 상념이 든다. 사회주의적 공유제가 ‘국민 주권(株券)’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꽃을 피우는 미래가 도래할 것 같다. 자본주의 한국의 아이러니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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