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금수강산 적막강산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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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07   |  발행일 2018-05-07 제23면   |  수정 2018-05-07
[월요칼럼] 금수강산 적막강산
원도혁 논설위원

지방 국립대에서 임학을 전공한 뒤 목재회사에 잘 다니던 고향 후배가 몇 년 전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왔다. 뉴질랜드로 이민가게 돼 곧 떠나며 인사드린다는 게 전화의 골자였다. 아이고, 복도 많은 놈 같으니…. 천국에 가서 사는 기회를 얻다니…. 평소 떠벌이에다 참견 잘하고 왕성하게 설쳐대는 그 후배의 성정을 아는 지인들은 부러움 섞인 비아냥을 곁들여 축하해 줬다. 그리고 2년여 조용했다. 그 후배가 참석하지 않는 서클 동문회와 향우회는 사실 좀 싱거워서 회장단이 신명나는 프로그램을 따로 마련해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인들은 이민 생활을 정리하고 왔다는 그 후배의 시끄러운 전화를 차례로 받았다. 귀환 이유를 묻는데 대한 그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천국요? 형님, 심심하고 재미가 없어서 못살겠습디다.” 이웃집이 있긴 한데 오른쪽은 8백m 왼쪽은 1천400m나 떨어져 있었다고 했다. 밤은 그야말로 적막강산 그 자체였다고 했다.

‘재미있는 지옥’ ‘재미없는 천국’. 이는 한국사회와 뉴질랜드를 적나라하게 비유하는 단어들이다. 후배는 재미없는 천국 뉴질랜드에서 계속 살기가 싫어서 재미있는 지옥 한국으로 2년 만에 컴백한 것이다. 한국인에게 선택을 하라고 하면 아마도 ‘재미있는 지옥’에 살겠다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한국인의 유전자는 재미있는 지옥에 더 잘 적응돼 있기 때문이리라.

인간의 고독사 문제가 심각하다. 70~80대 노인뿐 아니라 혼자 살던 50대도 죽은지 몇 달이나 지나서 주검으로 발견되는 일이 잦다. 황혼 이혼과 해혼이 늘면서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에 두드러진 현상이다. 생명체들이 살다가 수명이 다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하지만 할 일을 다하고 맞는 준비된 죽음과 축복된 죽음이어야 한다. 어떤 종교에서는 비명횡사하거나 객사하는 경우엔 영혼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구천을 떠돈다고 하지 않던가. 적막강산에서 쓸쓸한 노후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인간 수명의 연장에 따른 고령화 탓도 있다. 배우자와 가족을 먼저 보내고 홀로 남는 경우가 그러하다. 친구라도, 친한 후배라도 가까이 있다면 좀 나을 것이다.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그런 삶은 의미가 없고 고통스러울 뿐이다. 선험자들은 60세 직장 은퇴를 예상하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서 다들 마음은 그렇게 먹고 있어도 실제 준비는 잘 안된다. 경제적인 부족도 이유가 되고, 현업에 얽매여 바쁘게 살다보면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몇몇 신문에 나온 부러운 사례들은 오려서 보관하고 있다. 직장에서 은퇴하자마자 평소 자신이 하고 싶었던 클래식 기타 만들기에 곧바로 도전한 한 대기업 출신 은퇴자는 그중에서 선명하게 기억된다. 그 글을 읽고 나는 무능과 결단없음을 자책했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맘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는 대기업 임원 출신이니까 가능했겠지’ 하고 핑계를 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분은 클래식 기타의 본고장 스페인에 있는 기타 제조학교까지 이수하고 국내 기타 공방에서 제대로 배운 뒤 자신의 기타 공방을 열었다고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면서 독창적인 창조물을 만든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굳이 이윤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면 금상첨화 아닌가.

나이 들면 남녀에게 필요한 것 5가지가 다르다는 만담이 이 대목에서 생각난다. 여성은 여고동창회·계모임·딸·강아지·돈이고, 남성은 마누라·처·아내·와이프·각시라고 했던가. 그보다 나이 들어 ‘남자의 경쟁력은 지갑 두께’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금수강산(錦繡江山)과 적막강산(寂寞江山)의 차이는 별 것 아니다. 돈 있고 같이 놀아줄 친구가 있으면 어디서나 금수강산이다. 반대로 돈 없고 친구마저 없으면 적막강산이 될 수밖에 없다. 인생 후반전을 금수강산에서 즐겁게 보낼 것이냐, 아니면 적막강산에서 견디다 갈 것이냐의 선택은 온전히 자기 자신의 몫이다. 각자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금언을 되새기면서.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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