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오래된 친구 만드는 비결

  • 최은지
  • |
  • 입력 2018-05-07 07:42  |  수정 2018-05-07 07:42  |  발행일 2018-05-07 제13면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보는 것이 어떨까”
20180507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경훈이와 준서는 단짝친구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같은 반이 되어 친해졌다고 합니다. 집도 가깝고 학년이 올라가며 같은 반을 여러 번 하면서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둘 사이가 서먹서먹한 것 같아 두 사람을 불렀습니다. 학생들 간에 사소한 변화라도 보이면 도움이 될까하여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제가 하지도 않은 일을 경훈이가 먼저 친구들에게 소문을 내서 저도 화가 나 나쁜 말을 했어요.” “준서가 먼저 기분 나쁜 말을 해서 저는 그냥 다른 친구에게 그럴 것이라고 한 것뿐입니다.”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는데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이 먼저 잘못을 했기 때문에 다툼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즉 친구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 똑같이 화를 내고 똑같은 행동을 했다는 것이지요. 저는 조용히 웃으며 얼마 전에 들은 어느 작가와 그분의 친구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여러분도 직접 들어봅시다.


친구의 잘못을 나무라고 맞선다면
점점 사이가 멀어져 결국은 잃게 돼
잘못을 했더라도 믿고 기다려줘야



“나에겐 그림자처럼 늘 함께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기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변함없이 나에게 힘이 되어 준 친구지요. 우리가 처음 만난 지 어느덧 50여 년이 다 되어가네요. 나는 중학교에 진학하여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공부에 흥미가 없어 학교 가기가 싫었습니다. 억지로 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등교하다가 그 친구를 보았습니다. 교문 앞에서부터 교실에 들어오는 현관까지 운동장의 쓰레기를 주워 책가방에 담아 와서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만날 때마다 말없이 운동장 청소를 할 뿐만 아니라 교실에서도 친구들이 꺼리는 일은 도맡아 하였습니다. 저와 다른 친구들은 그 친구를 바보 같다고 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제 마음 안에 알 수 없는 존경심 같은 것이 생겨났습니다.

어느 날 다른 친구와 다투어서 점심을 먹지 않고 씩씩거리고 있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다가와 책 속의 주인공에 대해 물었습니다. 독서에 흥미가 없던 내가 잘 모르겠다고 하자 주인공의 특징과 줄거리를 연결시켜 설명하며 참으라고 했습니다. 높은 관심을 보이자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점심시간마다 자신이 읽은 책이나 고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청소년 필독 도서로 선정하여 학교에서 읽어 보라고 한 책이나 어려운 책도 그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데미안, 어린 왕자, 파우스트, 죄와 벌…. 아마 이런 이름들을 친구를 통해 처음 들었지요. 뿐만 아니라 국어나 역사 방면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쉽게 가르쳐주어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으려던 마음을 접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책에 대한 관심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힘든 공부를 마치고 그 친구는 목사가 되어 사회사업에 전념하였습니다. 등록금이 없어 학업을 포기하려고 하면 잠시 연락이 뜸하다가도 어떻게 알고 나타나 말없이 도와주었습니다. 몇 번의 사업 실패로 좌절해 있을 때도 조건 없이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친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친구를 통해 새로운 나를 찾을 수 있었듯이 나를 통해 친구를 빛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늦깎이 공부를 시작하여 늦은 나이에 작가가 되었고 죽는 날까지 공부하며 살려고 생각합니다.”

5년 지기 친구관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운데 50년 지기 친구를 얻는 방법을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에게 의미있는 소중한 한 명의 친구만 있으면 세상을 얻은 듯 힘이 되고 외롭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설령 친구가 나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순간적인 실수라고 믿고 덮어주는 것, 조용히 참고 기다려 주는 것은 어떠할까요? 친구가 먼저 잘못을 하였다고 똑같은 잘못으로 맞서면 점점 사이가 벌어지고 결국은 친구를 잃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잘못된 행동의 고리를 끊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우월함을 자랑한다거나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고 싶어 행동하는 사람은 점점 향기를 잃어 친구들로부터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어느 신문사에서 ‘먼 길을 가장 빨리 가는 법’이란 물음으로 현상공모를 냈는데 비행기, 기차 등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이 나왔지만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 일등으로 당선되었다고 합니다. 좋은 친구와 함께 가면 즐겁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간다면 아무리 어렵고 먼 길도 짧게 느껴질 것입니다. 보기 싫은 사람과는 단 1분이라도 지루하고 답답하고 길게 느껴지는 것과 상반된 이치지요. 인생이라는 힘든 길도 마음과 뜻이 맞는 친구와 함께한다면 어렵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서로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그런 친구는 바로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친구에 대한 함석헌 시인의 시구를 읊으며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만 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양보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중략…

임기숙 (대구용계초등 교사)

기자 이미지

최은지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