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제주 4·3’ 70주년…다시보는 4·3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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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04   |  발행일 2018-05-04 제43면   |  수정 2018-05-04
‘빨갱이 사냥’…스크린에 담은 제주 양민 무고한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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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1일부터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양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당시 미군정은 제주도민의 70%를 좌익 또는 그 동조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경찰이 그대로 미군정의 경찰이 되고 그로 인한 갈등이 증폭되면서 제주도는 혼돈의 섬이 되었다. 이 와중에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가 예정되면서 남로당 제주도지부는 중앙당과의 협의 없이 무장폭동을 감행했다. 극우세력은 미군정에 ‘빨갱이 토벌 작전’을 요청해 전국에서 차출한 대규모 군인과 경찰, 그리고 서북청년단 등의 반공단체가 급파됐다. 이 사건으로 당시 30여만명의 도민이 연루되어 이 가운데 무려 3만명이 학살됐다. 대부분 제대로 된 재판 절차도 없이 집단으로 사살되었다. 당시 토벌대가 파악한 무장대 수는 500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빨갱이가 뭔지도 모르는 양민이었다는 이야기다.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섬 제주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가 되었다.

지난 4월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는 70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봉행됐다. 이 자리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제주 4·3에 대한 사과와 함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4·3 추념식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06년 고(故)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최초로 참석해 4·3유족과 제주도민에게 사과한 바 있고, 이후 2014년 제주 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뒤 현직 대통령의 첫 참석이 되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위령제’라는 이름으로 지역 단위 행사로 열렸다. 문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제주 4·3을 알리고 기억하기 위해 노력한 4·3 관련 단체들을 일일이 열거한 데 이어 4·3 관련 문화예술 작품들을 소개했다.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삼촌’, 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가수 안치환의 ‘잠들지 않는 남도’와 함께 4·3을 다룬 영화들도 함께 거명했다.


2014년 제주 4·3 국가추념일 지정
문재인 대통령 추념식에 첫 참석
소설·詩·영화 문화예술 작품 소개

1996년 최초 다큐영화 ‘레드헌트’
미군정 보고서·생존자 인터뷰 담아
조성봉감독 보안법위반 체포되기도

최초 극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
故김경률 감독 바통 오멸 감독 제작
선댄스영화제 수상, 세계 알려져

‘비념’‘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제주 아름다움에 가려진 아픔



조성봉 감독의 ‘레드 헌트’(1996)는 제주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1992년 북제주군에서 발견된 다랑쉬굴의 희생자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미군정 보고서와 당시의 신문 보도, 연구자와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설득력을 확보한다.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상영되기도 했지만 이 영화로 조 감독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제목은 ‘빨갱이 사냥’을 뜻한다.

‘레드 헌트’가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였다면 ‘끝나지 않은 세월’(2005)은 최초의 극영화였다. 김경률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제주 4·3을 경험한 노인이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으로 제주의 사계절을 모두 담았다. 4·3 같은 역사와 함께 제주의 문화와 생태가 지닌 아름다움을 외지인의 시각과 정서가 아닌 순수 제주민의 것으로 스크린에 담아내려 했던 그의 열정은, 그러나 갑작스러운 부고로 헛것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 오멸 감독이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2012)를 만들어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의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제주 4·3을 전 세계에 알리는 쾌거를 이룬다. 영화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빼어난 미장센과 흡인력 있는 연출력으로 그렸다. 영화 시작에 앞서 ‘총 제작지휘 고(故) 김경률 감독’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먼저 떠난 선배 감독의 유지를 이어간다는 오 감독의 다짐일 것이다.

임흥순 감독의 ‘비념’(2012)은 4·3으로 상처 입은 제주도와 제주 사람들의 오랜 한숨과 깊은 슬픔에 귀 기울이고, 최근의 강정마을 사태에 이르기까지 제주도를 둘러싼 현재 진행형의 비극을 묵직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4·3으로 남편을 잃은 강상희 할머니의 삶을 주축으로, 제주도가 아름다운 관광지면서 동시에 실은 거대한 무덤이며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영혼들의 땅임을 보여준다.

김동만 감독과 김은희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한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1992)는 4·3 당시 다랑쉬굴에서 군경토벌대에 참혹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제주 구좌읍에 위치한 다랑쉬굴에서 희생자들을 발굴하는 과정부터 정부와 당시 북제주군청에 의해 화장되기까지를 담았다. 원작은 제주에 살고 있는 김수열 시인이 썼다. 4·3 당시 군경이 난사한 총에 맞아 무명천으로 얼굴을 감싼 채 반송장 같은 모습으로 남은 인생을 살다 간 고(故) 진아영 할머니의 모습을 그린 김동만 감독의 ‘무명천 할머니’(1998) 역시 4·3의 무참한 실상을 알게 하는 작품이다.

제주 4·3 70주년을 기념해 아리랑시네센터에서 지난 4월6일부터 3일간 열린 ‘제주를 넘어, 4·3 영화특별전’에서 이 영화들을 대부분 볼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제주 출신 영화감독 3명(양윤호·한재림·오멸)이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릴레이 캠페인을 알리는 TV 광고를 만들기도 했다. 재일조선인작가 김석범이 20여 년에 걸쳐 원고지 2만2천장에 쓴 ‘화산도’에 이어 ‘과거로부터의 행진’이 출간되기도 하고, 오랫동안 절판되었던 이산하 시인의 ‘한라산’도 복간되었다. 자신이 가진 예술적 재능으로 한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알리기 위해 애쓴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5월 제주는 청보리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시기라고 한다. 한때 대표적인 신혼 여행지로 손꼽히던 곳이 제주도였다. 우리가 그동안 보아왔던 제주의 아름다움에 가려진 아픈 역사가 자꾸만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 말들이 바람에 흩어지는 혼잣말이 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되지 않겠는가. 더 이상 피하거나 외면하지 말자. 제주4·3은, 이제 대한민국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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