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충북 진천 종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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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04   |  발행일 2018-05-04 제37면   |  수정 2018-05-04
부모도, 이웃도, 나라도 사랑하게 되는 ‘천상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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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종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신종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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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유일인 진천 종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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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종박물관의 아트 디자인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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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종박물관에 있는 생거 진천 대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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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을 당기면 소리가 나는 체인종 전시장.

종소리는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에 밀레 에 밀레 끊어지다가 이어지면서 봄의 낯선 해 그림자를 건너와 귓전을 감돌다가 가슴에서 맥놀이하였다. 종각에 다가가자 종소리는 심장으로 들어와 전신을 돌면서 붉게 운다. 한 번 울어 여러 소리가 되고, 서로 간섭하면서 높아졌다가 낮아지는 종소리는 그 자체가 신비다. 어디서 끌어 오는지, 엄마 찾는 아기의 울음도, 부모를 모시는 자식의 애틋한 효심도 그 소리에 담겨 있다. 종소리는 흙 속으로 들어갔다가 공명하면서 다시 지상으로 울려 퍼지고, 아득한 하늘 저 멀리 가물거리도록 갔다가 되돌아 와 낮게 울려퍼진다. 다시 한 번 울어서 에 밀레 에 밀레 울어서 듣는 자 마음에 자비희사 사무량심(慈悲喜捨 四無量心)이 일어나 어둠에 잠든 나를 깨운다.

봄바람이 불어오면 종소리는 먼 들판과 산을 넘어가 성냥팔이 눈 먼 소녀의 손을 어루만지고, 거리마다 골목마다 돌고 돌아 가난한 사람의 따뜻한 속옷이 된다.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진천 종박물관이다. ‘생거 진천 대종각’에 도착한다. 조금 기다렸다가 직접 타종을 해본다. 청동의 표면을 떠난 종소리는 진동의 새가 되어 퍼져 나간다.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고 하면서 맨발로 돌밭 위를 걷다가 넘어지고 일어나 걷다가 다시 넘어지면서 정강이가 깨지고 피 흘리는 부처님, 종소리는 내 몸 내주어 헌신하는 우주의 밥그릇이다. 긴 여음이 치어떼처럼 사라지자 또 한 번 타종을 한다. 종소리는 그윽하게 몸 안 구석구석을 헤엄치면서 금빛 물보라를 일으킨다. 할머니가 일생 동안 우려내신 옛 이야기의 구수한 곰방대 연기처럼 전설을 불러온다. 저 종소리 어떻게 저토록 시공을 넘나들며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을까. 저 종소리를 타고 시공을 건너가면 부처의 나라에 이를까.

세계의 범종 중 으뜸인 성덕대왕 신종
귓전 맴돌다 온몸에 스며드는 종소리
온갖 나쁜 생각은 사라지고 마음 뚫려
신라 손순 孝에 감복, 하늘이 내린 석종
희생·헌신·사랑…영혼·신앙으로 존재

전시장 코너마다 세계 종 역사 한눈에
신라·고려·조선 종 일목요연하게 정리


◆종박물관 관람

종박물관 실내로 들어가 관람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성덕대왕신종, 일명 에밀레종에 대한 자료가 잘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 범종은 세계 학계에서 ‘한국 종’이라는 학명으로 불릴 만큼 독보적이다. 종의 무늬가 정교하고 울림이 장엄하며 거슬리는 쉿 소리가 없어 세계 범종 가운데 가장 으뜸으로 여겨진다. 외형은 마치 장독을 거꾸로 엎어 놓은 것 같은 모양새다. 상단은 좁고 배 부분이 볼록하다가 다시 하단으로 가면서 점차 오무라드는 형태는 아름답고 안정감이 있다.

에밀레종 주조는 신라 제35대 경덕왕이 부친 성덕대왕과 모친 소덕태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구리 12만근으로 만든 신라의 국가적인 불사였다. 그러나 여러 번 종 완성에 실패한 채 경덕왕은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은 혜공왕 대에 성덕대왕 신종이 완성되었다. 에밀레종은 주조하면서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고, 어렵고 힘들게 완성한 탓인지 그 울림이 멀고 길며, 은은하고 잔잔한 맥놀이가 이루어져 마치 천상의 소리처럼 신기하다. 이 종소리가 귓전에 맴돌다가 온몸에 스며들면 온갖 나쁜 생각이 햇빛에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마음이 뚫리면서 나와 허공이 하나가 된다.

신라 서라벌에 에밀레종이 울려 퍼지면 그 소리를 듣는 이들은 똑같이 일체가 되어 귀의하고, 한 수레에 같이 타고 건너가며, 부모도 이웃도 나라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이 부족하던 시대, 아침과 저녁으로 울리는 종소리는 밥이고 법이며, 자비이고 화랑정신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한국 종에 서려 있는 전설 속으로 여행해 보자. 전설은 인간 내면의 세계를 만들고 있는 정신과 본능의 힘을 인격화한 것으로, 인간의 뼈와 피의 유전자를 그린 큰 지도다.

◆손순의 돌종

신라 42대 흥덕왕 때의 일이다. 경주 모량리에 손순은 홀어머니 모시고 아내 외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비록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지극정성으로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나무를 장에 가서 팔아 돈을 장만하면 생선이나 고기를 사다가 홀어머니 밥상에만 올려드렸다. 그러나 철부지인 어린 아들은 끼니 때마다 할머니에게로 가 할머니의 반찬을 먹었다. 게다가 할머니마저 손자가 귀여워 자기의 밥과 반찬을 먹이다 보니 늘 배가 고팠다. 보다 못한 손순이 아내와 의논하였다. “아이는 또 낳으면 되지만 어머니는 돌아가시면 다시 모실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저 아이로 인해 굶주리고 계시니, 저 아이를 땅에 묻어버리고 어머니를 굶주리지 않게 모십시다.” 아내도 동의하여 손순 부부는 외아들을 업고 취산의 북쪽에 가서 땅을 팠다. 그때 괭이에 무언가가 부딪치며 괘∼엥 하는 아름다운 소리가 들렸다. 신기하여 더 깊이 파니 돌종(石鐘) 하나가 나타났다. 손순 부부는 이런 기이한 일은 아이를 묻지 말라는 계시(啓示)이며 아이의 복(福)이라 생각하고, 아이와 돌종을 각기 업고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손순은 돌종을 처마에 달고 조석으로 두드렸다. 어느 날 흥덕왕이 서라벌을 둘러보는데, 서쪽에서 맑은 종소리가 들려와 마음이 가라앉고 즐거워지므로 그 행방을 알아보게 하였다. 돌종의 내력을 알고 손순의 효성에 크게 감복한 흥덕왕은 손순 부부에게 새 집과 해마다 벼를 50섬씩 내려 주었다. 이제 어머니를 공양하고 근심없이 살게 된 손순은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먼저 살던 오막살이집을 고쳐 홍효사(弘孝寺)를 만들었다.

손순은 효도로써 하늘이 내린 석종을 얻었다. 지극한 정성은 하늘을 감동케 한다는 의미다. 그에 마음의 종이 하늘에 울려 돌종을 얻었고, 돌종의 울림이 흥덕왕과 서라벌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정화한 것이다. 전설에는 뼈와 피가 튀는 감동과 인간의 애절한 영혼이 있다.

◆다양한 종 관람

전시장 코너마다 명칭과 실물이 잘 정비되어 있다. 한국 종은 대부분이 범종으로 신라 종, 고려 종, 조선 종으로 분류되어 일목요연하게 알아 볼 수 있다. 세계에는 인류 진화와 더불어 발전된 여러 가지 종이 있다. 세계의 종들을 구경한다. 작은 방울에서부터 아주 큰 종까지. 종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인류의 문화 역사를 읽고 들을 수 있다. 아직도 어디에선가 범종소리가 들린다. 종소리는 내 안으로 흘러 들어와 어릴 적 나의 상상을 자극하고 신화를 만들어주던 울림이 또 한 번 되살아난다. 치악산 상원사종은 은혜를 갚은 꿩과 뱀의 전설이 탄생한 종이다.

나는 종 이야기만 나오면, 한낱 미물인 꿩이 종에 머리를 부딪쳐 자기를 살려준 스님을 구하고 죽은 치악산 상원사 종소리가 들리는 환청에 시달린다. 어느 겨울 날 갑자기 이 종소리의 환청을 듣고 우리 부부는 승용차를 몰고 치악산 상원사로 가 기어코 상원사 종소리를 들었다. 그 종소리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꿩 날개의 무지개를 보았다.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우리는 은혜를 갚기 위해 종에 머리를 부딪친 꿩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희생·헌신·사랑·구원은 무엇이고 그것이 가능한가. 그런 구구한 물음에 ‘종’은 하나의 상징으로 답하고 있다. 이쯤 되면 종은 우리의 영혼이고 신앙일 것이다.

글= 김찬일<시인·대구 힐링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 김석 대우여행사 이사


☞여행정보

▶트레킹 코스 : 진천 종박물관
▶문의 : 진천 종박물관 (043)539-3847, (043)537-0548
▶내비 주소 : 충북 진천군 진천읍 백곡로 1504 - 12
▶주위 볼거리 : 농다리, 초평저수지 트레킹, 김유신 장군 생가지, 보탑사, 길상사, 백곡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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