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한반도의 봄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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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30   |  발행일 2018-04-30 제31면   |  수정 2018-04-30
[월요칼럼] 한반도의 봄
허석윤 논설위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건만 봄 같지 않다는 뜻이다. 중국 전한시대 절세미녀 왕소군의 가슴 아픈 사연을 읊은 시에서 유래된 말이지만, 요즘은 어려운 처지를 빗대는 표현으로 두루 쓰인다. 한민족에게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근대화에 뒤처진 원죄로 한 세기 넘게 수난의 굴레에서 못 벗어나고 있으니.

1910년 경술국치로 시작된 일제식민치하는 희망의 새싹조차 돋아나지 않던 민족의 빙하기였다. 다행히 일제의 패망으로 맞았던 광복, 그 기쁨도 잠시였다. 동족상잔의 6·25전쟁은 너무나 참혹한 결과를 낳았고 더구나 끝나지도 않았다. 허리가 끊긴 채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한반도. 이곳 삼천리강산에는 해마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건만 전쟁의 공포로 얼어붙은 한반도 정세는 그야말로 춘래불사춘인 셈이다.

하지만 올해의 봄은 다르다. 북한에서 훈풍 정도가 아니라 열풍이 불어오면서 꽁꽁 얼었던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해빙되고 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한반도 전쟁설이 나돌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전쟁 걱정이 아닌 평화와 공영을 노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렇게 쉽게 남북이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게 놀랍다.

4·27 남북정상회담은 말 그대로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었다. 과거 두 차례 정상회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미가 컸고 성과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들 때부터 성공적인 회담을 예감할 수 있었다. 남북정상이 내놓은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 평화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할 만하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이 기대감을 높인다. 물론 과거에 몇 번 뒤통수를 맞아본 적이 있기에 아직 완전히 믿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얼마 전 북한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노선 폐기를 천명했기에 이번엔 다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이 건국 이래 고수해왔던 국방(핵)·경제 병진노선에서 벗어나 오로지 경제발전의 길로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 빈말이 아니라면 실로 엄청난 변화를 예상해볼 수 있다. 북한의 핵 폐기가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아가 광범위한 분야에서 남북경제협력이 실현된다면 한반도는 더 이상 냉전지대가 아닌 동북아 최고의 번영지대가 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세간에선 “이러다가 통일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돈다. 하지만 너무 앞서나갈 필요는 없다. 여전히 통일로 가는 길에는 걸림돌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최대 5천조원에 달한다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통일 비용은 차치하더라도 국내외적으로 해결해야 할 난제가 한둘이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한반도에 진짜 봄이 왔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봄엔 황사나 미세먼지가 심하고 더러는 우박까지 내리지 않는가. 실제로 한반도의 해빙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로 인해 잃을 게 많거나 북한이 무작정 싫기 때문일 것이다. 그 최일선에 선 자유한국당은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홍준표 대표는 남북정상회담을 ‘위장 평화쇼’라고 폄훼했다. 나경원 의원은 판문점 선언에 대해 ‘어처구니없다’고 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실망스럽다’고 말을 살짝 바꿨다. 진짜 어처구니가 없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갈채를 보내고 있는데, 도대체 그들만 왜 그러는지.

지금 한반도는 역사의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대립과 분열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화합과 번영의 미래로 나아가는 출발점에 서있다.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일부 정치세력이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칫하면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뭉개질 수도 있음이다. 지금은 소모적인 이념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한반도 평화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 전 국민이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할 때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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