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청소년의 기도 VS 아버지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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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30 07:46  |  수정 2018-04-30 07:46  |  발행일 2018-04-30 제15면
[행복한 교육] 청소년의 기도 VS 아버지의 기도
김희숙 (대구 도원중 교감)

학부모역량강화교육 말미에 강사가 PPT를 띄우자, 어머니들의 가벼운 탄식과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청소년의 기도’라는 제목의 시(?)였다.

‘엄마가 나 없을 때 내 방에 들어오지 않게 해 주세요. 엄마가 나 몰래 핸드폰 열어보지 않게 해 주세요. 엄마가 친구들에게 나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지 않게 해주세요. 엄마가 시험공부 기간에 내 방에서 뜨개질하지 않게 해주세요. 엄마가 내 공부 들먹이며 아빠가 TV 보는 것 말리지 않게 해 주세요. … 엄마가 나한테 너 하나 보고 산다는 말 하지 않게 해 주세요. 무엇보다도 엄마가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게 해주세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씁쓸해했다. 사느라 바빴던 부모님, 많은 형제자매가 부대끼며 성장해서 부모의 나만을 향한 특별한 관심이 못내 아쉬웠던 세대가 이제 그 관심이 과도한 간섭이라며 거부하는 자녀의 부모가 되었다.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중2 학생들에게 물어봤더니 예상대로 핸드폰 들여다볼 때 가장 화가 난다고 했다. 그리고 대답하기 싫은데 꼬치꼬치 물으면 제일 싫다고 했다. 중학생 자녀를 둔 선생님들께 보였더니 “어휴~ 교감샘, 그런 소리 마세요. 뭘 좀 물으면 완전 단답형이고 두 번만 물어도 억양 변화 없이 ‘그냥’ 하면서 휙 나가버리거나 ‘아잇! 몰라’ ‘됐거든~ 신경 끄셩~’ 하며 정색을 해요”라 한다. 그리고 핸드폰 잠금 패턴도 얼마나 복잡한지 몇 번을 흘겨봐도 열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은 팔순 노모와 오십이 넘은 딸이 여전히 아웅다웅하는 대목이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맥아더 장군이 썼다고 알려진 ‘아버지의 기도’를 냉장고에 붙여놓은 적이 있었다.

‘내 아이가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 그를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이끌지 마시고, 자극받아 분발하도록 고난과 도전의 길로 인도하소서. 모진 비바람을 견뎌내게 하시고, 실패한 자를 긍휼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마음이 깨끗하고 높은 이상(理想)을 품은 사람… 그 애가 이런 사람이 되었을 때 저는 감히 그에게 속삭일 것입니다. 내가 인생을 결코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그러나 오늘 다시 보니 문장 하나하나가 엄청난 부담이다. 학교 젊은 선생님들도 혀를 내두른다. 특히 마지막 구절에 손사래를 쳤다.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큰 그릇’으로 키우고 싶은 바람은 이제 ‘그릇에 맞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는 왜 충돌하는가’를 쓴 스탠퍼드대 헤이즐 교수는 이러한 다양한 문화 속에 잘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고 말한다. 어떻게 바람직하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답으로 서양에서는 독립적인 삶을 살며 규범이나 전통,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동양, 한국에서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한 만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속한 사회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나라도 이미 서구적인 사고와 전통적 사고가 세대 간, 한 개인의 내면 가치에도 혼재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갑질 논란, 교실 붕괴도 이러한 가치 충돌의 결과다.

상호의존적인 문화 속 개인들은 뚜렷한 자아를 형성하지 않은 상태이거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에서도 갈등과 충돌은 ‘상황’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인식과 통찰이 여전히 부족하다.

이러한 인식을 높이려면 미래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결정할 학생 시기에 자율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절대적이다.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결정권이 주어졌을 때 스스로 판단,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힘이 생긴다. 나아가 더 좋은 선택을 위해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힘이 한 개인의 인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김희숙 (대구 도원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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