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영남오페라단 김귀자 단장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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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27   |  발행일 2018-04-27 제35면   |  수정 2018-05-09
“신여성 윤심덕의 대구 이야기, 창작오페라로 제대로 보여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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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오페라 70주년을 기념해 창작오페라 ‘윤심덕- 사의 찬미’를 제작하는 영남오페라단 김귀자 단장.

대한민국 최초의 소프라노였던 윤심덕(1897∼1926). 평양 출생으로 일본 우에노 음악학교 성악과에서 수업받은 예술인이었다. 1923년 귀국하자마자 서울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독창회를 가짐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로 데뷔했다. 이후로 윤심덕은 서울에서 열리는 많은 음악회에 등장했으며 일약 스타가 되었다. 제대로 성악을 공부한 사람이 드물었던 데다 풍부한 성량과 당당한 용모가 대중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1921년 동우회(同友會) 등의 순회극단에 참여하면서 극작가 김우진과 사랑에 빠졌고 유부남인 김우진과의 사랑은 그녀를 궁지로 몰고 갔다. 결국 26년 레코드 취입을 위해 일본에 다녀오다가 현해탄에서 김우진과 함께 투신자살했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사의 찬미’는 오늘까지 널리 불리고 있다. 윤심덕의 비극적 사랑은 그동안 영화·연극·뮤지컬 등으로 계속 만들어졌다. 하지만 성악가였는데도 불구하고 오페라로는 아직 제작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영남오페라단 김귀자 단장은 “아마 제가 만들어보라고 놔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 필생의 역작을 만들라는 신의 계시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창작오페라로 만들기 위해 준비를 했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 대구문화재단이 최대 1억원까지 지원하는 집중기획 지원에 영남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윤심덕- 사의 찬미’(이하 윤심덕)가 선정된 것이다. 김 단장은 “운이 좋아서”라고 했지만 그건 운만으로 뽑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좋은 작품이 제작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올가을 공연 예정인 윤심덕 제작에 한창인 김 단장을 만나봤다.

韓 첫 소프라노 윤심덕의 비극적 사랑
성악가 불구 오페라로는 안 만들어져
대구문화재단 지원 사업 선정돼 행운
여성예술인으로서 진취적인 삶 큰 울림

연인 김우진, 작곡가 홍난파 등과 우정
대구극장 공연에 맞춰 이야기 풀어가
오랜준비 기간 영남오페라단 제작 결실
극적사랑·독립운동 지원 교훈도 담아

성악가 30년 활동, 오페라 다양한 배역
한국·대구 초연작 많아…새로운 시도
취임 첫 작품 ‘박쥐’ 최정상급 캐스팅
재정적 어려움 많지만 최고작품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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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오페라단이 2010년 선보인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과 2015년 공연한 ‘리골레토’. 1987년 제작된 오페라 ‘토스카’에 주역으로 출연한 김귀자 단장. 상대 배역은  바리톤 김원경이다. (사진 위에서 부터 아래방향으로)

▶창작오페라 ‘윤심덕’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제가 아마 같은 여성성악가였기 때문에 그의 노래에, 삶에 더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경북여고 1학년때 성악공부를 시작해 60여 년간 음악가로 살아왔습니다. 그렇다보니 그녀의 삶 자체가 주는 울림이 아주 컸습니다. 저는 윤심덕을 ‘한국의 근대를 힘차고 당돌하게 열어나갔던 신여성’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나라 잃은 서러움과 억압된 사회제도 속에서 신지식인이자 여성예술인으로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의 인간적 고뇌·슬픔 등을 작품화하고 싶었습니다. 그녀 같은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예술인이 없었다면 저 같은 성악가, 나아가 예술인이 과연 지금처럼 예술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이런 예술적 터전을 마련해준 위대한 예술인 입니다.”

▶오페라 윤심덕은 윤심덕이란 인물과 네 남자가 이끌어가는 것으로 압니다.

“윤심덕과 함께 극의 주된 인물로 등장하는 이는 비극적 사랑을 나눴던 김우진입니다. 그 외에 작곡가 홍난파와 채동선, 연극연출가 홍해성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일본에서 같이 유학을 했는데 1921년 동우회 등의 순회극단과 함께 대구·목포 등에서 공연을 하면서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오페라 윤심덕은 윤심덕과 김우진의 사랑과 대구 대구좌(옛 대구극장)에서 열렸던 공연에 초점을 맞춰서 풀어나갑니다. 이런 구성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대구의 근대모습이 소개될 수밖에 없습니다.”

▶윤심덕이 평양사람이지만 대구의 이야기를 담아내려한 노력이 느껴집니다.

“대구를 소재로 삼아 전국, 나아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창작오페라 소재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1984년 창단된 영남오페라단은 그동안 36회의 정기공연을 펼쳤습니다. 1999년 호남오페라단과 합작으로 창작오페라 ‘녹두장군’을 만든 적이 있지만 영남오페라단 단독으로 제작한 창작오페라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제대로 된 창작오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고 오랫동안 준비해 이제야 결실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대구에 있는 오페라단인 만큼 대구의 역사, 대구사람의 정서를 녹여내는 이야기를 찾으려 했고 윤심덕이라는 매력적인 인물과 그가 대구에서 펼쳤던 공연이 제가 만들려했던 창작오페라의 방향과 딱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제대로 된 창작오페라를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는데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그동안 창작오페라가 간간이 제작되었지만 1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역을 넘어서 전국, 나아가 세계로까지 진출하기 위해서는 내용이 진실되면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극적인 요소도 있어야 하고 여기에 교훈적인 것까지 있으면 더 좋을 것입니다. 실제인물인 윤심덕은 세계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을 나누고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 극적인 요소도 가지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자금 마련을 위한 공연에 참여하는 등 교훈적인 이야기도 담겨져 있지요.”

▶성악가로도 오랫동안 활동하셨는데 오페라단을 이끌면서 자연스럽게 노래를 그만두셨습니다. 성악가, 오페라단장의 각기 다른 매력이 있었을 듯합니다.

“성악가로 30년 넘게 활동하면서 오페라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아봤습니다. 오페라 가수는 다양한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입니다. 이에 비해 오페라단장은 노래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무대에 올릴 수 있고 좋은 오페라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사실 김금환 초대 단장에 이어 1994년부터 2대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두 차례 무대에 오르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페라 제작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육체적·정신적으로 거의 고갈상태에 이르니 자연스럽게 소리가 목에서 나오질 않더군요. 그래서 무대 오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영남오페라단의 단장을 맡으면서 많은 작품을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한국 초연작과 대구 초연작이 많습니다.

“단장 취임 후 1995년 첫 작품으로 요한슈트라우스의 ‘박쥐’를 한국 초연했습니다. 98년에는 니콜라이의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 99년에는 장일남의 ‘녹두장군’, 2011년에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집시남작’을 한국 초연으로 선보였습니다. 2001년 베르디의 ‘오텔로’, 2008년 로시니의 ‘신데렐라’를 대구 초연했습니다. 사실 초연은 여러 가지로 힘이 듭니다. 익숙한 작품과 잘 알려진 작품의 공연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작품들을 시도함으로써 다양한 오페라를 보여주는 것도 오페라단의 큰 소임이라 생각했습니다.”

▶‘박쥐’가 한국 초연작인 데다 단장 취임 후 첫 작품이라 그런지 더 큰 애정을 가진 듯합니다.

“그 당시 박쥐를 제작하면서 연출자 초청, 주역캐스팅 등에서 파격을 보였습니다. 제가 직접 오스트리아 빈에 날아가 세계 최정상 연출자를 모셔왔습니다. 주역도 서울·부산 등에서 최고의 성악가들로 캐스팅했습니다. 지금은 해외·타지의 연출자와 성악가들의 초청이 보편화되었지만 그 당시는 쉽지가 않았습니다. 개런티 등에서 부담이 되었지만 성공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최고의 제작진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3일 3회 공연을 펼쳤는데 한국 초연작인데도 불구하고 마지막 공연은 매진이 되었습니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는 오페라 티켓이 매진되는 사례가 잘 없었습니다. 매표소 옆에 커다란 글씨로 ‘매진’이라는 글씨를 붙여놨던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지역에서 민간오페라단의 활동이 거의 없습니다. 민간오페라단 운영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남오페라단을 이렇게 오랫동안 이끌어온 비결이 궁금합니다.

“작품을 만드는데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성악가 등 인적인 부분은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니까요. 하지만 제작비 마련이 쉽지 않습니다. 오페라 한편을 제작하려면 최소 3억원은 있어야 하는데 재원 마련이 늘 고민입니다. 오페라단을 예술가가 운영하다보니 경영마인드가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예술을 지원해주는 후원자가 아직 너무 적습니다. 그래도 저는 복이 많습니다. 대학에서 교수로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부족한 부분을 대학(경북대 음악대학) 재직 시에는 월급, 현재는 연금 등으로 충당하고 있지요. 그리고 공연마다 형편이 좀 나은 동생들이 늘 후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어려울 때 누군가 귀인이 나타나 늘 도와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영남오페라단이 매년 작품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나눔을 실천하는 공연도 많이 해왔습니다.

“지역에서의 여러 도움으로 영남오페라단이 성장할 수 있었던 만큼 이를 지역에 환원하려는 노력을 펼쳐왔습니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영남일보가 주최한 ‘결식아동돕기 사랑의 음악회’는 물론 ‘이웃돕기 사랑의 음악회’로 2005년 라보엠 하이라이트, 2017년 오페라 하이라이트의 밤 등을 열었습니다.”

▶늘 최고의 작품을 지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민간오페라단이 재정적으로 힘든 것은 맞지만 늘 최고 수준의 작품을 만들고자 세계적인 지휘자와 연출자, 주역 캐스팅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영남오페라단은 대한민국오페라대상 금상, 대구국제오페라대상 특별상 등을 받았습니다. 이런 저력을 바탕으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격조 높은 오페라 ‘윤심덕’을 만들려 합니다. 영남오페라단의 36회 정기공연인 이번 작품은 대한민국오페라 70주년 기념오페라라는 데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의미깊은 해에 한국의 첫 소프라노였던 윤심덕을 영남오페라단이 선보이게 되어서 기쁩니다. 오페라 ‘불의 혼’ 등을 작곡한 진영민 경북대 교수, 뮤지컬 ‘왕의 나라’ 등을 쓴 김하나 대본가, 오페라 ‘나비부인’ 등을 연출한 정철원 연출가 등 최고의 제작진이 참여했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김귀자 영남오페라단 단장은 경북대 음악대학 교수,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조직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대구문화상, 금복예술문화상,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올해의 최우수예술인 수상과 옥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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