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국회의원질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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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26   |  발행일 2018-04-26 제31면   |  수정 2018-04-26

2015년 독일어 사전으로 유명한 랑겐샤이트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신조어 순위 투표를 했을 때 1위에 오른 단어가 ‘merkeln’였다. ‘메르켈하다’로 번역되는 이 동사는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의견을 내지 않는다’ 정도로 풀이된다. 평소 신중하고도 무미건조한 메르켈 독일 총리의 언행을 풍자한 표현이다. 우유부단하다는 비아냥도 내재된 말이어서 썩 좋은 의미는 아니다. ‘무바라크하다’는 2011년 이집트 국민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퇴진을 요구했는 데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지 않고 딴청을 피운 무바라크 대통령의 ‘눈치 없는 집착’을 빗댄 용어다.

우리나라에서 ‘∼스럽다’는 어법이 통용된 것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의 대화 이후 ‘검사스럽다’는 말이 유행하면서부터다. 국립국어원 신어(新語) 자료집에도 수록된 ‘검사스럽다’는 ‘행동이나 성격이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논리 없이 자기 주장만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스럽다’는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의 비상식적 언행을 빗댄 표현으로, ‘국회스럽다’도 예외가 아니다. 국어사전엔 ‘국회스럽다’를 ‘이전투구, 날치기 따위의 행태를 일삼는 경향이 있다’고 풀이해 놨다.

‘~질’은 ‘도구를 가지고 하는 일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또는 ‘직업·직책이나 행동을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풀무질, 가위질 등이 전자에 해당하고 도둑질, 강도질, 서방질, 선생질은 후자에 포함된다. 후자의 경우 훨씬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요즘 세간을 뜨겁게 달구는 단어 ‘갑질’도 물론 후자에 속한다. 한데 교사 전체를 모욕하는 듯한 선생질이란 말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굳이 직업에 ‘~질’이란 접미사를 붙인다면 국민 신뢰도가 가장 낮고 태업과 파업을 일삼는 국회의원이 적격이 아닐까 싶다.

국회는 국회스럽고 그 구성원은 ‘국회의원질’을 하고 있으니 의정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로 6월 지방선거와 개헌안 동시투표도 무산됐다. 오로지 정쟁에만 불을 켜고 있으니 민생법안 처리도 요원해 보인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국민소득 대비 세비는 OECD 국가 중 3위고 8명의 보좌진까지 거느린다. 걸핏하면 본업을 팽개치는 의원들이 이런 혜택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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