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김정은은 어느 쪽으로 동전을 던질 것인가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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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25   |  발행일 2018-04-25 제31면   |  수정 2022-04-2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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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53년생, 올해 만 65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84년생으로 알려져 있다. 34세다. 나이로 보면 더블 스코어, 아들뻘이다.

이들이 드디어 만난다. 27일 정상회담이다. 나이 차만큼이나 시각과 해석이 분분하다. 양극단에서 중간지대까지, 희망과 조롱이 교차한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미국 본토에 핵을 날려버리겠다던 김정은의 태도 변화에 대해 PD(인민민주주의) 계열 운동권 출신인 한 지인은 이렇게 표현했다. “북한의 전통적 수법인 ‘통일전선전술’에 불과하다”고. 위기에 몰릴 때, 나의 세력이 약할 때, 전선을 합치고 위장 협상에 나선 뒤 대세를 장악한다는 전술이다. 소수파 볼셰비키의 혁명 이래 줄기차게 적용되는 투쟁 방식이다.

정통 우파의 걱정은 더 심각하다. 서울대 정치학 교수였던 노재봉 전 국무총리는 “이 정부는 잘 훈련된 혁명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은 안락사 중에 있다.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한때 NL 계열 운동권에 몸담았다가 지금 문재인 정권의 청와대에 들어간 이들을 의식한 발언이다.

이건 고상한 진단이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또 속고 있다”는 조롱도 나온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북한 주민 수백만 명이 굶어죽고 무너지기 직전까지 갔던 정권을 살려준 사람이 DJ(김대중 전 대통령)이고 노무현이다. 문재인 정권이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회담, 2005년의 6자회담의 약속을 팽개치고 기어코 핵실험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남북 간 혹은 미북 간의 대화를 과거의 틀로만 바라볼 수는 없는 이유들이 있다.

먼저 대북(對北) 압박의 사전 정지작업으로 북한체제가 명백히 코너에 몰렸다. 트럼프가 그 중심에 있다. 트럼프는 미래 행동을 예측하기 힘든 인물이다. 그는 웜비어 사망으로 악화된 미국적 정서도 등에 업고 있다. UN의 전례 없는 대북 봉쇄조치는 김정은으로서는 굉장히 고통스럽다. 어쩌면 김정은은 자신의 친인척은 물론 핵심 추종자들에게 과거와 같은 보상을 하기 힘들 것이다. 그 보상은 고급 외제시계나 명품가방에서부터 달러와 생필품까지 걸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을 바라보는 문재인 정권의 시각도 역대 정권과는 다르다.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다. 그건 김정은에게 운이다. 더구나 문 정권은 집권 초반이다. 앞으로 남북 문제를 자신들의 신념으로 밀고 나갈 적지 않은 시간을 갖고 있다.

또 다른 측면은 지구촌 글로벌의 ‘시대 정신’이다. 좀 설명이 필요한데, 집약적으로 말하면 좌우, 자본주의 사회주의 논쟁을 넘어선 트렌드가 21세기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념이 아닌 돈을 놓고 싸우고 있다. 무역전쟁이다. 미제국주의와 싸운 베트남에는 미국의 항공모함까지 들어갔다. 북한도 베트남식으로 변하지 않으리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이번 대화에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저간에는 김정은이란 인물의 속성이 있다. 기업의 정체성이 CEO에서 판명나듯, 북한의 속내를 알려면 김정은의 성격, 자란 환경, 교육과정을 알아야 한다. 김 위원장은 스위스에서 국제학교를 다녔다. 스스로 흉내내는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소련(러시아) 말에 익숙한 것과는 정반대로 아마 미제국주의 언어, 영어를 잘 구사할 것으로 짐작된다. 그가 트럼프와 마주한다면 유리한 환경이다.

“핵·경제 병진 노선을 뒤로하고 경제에 집중하겠다는 김정은의 선언은 거짓 몸짓이나 연기 피우기가 아니라 어쩌면 의미심장한 변화일지도 모른다”(로버트 칼린 미국제안보협력센터 객원연구원)는 말처럼 김정은은 정말 전략적 변화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문 대통령을 만나 ‘통일을 여는 대통령이 되시라’고 한 말도 단순한 덕담이 아닐 수 있다. 세월이 흘러 김정은을 놓고 남한에서 인기투표를 할 상황이 안 온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트럼프의 트윗대로 이번 대화는 잘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동전의 양면성이다. 이제 동전은 던져졌다. 굳이 내기를 건다면 나는 남북 해빙의 시기를 맞을 것이란 데 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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