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법리로 재단할 수 없는 단수추천

  • 권혁식
  • |
  • 입력 2018-04-24   |  발행일 2018-04-24 제30면   |  수정 2018-04-24
[취재수첩] 법리로 재단할 수 없는 단수추천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자유한국당 대구·경북 기초단체장 공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번 한국당 대구시당·경북도당 공천 과정에서 ‘사천(私薦)’ 논란을 일으켰던 핵심에는 ‘3선 도전 현역 단체장 컷오프’와 ‘단수추천’이 있었다. 한국당 당규에 따르면 단수추천은 공천 신청자가 △한 명이거나 △한 명 빼고 나머지 후보가 모두 부적격자이든지 △한 명의 경쟁력이 월등히 높은 경우 등 3가지로 한정하고 있다.

경북에서 이뤄진 단수추천 9곳은 대체로 이 조항들 중 하나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 9곳 중 7곳(포항시장, 청도·고령·칠곡·군위·의성·영덕군수)은 단수추천 후보가 현역 단체장이니 경쟁력이 월등히 높을 수 있다. 나머지 2곳(문경시장, 울릉군수)도 우여곡절 끝에 공천 신청자가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대구시당 공관위에서 추진된 단수추천은 논란의 소지가 많다. 8곳 중 5곳(중·남·서·북구, 달성군)에서 단수추천이 확정됐고, 동구에서도 당초 단수추천이었다가 지금은 경선이 추진 중이다. 이 중 서구와 북구는 신청자가 현역 단체장 한 명뿐이었으니 근거가 확실하고, 중구도 현역 시의원이니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남구와 동구, 달성군의 단수추천은 당규상 어느 조항에 해당되는지 분명치 않다는 지적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3곳은 단수추천 뒤 공천 탈락자들이 강하게 반발했던 지역과 일치한다. 그런 면에서 현재 진행형인 동구의 단수추천 후유증은 당규를 떠나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게 필요하다. 김상훈 대구시당 공관위원장은 공천 초기에 “공관위는 말 그대로 공천을 관리하는 곳이며, 해당 당협위원장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요지로 운영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단수추천도 이에 근거해 바라보면 의문이 풀린다. 동구의 경우 정종섭 의원(동구갑)의 의사를 존중해 단수추천을 의결했다가 뒤늦게 이재만 당협위원장(동구을)이 경선을 요구하자, 김 위원장은 “전제가 흐트러진 부분이 있다”면서 경선으로 선회한 셈이다. 어쨌든 공관위가 입장을 번복했으니 그에 따른 비판은 불가피하지만, 나름대로 원칙에 충실하려 했던 김 위원장의 고충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경선 실시’ 방침에 즉각 “수용 못 한다”고 입장문을 내며 반발했던 정종섭 의원으로선 결과적으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게 됐다. 정 의원은 “당헌·당규 절차에 따라 적법하고 정당하게 단수추천된 동구청장 후보자 공천”이라며 경선을 강하게 반대했지만 현실적으로 경선은 실시되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헌법학자 출신으로서 법리를 앞세웠지만, 현실 정치에선 법리로써 재단(裁斷)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본인이 특정후보를 단수추천한 것도 정치적 결단이었지만, 탈락 후보자들의 반발을 무마하지 못한 것은 정치력 부재에 해당된다. 게다가 ‘결국에는 경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미리 간파하고 “당의 입장을 고려해 경선을 수용하겠다”는 대승적인 입장문을 내지 못한 정치력에는 아쉬울 따름이다.

권혁식기자 (서울취재본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