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진실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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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23 07:35  |  수정 2018-04-23 07:35  |  발행일 2018-04-23 제22면
[문화산책] 진실된 이야기
김주원<대구미술관 전 학예연구실장>

서점이나 도서관 서고에 꽂힌 ‘오리지널 미술작품’으로서의 ‘책’을 구입한 컬렉터가 있을까? 음악, 웹, 출판 같은 비미술 형식이 사전적인 의미의 회화, 조각 같은 미술형식의 하나가 된 지는 꽤 오래되었다. 미술과 비미술 형식의 다양한 스펙트럼 사이를 오가는 요즘의 미술가에게 갤러리가 아닌 서점, 도서관, 개인의 서가 등은 이제 자신의 오리지널 작품이 전시되고 일반 대중과 만나는 중요한 장소 중의 하나다.

설치미술가, 개념미술가, 사진작가 등으로 알려진 프랑스 작가 소피 칼의 자전적 에세이 ‘진실된 이야기’는 대표적인 예다. 자신이 찍은 사진과 그 사진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은, 소피 칼이 소녀시절이던 아홉 살 때부터 마흔아홉 살 중년까지의 그녀의 삶이 담겨 있다. 책에 소개된 어린 시절은 물론 열다섯 처녀 시절 식당에서 먹었던 디저트와 얽힌 이야기,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이별하는 등의 지극히 사적인 소피 칼의 일상과 삶에 관한 이야기는 빨간 구두, 목욕 가운, 하이힐, 연애편지, 침대, 넥타이, 커피잔 등의 사진 이미지와 함께 호소력 있게 제시된다. ‘진실된’이라는 전제가 붙은 소피 칼의 ‘진실된 이야기’는 1994년 초판 출간 당시 미술계에 깊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것은 출판이라는 비미술 형식의 미술작품이라는 사실과 ‘허구’를 기반으로 하는 문학적 형식의 채택 때문이었다. 자신의 ‘진실된 이야기’가 허구 혹은 거짓이 아닌 진실임을 증명하기 위한 소피 칼의 아이디어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진실된 이야기’를 두고 아직도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밝혀내고자 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한 이미지에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이야기를 덧붙임으로써, ‘이미지’가 보여주는 진실과 거짓의 정체, 그 모호한 현실을 가시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진실된 이야기’에서 소피 칼은 사진 이미지와 허구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몸과 일상을 하나의 ‘작품’으로 스스로 전환시키고 있다. 더불어 자신의 존재를 주체에서 객체, 자아에서 ‘타자’로 바꿔놓고 책 읽는 독자로 하여금 진실과 거짓의 모호함을 직시하게 한다.

우리에게 진실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사건’이 누구에겐 진실이지만 누구에겐 거짓 혹은 허구일 수 있을까? 내 서가에 꽂혀있는 소피 칼의 작품 ‘진실된 이야기’를 보면서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오간다. 내 일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 나에겐 진실이지만 나 아닌 다른 이에겐 거짓일 수도 있는…. 소피 칼을 통해, 나 아닌 다른 사람, 그의 입장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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