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영화배우 최은희 영면에 들다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8-04-20   |  발행일 2018-04-20 제43면   |  수정 2018-04-20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이 영화였다”
20180420
20180420

영화배우 최은희 선생님이 지난 16일 오후 돌아가셨다. 향년 92세. 선생님은 남편이자 평생의 동지였던 신상옥 감독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건강이 나빠지면서 한동안 서울 미아리에 위치한 요양병원과 용인의 요양병원을 옮겨가며 투병생활을 해왔단다. 2016년부터 장남이기도 한 신정균 감독이 자신이 사는 화곡동 집과 가까운 곳에 선생님을 모시고 간병을 해왔다고. 16일에도 병원에 신장투석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1950~60년대에 영화배우 김지미·엄앵란과 함께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떠올랐던 최은희 선생님은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연기 데뷔는 영화가 아니라 연극이 먼저였다. 1942년 연극 ‘청춘극장’을 시작으로 연극 무대를 누비던 선생님은 1947년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에 처음 등장했다. 1953년 한국 명승지의 특이한 풍물들을 소개하면서 그 명승지와 관련된 고사를 극화하여 삽입한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처음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1954년 결혼한 후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함께 이끌었다. ‘꿈’(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로맨스 빠빠’(1960), ‘백사부인’(1960), ‘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로맨스 그레이’(1963) 같은 영화에 1976년까지 무려 130여 편에 출연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신상옥 감독과 함께한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으로 대종상영화제의 전신인 문교부 주최 제1회 국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1970년대까지 130여편의 영화 출연
신상옥 감독과 운명적 사랑과 결혼
韓 세번째 여성감독·후진양성 활약

78년 北납치, 신 감독과 북한서 재회
北 영화 ‘사랑 사랑…’등 17편 제작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86년 美 망명…10여년만에 영구 귀국

납치·사랑·이별·재회, 놀라운 스토리
英감독 만든 다큐영화‘연인과 독재자’
베를린 등 세계 영화제에 연이어 초청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최은희 선생님은 한국 영화사에서 세 번째 여성 감독이기도 했다.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을 연출했는데, 연출과 배우를 겸한 ‘민며느리’로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또 수상했다. 1967년에는 안양영화예술학교의 교장을 맡아 영화계 후진 양성에도 열정을 쏟았던 선생님은 신 감독님과 이혼한 후 1978년 1월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를 당한다. 이후 신 감독님 역시 같은 해 7월 납북돼 5년 후인 1983년 북한에서 재회한다. 이후 이 두 사람은 북한에서 신필름영화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 ‘사랑 사랑 내 사랑’(1984)을 포함해 모두 17편의 영화를 만든다. 선생님은 북한에서 만든 영화 ‘소금’(1985)으로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하는데 이것은 한국인이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한 최초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런 활동으로 고(故) 김정일 위원장의 신뢰를 얻은 두 사람은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하던 가운데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한다. 이후 10년 넘는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우리나라로 영구 귀국했다.

이후 최은희 선생님은 2001년 극단 ‘신협’의 대표로 취임해 2002년 뮤지컬 ‘크레이지 포 유’의 기획과 제작을 맡기도 했다. 2006년 4월11일 신상옥 감독님을 떠나보내고 난 후 허리 수술을 받으면서 건강이 악화되었고, 잘 알려진 것처럼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받아왔다. 2007년 11월에는 자신의 영화 인생을 담은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을 펴내는데, 석 달 전인 8월에 같은 출판사에서 신 감독님의 유고집 ‘난, 영화였다’가 나오기도 했다.

최은희 선생님의 생애 가운데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북한 납치 사건은 2016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특이하게도 한국인이 아닌 영국인이 감독을 맡아 더욱 화제가 되었다. 2016년 1월 제32회 선댄스영화제 월드 시네마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을 통해 공개된 ‘연인과 독재자’는 “상상을 초월한 영화계의 실화가 매혹적인 영화로 탄생했다”(The Hollywood Reporter), “굉장히 놀라운 이야기 그 자체”(The Guardian), “70년대 스릴러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전개”(Indiewire), “납치, 사랑, 이별, 그리고 재회에 대한 강렬한 드라마”(Consequence of Sound), “소름 끼치도록 놀라운 이야기”(Screen Daily), “영화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고도 놀라운 사건에 대한 이야기에 사로잡힌다”(Variety) 같은 호평을 받으며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70회 에든버러국제영화제, 제65회 멜버른국제영화제, 제42회 시애틀국제영화제, 제40회 클리블랜드국제영화제, 제36회 하와이국제영화제 같은 유수의 영화제에 연이어 초청되었다.

연출을 맡은 로버트 캐넌과 로스 아담 감독은 “이 사건에 대해 들었을 때 이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왜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다”며 이 세기의 납치 사건을 이방인의 눈으로 어떤 정치적인 의도나 사적인 감정 대신 오직 진실을 전달하는 것과 위트있는 연출에 집중했다. 이들 덕에 신상옥 감독님과 최은희 선생님의 로맨스부터 북한으로의 납치, 그리고 목숨을 건 탈출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늦게나마 볼 수 있게 되어 여간 반갑지 않았다. 특히 실종 이후 여러 루머에 휩싸였던 신 감독님의 납북에 대한 진실이 김정일 위원장의 육성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영화 자체로도 흥미진진한 순간이었다. 아직 이 이색적인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은 늦었지만 꼭 찾아보시라.

은막(銀幕, silver screen)은 극장용으로 쓰이는 반사율이 높은 금속 스크린을 뜻하는 말이다. ‘은막의 여왕’이란 수식어는 오롯이 최은희 선생님의 것이다. 선생님만큼 그 말이 어울리는 한국의 여배우를 나는 알지 못한다. 신상옥 감독님이 돌아가신 것도 12년 전인 2006년 4월이었다. 최 선생님이 신 감독님과 재회하셨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다시 만난 이후 두 번째가 되려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다 가신 두 분, 부디 그곳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오래도록 행복하시기를. 최은희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