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충남 당진(하) ‘솔뫼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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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20   |  발행일 2018-04-20 제36면   |  수정 2018-04-20
韓 최초 사제 김대건, 그의 생가 마당에 앉아 계시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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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생가. 2004년 고증을 통해 안채를 복원했으며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기념한 동상이 있다.
아낙들은 통통한 흙 포대와 나란히 가로수 밑동에 앉아 작은 몸짓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아마 밑동의 흙을 토닥토닥 북돋워주는 거겠지. 부푼 땅을 야무지게 단속하는 거겠지. 그러고 보니 참 신기하다. 가로수가 소나무라니. 아, 그러고 보니 어쩌면 당연한 거겠다. 여기는 송산리(松山里) 혹은 솔뫼, 마을 이름이 소나무 산이다.

내포평야 한복판 소나무 빽빽한 야산 ‘솔뫼’
김대건 신부 태어난 곳, 집안에 순교자만 11명
솔숲 성지 야외성당 백색의 12 사도상 둘러서
기념관에 신부 뼈·머리감싼 베·머리카락 보관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기도처 성모의집
솔뫼·합덕성당·신리성지13.4㎞ ‘버그내 순례길’
서양선교사들 신앙 활동 꽃피웠던 평온의 길


◆ 소나무 산, 솔뫼

합덕읍의 북쪽에 위치한 송산리는 광활한 내포평야의 한복판이다. 주변으로 꼬챙이들, 보암들, 중부들이 낮고 평평한데 그 가운데 소나무 빽빽한 구릉성 야산이 봉긋해 솔뫼라 했다. 솔뫼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이 태어났다. 그의 가문이 내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0대 선조인 김의현이 아산 현감을 역임하면서다. 충청병마절도사를 지낸 9대 선조 김의직은 임진왜란의 전훈으로 토지를 얻게 되었고, 사헌부감찰과 통훈대부를 지낸 8대 선조 김수완 때부터 김대건의 가문은 솔뫼에 살았다.

1784년경 김대건의 백조부 김종현과 조부 김택현이 천주교에 입교하고, 이듬해 증조부 김진후가 입교하면서 가문 전체가 천주교에 귀의하게 된다. 1821년 8월21일 김대건이 태어났을 때는 증조부 김진후와 종조부 김종한이 이미 순교한 뒤였다. 가세는 기울었고, 박해는 끝나지 않았다. 조부는 어린 손자를 데리고 솔뫼를 떠났다. 김대건이 7세 무렵이다. 이후 아버지 김제준이 1839년 기해박해로 참수되었고, 당고모인 김 데레사가 1840년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 집안에서만 11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김대건 신부는 1846년 서울 한강변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언도받고 순교하였다. 25세였다. 소나무 산, 솔뫼는 성지다. 1906년부터 합덕본당에서 솔뫼를 성역화하기 위한 토지매입을 시작했다고 한다. 1946년에는 김대건 신부 복자비(福者碑)를 세웠다. 순교 100년의 해였다. 성지는 1만 평이 넘는다. 굼실굼실 차갑게 솟은 소나무들이 가득하다. 200년이 넘은 소나무가 80여 그루, 300년 이상 된 소나무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 솔숲의 가장자리를 따라 김대건 신부의 생가, 기념관과 성당, 야외성당, 성모경당 등이 자리한다.

◆ 솔뫼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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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 입구. 성지는 현재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으로 국가 지정 문화재 사적 제529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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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숲 사이 ‘십자가의 길’. 주요 14처가 브론즈 환조 작품으로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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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을 푸시는 성모님의 집’.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아담한 기도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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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앞에 높이 솟은 십자가.



성지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야외성당이 보인다. 그리스 신전의 조각들처럼 백색의 12사도상이 둘러서 있어 푸른 솔숲에서 단연 도드라진다. 이곳에서 야외 미사를 봉헌하고 음악회나 연극 공연도 열린다. 오른쪽에는 성당과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에는 그의 아래턱 뼈, 시신의 머리를 감쌌던 베와 그 베에 묻어난 머리카락, 그리고 무덤을 덮었던 횡대 조각이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친필 서한과 일기, 직접 그린 조선전도, 초상화, 유골을 바탕으로 복원된 흉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서한은 라틴어로 쓰여 있는데 지면을 여백 없이 빼곡하게 메운 작은 글씨가 매우 아름답다.

안내판에는 없는 건물 하나가 기념관 옆에 있다. 입구 안내실 뒤쪽이라 꽁꽁 숨은 모양새다. 건물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3주년을 맞아 2017년에 지은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의 집’이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너무나 아름다운 아담한 기도처로 세상의 모든 매듭진 일들을 풀게 해달라고, 풀겠다고, 기도를 바치는 곳이다. 두 분 수녀님이 기도를 하고 계신다. 기둥처럼 서서 숨 쉬는 것도 잊었다.

야외성당 맞은편에는 십자가가 높이 서 있다. 그 뒤로‘십자가의 길’이 이어지지만, 우선 저 멀리 보이는 한옥으로 향한다. 김대건 신부의 생가다. 집을 떠난 후 김대건은 15세 때 마카오로 가 신학을 공부했다. 24세에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1년 만에 순교했다. 그는 1949년 한국 성직자들의 주보성인이 되었고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집은 오래전 사라졌지만 고증을 통해 2004년 복원했다. 2014년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을 다녀가셨다. 집 마당에 교황이 앉아 계신다. 마루에는 성 김대건의 초상이 걸려 있다.

생가 뒤쪽 솔숲 속에 김대건 신부의 성상이 서 있다. 성지의 가장 안쪽이다. 거기서부터 ‘십자가의 길’을 역으로 돌아 나온다. 예수께서 재판을 받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십자가 처형에 이르는 길이다. 길은 솔숲 사이에 할퀸 벼락처럼 놓여 있고 첫 번째 쓰러진 곳, 두 번째 쓰러진 곳, 십자가에 못 박힌 곳 등 주요 14처가 그로테스크한 브론즈 환조 작품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다시 높이 솟은 십자가로 돌아온다. 기도하는 상들이 있다. 소나무 가로수 밑동을 토닥이는 아낙을 생각한다. 십자가 선 돌무더기에 작은 꽃다발 하나가 놓여 있다. 꽃은 말랐으나 빛깔을 잃지 않았다.

◆ 버그내 순례길


당진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태어난 곳이며 내포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의 탄생지이자 활동지였다. 또한 삽교천의 물줄기를 따라 서양 선교사들이 첫 발걸음을 내딛고 신앙 활동을 꽃피웠던 지역이다. 이곳에 한국천주교회 초창기부터 이용됐던 순교자의 길이 있다. 그것이 현재 솔뫼성지에서 합덕성당을 거쳐 신리성지까지 주요 성역을 이은 13.4㎞의 ‘버그내 순례길’이다. 삽교천을 한자로 범근내, 범근천, 범천 등으로 기록했는데, 후에 범근천(泛斤川)을 이두식으로 표현한 것이 ‘버그내’다. 순례길 곳곳에는 보행도로와 이정표, 편의 시설 등이 설치돼 있다. 합덕시장과 합덕제 등을 지나고 무엇보다도 내포평야와 함께하는 먹먹한 평온의 길이다. 버그내 순례길은 ‘2016 대한민국 국토경관디자인대전’에서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장상, ‘2016 아시아도시경관상’을 받았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으로 가다 회덕분기점에서 30번 대전당진고속도로를 탄다. 고덕IC로 나가 40번 도로를 타고 합덕 방향으로 간다. 운곡네거리에서 615번 지방도 남부로를 타고 가다 소소네거리에서 우회전해 70번 도로를 타고 가면 된다. 성지 개방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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