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진의 정치풍경] 지역주의와 한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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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19   |  발행일 2018-04-19 제30면   |  수정 2018-04-19
한국 정치의 지독한 병폐
영·호남 지역주의에 이은
제2, 제3의 변종까지 탄생
여야 정치인 어느 누구도
문제 제기하는 사람 없어
[차명진의 정치풍경] 지역주의와 한국 정치

30년 전 필자가 업무차 대구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동대구역에 내려 인근의 식당에 들렀습니다. 김치찌개를 시켰더니 인심 좋게 생긴 주인아주머니가 하얀 밥을 고봉으로 얹어주면서 더 먹고 싶으면 말하라 하십니다. 한 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식탁을 돌며 껌을 파는데 주인이 대뜸 “어느 회사 겁니까?” 물었습니다. 껌 장수가 “H요.”라고 답하자 주인은 “나가소. 그 동네 가서 장사할 것이지, 와 여까지 와서 그라노.” 야멸차게 내쫓았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 껌 시장은 H 와 L 두 회사가 양분하고 있었는데 둘 다 본사가 서울에 있고 껌 맛도 별 차이가 없었는데 탄생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각각 특정 지역의 대표 브랜드가 되어 버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념과 세대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지역주의가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변수입니다. 민주화 역시 지역주의를 약화시키기는커녕 강화시켰습니다. 권력을 잡은 세력이 요직을 싹쓸이하고 반대편이 밀려나는 일이 되풀이되다 보니 지역 간 반목과 대립이 심화됐습니다. 한 술 더 떠서 영호남 지역주의에 이은 제2, 제3의 변종까지 탄생했습니다. 지역정서가 약했던 충청도민들이 똘똘 뭉쳐서 타 지역과 합종연횡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지방의 저발전이 심각해지다보니 지방연합 대 수도권의 대립도 심해집니다. 과거에는 지방 출신이 서울에서 출세한 이후에 지역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돌아오면 쌍수를 들어 환영받았습니다. 지금은 반대입니다. 출향 인사는 고향의 대표자로 인정받기 위해 상당 기간 현지 적응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수도권에 사는 지방출신 사이에도 출신 고향에 따른 대립과 반목이 상당합니다. 선거 때가 되면 정당보다 향우회가 더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6·13 지방선거가 다가오자 지역주의가 다시 고개를 내밉니다. 지역주의는 한국정치의 지독한 병폐입니다. 유권자의 눈을 멀게 해서 유능하고 깨끗한 사람을 찾을 수 없게 만듭니다. 안타깝게도 여야 정치인 중 누구도 지역주의의 병폐를 정면으로 문제 제기하지 않고 오히려 이용할 뿐입니다. 시사만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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