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先私後黨(선사후당)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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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18   |  발행일 2018-04-18 제30면   |  수정 2018-04-18
6·13 지방선거 TK 공천
국회의원 입맛 따른 사천
결과 뒤집히는 사태까지
정치인이 못 가려냈다면
유권자 눈으로 심판해야
[동대구로에서] 先私後黨(선사후당)
임성수 정치부장

‘선당후사(先黨後私)’.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사사로운 자신의 이익보단 국민을 위해 소속 당(黨)을 먼저 생각하고 희생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 공천 과정에서 대구·경북(TK)지역 정치인들에게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역구 당협위원장(국회의원 등)이 지방선거 공천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책임공천’을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강조하면서, 한국당 대구시당·경북도당 공천관리위원회는 말 그대로 공천을 관리하는 기구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대신,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의견은 공천 결과와 궤를 같이했다.

“○○○ 의원은 절대로 ○○○ 후보를 공천하지 않을 것이다” “○○○ 의원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시의원 경선을 하겠지만 자기 사람에게 공천을 준다더라” “○○구(區)에서 ○○○ 의원은 누구를 밀고, ○○○ 의원은 누구만은 공천에서 배제시키려고 할 것이다” “○○○ 의원은 ○○○ 후보에게 공천을 주고 싶었는데, 후보자격 심사에서 문제가 생겨 마지막까지 결정을 못했다고 하더라” 등의 소문이 실제 공천 결과로 나타나면서, 공천에 탈락한 후보들을 중심으로 ‘공천(公薦)이 아닌 사천(私薦)’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단수추천(전략)으로 공천에서 탈락한 일부 후보들은 중앙당 공관위에 재심을 요청하는가 하면, 급기야 공관위 공식 발표가 없었음에도 ‘중앙당과 홍준표 대표가 움직였고, 다시 경선의 기회가 주어졌다’라는 문자메시지가 나도는 상황까지 연출되며, 경선 과정에 혼란을 빚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도 공천을 사천화하려는 정치인들의 민낯은 여실히 드러났다. 두 명의 당협위원장(국회의원 포함)이 있는 이 지역에서는 구청장 공천을 두고 당초 대구시장 경선에 나선 A당협위원장이 공천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고, 이에 B당협위원장이 대구시당 공관위와 협의를 거쳐 단수추천으로 한 후보를 공천했다. 하지만 한국당 대구시장 경선이 끝난 뒤 공천에 관여하지 않겠다던 A당협위원장이 중앙당 공관위에 ‘경선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전하면서, 경선을 통한 재공천 문제가 불거졌다. 전략공천으로 후보를 결정한 B당협위원장 또한 낙천 후보들의 탈락 이유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대구뿐만 아니라 경북에서도 사천(私薦)으로 의심되는 공천 결과가 나타나면서, 한국당 경북도당 당사는 연일 점거 당하는 사태가 이어졌고 낙천 후보 지지자들의 단식농성까지 벌어지고 있다.

공천 작업에 관여하는 인사들은 “잘된 공천보다 잘못된 공천이란 말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공천을 받는 후보보다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가 더 많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얼핏 듣기엔 틀린 말도 아닌 듯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공천이라면 적어도 대부분의 후보나 지지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보편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공천(公薦)에 사심(私心)이 포함돼서는 안 된다.

중세 이전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를 표현한 조각상들을 보면 한 손에는 법의 힘을 상징하는 검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법의 엄격함을 상징하는 천칭을 들고 있다. 중세 이후에는 상징성이 하나 더 추가됐다. 바로 법의 공정함을 상징하는 눈가리개다.

19세기 초 미국 세인트루이스 지방법원의 판사였던 제임스 허킨스는 특이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흰 헝겊으로 눈을 가린 채 경비원을 따라 법정에 들어섰고 판결을 마치는 순간까지 헝겊을 풀지 않았다. 처음엔 그를 시각장애인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첫 재판에서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공정한 판결을 내렸고 퇴장한 후 법원을 나갈 때는 헝겊을 풀고 경비원의 도움 없이 멀쩡히 걸어 나갔다. 재판할 때 눈을 가린 이유는 원고나 피고 혹은 증인 중 아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도 모르게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6·13 지방선거 각 정당의 공천은 마무리돼 가지만, 본 선거는 아직 50여일이나 남았다. 자신의 눈을 마음으로 가릴 수 있는 지역 정치인이 없다면, 제대로 된 일꾼을 뽑는 일은 이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유권자들의 몫으로 남게 됐다.
임성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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