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자연에서 배우는 배려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8-04-16 07:47  |  수정 2018-04-16 07:48  |  발행일 2018-04-16 제18면
“서로 양보·배려하는 자연처럼 우리도 어울려 살아가요”
20180416

봄비가 내렸습니다. 온 세상이 힘을 얻은 듯 꿈틀거립니다.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와 벚꽃이 예쁜 꽃망울을 준비할 때도 게으름뱅이마냥 겨울모습 그대로 높이 서 있던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같이 키 큰 나무들도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지 끝에서 아주 옅게 노란색을 내보이더니 제법 짙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작고 노란 잎을 달고 봄바람에 일렁일렁하는 모습이 아주 의젓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의젓한 키 큰 나무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쥐똥나무, 때죽나무, 보리수나무, 찔레나무, 화살나무와 같은 고만고만한 키를 가진 떨기나무들은 벌써 잎을 다 피웠습니다. 키 큰 나무 아래에 있는 진달래는 분홍꽃을 다 피웠고요. 그래서 지금 산은 푸른 잎을 다 피운 키 작은 떨기나무들과 이제 막 노랗게 잎을 피우기 시작한 키 큰 교목들로 2층 구조가 확실하게 이뤄져 있습니다.

이상하고 신기하지 않나요? 어째서 봄 햇빛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키 큰 교목이 아랫자리에서 햇빛을 받기 어려운 떨기나무들보다 잎을 더 늦게 피울까요? 게을러서 그럴까요? 감각이 둔해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자연의 조화입니다. 우리가 자연에게 배워야 할 양보와 배려입니다.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나무들이 만들어낸 양보와 배려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한 번 들어보세요.


“모두 자기 자리서 행복할 권리있어
타인 따돌리고 괴롭히는 일 없어야”



산에 가서 봄에 나무들이 잎을 피우는 차례를 보면 어김없이 키 큰 나무 아래에 있는 떨기나무들이 잎을 먼저 피웁니다. 떨기나무들이 키 큰 나무 아래에서 파릇파릇 잎을 피우고 있을 때도 상수리나무나 아까시나무 같은 키 큰 나무는 마치 봄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이 가만히 있습니다. 기다려주고 있는 거지요. 잎을 피우지 않은 앙상한 가지 사이로 햇빛을 받아 아래에 있는 떨기나무들이 먼저 잎을 피우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다가 키 작은 떨기나무 종류가 어느 정도 잎을 피웠다 싶으면 그제야 뒤늦게 가지 끝에서부터 천천히 잎을 피웁니다.

놀랍지 않나요? 만약 그 반대 차례로 잎을 피운다면 숲속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키 작은 떨기나무들이 잎을 피우기도 전에 키 큰 교목들이 욕심 부려 먼저 잎을 피워버린다면 그 잎에 햇빛이 가려서 나무 아래에 있는 키 작고 힘 적은 떨기나무들은 그만 잎을 피우지 못하게 되고 말겁니다. 꽃도 피우지 못하고 열매도 맺지 못하여 죽고 말겁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약한 작은 나무에도 나누어 주어 함께 살아가는 모습 아름답지 않나요?

“형 고마워요. 늘 이렇게 챙겨줘서.”

“고맙기는 뭐가 고마워. 그런 생각하지 말고 잎이나 열심히 피워.”

“알았어요. 형들이 있어 든든해요.”

“나도 너희들이 있어 좋아.”

봄이 가득한 산과 들에는 나무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나 않을까요? 움직이지도 못하는 나무들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느냐고요? 목숨을 다투는 일을 두고도 이렇게 통 큰 양보와 배려를 하는 나무들이고 보면 그 정도 소통은 충분히 하면서 살 것 같지 않나요? 다만 우리가 못 들을 뿐이 아닐까요? 생각이 없고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양보와 배려를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봄이 되었는데도 겨울모습 그대로 서 있는 키 큰 나무를 보고 게을러서 그러하다거나 감각이 둔하여 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거나 하면서 흉보지는 마세요. ‘이야! 힘 약하고 어린 것들을 위해서 의젓하게 기다려주고 있구나! 정말 훌륭해!’ 그러면서 쓰다듬어 주고 칭찬해주세요. 그리고 인정해주세요. 나무들이 좋아할 겁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식물이 사는 세상에서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우는 꽃나무든 작고 보잘것없는 길가에 난 풀이든 모두가 다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날아다니는 새는 멋있고 행복하게 살고, 어두운 땅 속에 사는 지렁이와 두더지는 불행하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닙니다. 모두가 자기가 있는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가 어울려 살아가는 게 바로 아름다운 자연입니다.

사람은 어떨까요?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은 더더욱 양보와 배려로 아름답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키가 크든 작든, 얼굴이 검든 희든, 여자든 남자든, 장애가 있든 없든,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모두가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남의 이 행복할 권리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가끔 그러지 못한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기도 합니다. 같은 학교에서 친하게 공부를 하던 아이들이 집단으로 한 아이를 따돌리고 괴롭혀서 결국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했다는 우울한 소식 말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남을 괴롭힐 권리가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괴롭히는 일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할 일은 결코 아닙니다. 이런 일은 짐승도 하지 않고, 식물들도 하지 않습니다.

따뜻한 봄날입니다. 산과 들로 나가서 식물들이 서로 도와 울긋불긋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걸 한 번 보세요. 그러면서 힘차게 터져 나오는 새싹들도 보세요. 가슴이 뭉클해질지도 몰라요.

윤태규 (전 동평초등 교장·동화작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