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나는 참꽃의 향기가 보여요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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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16 07:42  |  수정 2018-04-16 07:49  |  발행일 2018-04-16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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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봄은 참 짧습니다. 그리고 이제 조금 지나면 ‘대프리카’라 불리는 열정적인 대구의 여름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래서 미세먼지와 황사로 힘들었지만 지난 며칠은 꽃구경도 하면서 겨울을 이겨낸 봄을 즐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맘때면 항상 떠오르는 시는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로 시작하는 시인 이병기의 ‘낙화’란 시입니다. 향기박사가 이 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구는 ‘분분한 낙화…’란 표현입니다. 진하진 않지만 향을 흘리며 눈처럼 흩날리는 꽃잎은 너무나 아쉽게 떠나가는 봄의 눈물 같기도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런 흩날리는 꽃잎의 향기를 맡으면서 색이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은 없는가요? 사실 드물지만 향기를 맡으면 색이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소리를 들으면 색채를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린 이러한 현상을 공감각(共感覺, synesthesia)이라 합니다. 공감각은 한 감각이 다른 감각과 서로 뒤섞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즉 눈으로 색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귀로 음악을 듣는데 어떤 색이 보이는 현상이죠.

이런 특이한 현상은 드라마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국민드라마였던 ‘대장금’에서 장금이의 스승인 한 상궁은 장금이에게 ‘너는 맛을 그리는 재주가 있다’고 합니다. 즉 장금이는 혀로 감지한 음식의 맛을 뇌 속에서 미각이 아니라 시각으로 처리하는 능력을 가진 것이죠.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라도 사실 평범한 사람들도 어느 정도 이러한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한여름에 푸른색으로 꾸며진 커피점에 들어갔을 때 붉은색으로 꾸며진 커피점에 비해 좀 더 시원하게 느끼는 것은 우리 시각과 촉각이 뒤섞이는 공감각을 경험하는 한 가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공감각 현상은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쉽지 않아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지는 못했지만, 그간 많은 과학자들은 공감각을 지닌 사람들의 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뇌에 비해 신경 간에 과잉연결이 일어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설명합니다. 즉 어떤 사람 뇌의 특정지역에서 신경 간의 연결이 고도화되면 그 사람은 공감각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최근 공감각을 새로운 각도에서 설명하기 위해 네덜란드 막스프랑크 연구소의 사이먼 피셔 박사 연구진은 유전적인 관점에서 접근했으며, 이 연구를 통해 얻어진 흥미로운 결과를 미국 학술원회보(PNAS)에 발표했습니다. 피셔 박사 연구진은 공감각 현상이 흔히 발생하는 세 가문을 대상으로 구성원의 유전자를 조사했는데, 유전자 조사 결과 피셔 박사 연구진은 공감각이 유전되는 데 관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37개의 예상 유전자를 찾았습니다. 이들 유전자에는 6개의 특이한 변이가 보였으며, 이 변이들은 신경 간의 연결에 깊숙이 관련된 것을 알아냈습니다. 특히 이들 변이는 성장하는 어린이 뇌의 시각피질과 청각피질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발현되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즉 우리 시각과 청각 간의 공감각 유발을 설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것이죠. 공감각을 경험하는 것이 신경 과잉연결을 동반한 신경계 발달 이상인지는 아직도 많은 연구가 더 진행돼야 하겠지만, 이번 연구 결과를 보아도 뇌속 신경 간의 제대로 된 소통이 정상적인 뇌 활동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보여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런 현상은 우리 세상 일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 간에도 제대로 된 소통이 없으면 상대방의 말이나 의도를 오해하는 일이 발생하고 다툼이 발생하기도 하니까요.

이번 주말은 해마다 열리는 비슬산 참꽃축제가 예정돼 있습니다. 여러분도 비슬산 등산을 하며 참꽃을 즐겨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고 참꽃의 향을 음미하는 동안 혹시라도 여러분의 머릿속에 어떤 색깔이 그려진다면 여러분은 현대 추상미술의 창시자인 바실리 칸딘스키처럼 공감각을 소유한 천재예술가일지도 모릅니다. <DGIST 뇌·인지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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