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김정은 위원장이 내민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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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14   |  발행일 2018-04-14 제23면   |  수정 2018-04-14
[토요단상] 김정은 위원장이 내민 손
박재열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요즘 우리 국민의 초미의 관심사는 곧 있게 될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성공 여부다. 이 두 회담의 결과에 따라 한반도의 칠천오백만 동포의 삶이 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작년 1월1일 “대륙간탄도로케트 추진 사업이 마감 단계”임을 밝힌 뒤, 9월15일까지 강력한 국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미사일 발사를 감행해 왔다. 금년도 신년사에서는 그 실험의 덕택으로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이루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북한은 핵무기든, 미사일이든, 그 개발의 로드맵이 있고 그것에 맞춰 차질 없이 실험을 진행해 온 듯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이례적으로 남북화해의 길을 터놓기도 했다. “남조선에서 머지않아… 겨울철 올림픽(이 열리는데)… 우리는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습니다.” 문재인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판문점으로 우리 대표를 보냈고, 우리 대표와 북측 대표는 비둘기처럼 서로 머리를 맞댔다. 그 뒤 북측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등이 대거 내려왔다. 일은 더 급진전되어 우리 측 특사가 직접 김 위원장을 만나 남북정상회담뿐만 아니라 북미정상회담의 물꼬까지 틔우는 성과를 거뒀다. 김 위원장은 우리 특사에게 미국과 정상회담을 하도록 미국 대통령과의 사이에 다리를 놓아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 개최는 신년사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은 여전히 “반공화국 고립 압살 책동”에 앞장서는 “깡패”일 뿐이다. 이 두 차례 정상회담은 분명 북한 내 콘센서스 없이 김 위원장이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작년 9월 이후 도발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도발이 곧 북한의 생리인 점을 감안하면, 이것 역시 로드맵 속에 그려져 있었을 성 싶다.

어떻든 금년 들어 급진전한 남북관계 개선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에 신뢰가 싹 터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많은 미사일 도발을 보면서도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극도로 조심했다. 두 정상이 핫라인을 설치하겠다는 데서는 더 깊은 신뢰를 구축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완전히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 폐기를 원하는 미국과, 단계적으로 정치적·경제적 보상을 원하는 북한 사이의 간극은 아직 크다. 그렇다고 대화를 통해 비핵화가 실현되고, 그와 동시에 북한과 미국의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전적으로 비현실적인 일만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면 김정은에게는 궁극적으로 그 대화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는 그런 관계 개선 없이는 북한 사회의 붕괴라는 재앙을 맞거나, 미국의 무력적 침략을 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이때 문 대통령은 따뜻하게 그의 손을 잡아줘야 할 것이다. 이념이든, 무력이든 대결이 아니라 그의 입장에서, 그의 눈높이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의 협조로 북한의 체제 보장을 할 것이며, 무력침략을 안 하겠다는 약속을 만날 때마다 해야 한다. 한미 양국은 안보 문제에 관한 한 ‘굳건한 한미동맹’ ‘혈맹’ 같은 말을 하여 서로를 신뢰하듯이, 김정은과의 대화에서도 그런 화법이 필요하다. 김정은은 대화와 화해의 길을 나서면서 북한 내부의 반발도 신경써야 한다. 북한주민은 아직까지도 이 두 정상회담의 주의제가 ‘비핵화’임을 모르고 있지 않는가.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형’이 되어야 한다. 야당들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천안함 폭파 주범이 아니냐며 천안함 문제부터 따져 사과를 받으라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천재일우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 지금은 김 위원장이 어렵사리 손을 내민 것이나 다름없다. 국제사회는 그 손을 잡고 등을 다독여 줄 수밖에 없지 않는가.
박재열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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