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바람 바람 바람’ 이병헌 감독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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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13   |  발행일 2018-04-13 제43면   |  수정 2018-04-13
“‘불륜’ 소재 코믹물…즐길 수 있는 사람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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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바람 바람’(이하 바람)은 결혼을 해도 여전히 철부지같은 어른들을 위한 코미디다. ‘스물’을 통해 시행착오 가득한 청춘기를 재기발랄하게 풀어냈던 이병헌 감독의 세 번째 장편으로 체코영화 ‘희망에 빠진 남자들’(2011)을 리메이크했다. 직접 구상한 시나리오가 아닌 이유에 대해 이병헌 감독은 “불편해서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항상 있었다”고 했다. 덧붙여 전작 ‘스물’과의 연계성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바람’은 치명적 매력을 지닌 한 여자와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가는 두 부부의 좌충우돌을 그렸다. 원작은 한국 정서로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톤앤매너를 지닌 코미디다. 주인공들의 복잡한 감정도 그렇고, 그들이 일탈을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속시원한 설명이 없다. ‘바람’을 ‘스물’의 40대 버전으로 풀어가기엔 차이점이 뚜렷했다. 하지만 이병헌 감독에겐 자신만의 코미디를 만들어갈 수 있는 흥미로운 요소로 작용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차진 말맛의 ‘이병헌표 코미디’는 한층 깊이와 매력을 더했고, 전형성을 탈피한 코미디 감각과 리듬감 역시 그의 인장이 느껴질 만큼 돋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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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 바람 바람’ 포스터

▶체코영화를 리메이크했는데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꼈나.

“엔딩의 잔상이 오랫동안 남을 만큼 영화를 재밌게 봤다. 다만 감정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소재인데 상황에만 치중해 전개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쿨한 매력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렇게 넘어가기엔 우리 정서와의 괴리감이 컸다. 원작에선 언급이 없었지만 주인공들이 부정적인 행위를 하는 이유를 외로움으로 설정해 접근해보고 싶었다. 그게 일탈에 대한 변명이나 핑곗거리가 될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에게 내재돼 있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은 전형적이지 않은 당신의 코미디 화법을 낯설고 힘들어한 것 같았다.

“‘바람’이 상황 코미디였다면 그렇게까지 힘든 디렉션을 요구하지 않았을 거다. 그만큼 대사전달과 감정표현의 느낌이 중요했다. 이게 밋밋하고 평범하게 표현된다면 재미도 없고 경쟁력도 떨어질 것이라고 봤다. 대사나 리액션을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게 만들어야 했다. 이는 호흡과 타이밍, 속도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배우들은 주어진 상황에 맞게 대사와 감정을 표현했지만 나는 한 번 더 방향을 틀고 싶었다. 그래야 내가 의도한 대로 관객들이 궁금해하며 인물과 대사를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배우들이 처음엔 힘들어했지만 베테랑답게 금방 이해하고 적응했다.”

▶소재가 불륜이다보니 의도치 않게 이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요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접근방식에서 고민이 더 많았을 것 같다.

“굉장히 신경을 썼다. 개인적으로 불륜을 미화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자체가 아름답지 않은 것을 어떻게 미화하고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겠나. 다만 영화를 보고 느끼고 해석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그것까지 내가 강요하고 참견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누군가 이 영화를 보고 불륜을 미화했다고 느끼고, 그래서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내 의도가 올곧이 전달되지 못했으니 내 책임이다.”


체코 영화 ‘희망에 빠진 남자들’ 리메이크
전작‘스물’의 중년 버전…전형적 웃음 탈피
결혼해도 철부지 같은 어른들을 위한 코미디
원작과 다르게 부정적 행위 외로움으로 접근
불륜 미화는 말이 안돼…영화해석은 관객 몫

이성민·신하균·송지효·이엘 캐스팅 조합 최적
겨울 제주도 배경으로 차가운 이미지 원했지만
촬영 밀리면서 봄에 찍어…결과적으로는 만족
상대의 감정 느끼는 마지막 레스토랑 신 애착
웃기기위해 치밀한 계산, 여전히 어려운 장르



▶그 점에서 기혼과 미혼인 사람의 온도차가 심할 것 같다.

“코미디의 속성이 그런 것 같다. 한 순간의 장면과 대사만으로 관객을 웃길 수는 없다. 일정시간 감정이 차곡히 쌓여 있어야 나중에는 눈만 크게 떠도 웃는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감정이입이 안 되거나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와 정서라면 감정을 쌓기가 힘들다. 이 영화의 숙명과도 같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바람’은 즐길 수 있는 사람만 즐길 수 있다.”

▶굳이 바람을 피운다는 행위가 아니더라도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들은 다양하고 내밀한 우리의 감정들이다.

“그렇다. 이 영화를 꼭 불륜이라는 소재로 한정시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넓게 생각하면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람들에게는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헛되고 그릇된 욕망이 있다. 불륜뿐만 아니라, 길거리에 침을 뱉는 행위에서도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 쾌감에 대한 허무함을 생각하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전작 ‘스물’과 마찬가지로 이번 캐스팅 조합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캐스팅 운은 좋은 것 같다. 일단 이성민과 신하균은 이 캐릭터라서 잘 어울리겠다가 아니라 어떤 캐릭터를 맡겨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배우들이다. 송지효는 옆을 돌아보면 항상 있을 것 같은 누나, 여동생, 이모처럼 편안한 이미지다. 그래서 그냥 툭 놔둔 캐릭터인데 그런 인물이 반전과 만났을 때의 시너지를 기대했다. 이엘은 기존에 갖고 있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다. 그런데 처음 만났을 때 ‘아 그런 분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고, 비주얼 자체가 신비로움을 갖고 있어 제니 역과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특히 사건의 발단이 되는 제니 캐릭터는 설득력을 부여하기도 그렇고, 자칫 소모되는 여성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표현하기 녹록지 않았을 것 같다.

“너무 어려웠다.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원작에서도 전사(前事)나 설명이 없었다. 각색을 하면서 무언가가 필요했지만 타당한 이유는 어차피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인물을 다 소개할 만한 시간적 여력은 없지만 드러나는 이미지만이라도 어느 정도의 표현은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제니는 어디서 태어나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또 몇 살 때 사춘기를 겪고, 최근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미리 다 정해놓고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웠다. 이엘 배우와 그 부분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정말 모르겠다’가 정답인 것 같다. 사실 우리가 정답을 내리면 안 될 어려운 캐릭터이기도 했다.”

▶촬영장소를 제주도로 정한 건 어떤 이유인가.

“주요 인물들이 행동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낄 때, 퇴로가 없는 공간에 몰아넣고 이 인물들에 집중해 보자는 의도였다. 일탈에 관한 이야기다 보니 좀 이국적인 분위기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있었다. 사실 가장 원했던 건 겨울 제주도의 차가운 이미지다. 제주도 하면 봄햇살, 유채꽃,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는데 의외로 쓸쓸하고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 드러내놓고 싶지 않을 그런 차가운 이미지가 우리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촬영이 밀리면서 봄에 찍게 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지금이 더 만족스럽다.”

▶특별히 좋아하는 장면을 꼽는다면.

“모든 장면이 명장면이지만(웃음) 하나를 꼽자면 마지막 레스토랑 신이다. 자극적인 무엇이 아니라, 서로 진중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방의 감정을 느끼는 신인데 그 안에 내포된 진실됨이 좋았다.”

▶코미디 장르에 천착하는 이유는 뭔가.

“코미디 장르는 재밌고 관심이 많다. 그리고 아직 영화에 대한 내공이 깊지 않아서 내가 모르는 장르에 도전하는 것보다 좀 더 잘 할 수 있는 장르에 도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

▶‘웃기는 것보다 인물들의 감정에 집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긴다고 느낀다면 그건 내 능력인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스물’에 이어 ‘바람’까지 대중과의 소통에 성공한 것 같다. 이제 코미디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도 될 듯하다.

“아직 이르다. 코미디는 좋아하지만 여전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누구 하나 웃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말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느끼고 있다. ‘바람’을 찍으면서도 정신적으로 좀 지쳤다.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늘 시달렸고, 아이디어의 한계도 느꼈다.”

▶차기작 ‘극한직업’도 코미디 장르다.

“‘극한직업’은 코미디 장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지금껏 내가 했던 작업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인물이나 감정을 쫓아가는 게 아니라 상황을 따라가는 시츄에이션 코미디다. ‘바람’을 찍으면서 많이 지쳐있다 보니 상황을 쫓는 정통코미디를 하고 싶었다.”

▶국제통상학을 전공했다. 영화를 하게 된 계기는 뭔가.

“어릴 때부터 영화 보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렇다고 직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영화를 막 시작하기 전까지도 그랬다. 대학 졸업반 때 특별히 할 것도 없고, 취업준비도 따로 하지 않았다. 그냥 시골에 내려가서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겠다는 생각으로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렇게 몇 개월 보내다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시나리오를 읽게 됐는데 영화를 보는 것만큼 재미있었다. 나도 한번 써볼 수 있겠다는 건방진 생각이 들었다. 당시만 해도 공모전이 많아서 당선만 되면 상금이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술값을 벌어 볼 요량으로 단순하게 시작했다.(웃음)”

▶어떤 감독으로 남고 싶은가.

“흥행감독이다. 덧붙여 ‘너의 인장이 느껴졌다’라는 말을 되게 좋아하는데 그 말을 계속 들었으면 좋겠다.”

글=윤용섭기자 hhhhama21@nate.com
사진제공=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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